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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 아버지는 네가 뭘 좋아하는지 안다

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 2018년 2월 28일

등록|2018.02.28 11:28 수정|2018.02.28 11:28

▲ ⓒ 조상연


'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여행을 좋아하고 한식은 김치로 요리한 음식을 좋아하며 청요리보다는 우아한 양식을 좋아하고 글 쓰는 것보다 읽는 것을 더 좋아하는데 '반지의 제왕'처럼 판타지를 좋아하는 딸. 모든 일에 인정보다 이성적 판단이 우선이지만 매달 얼마씩 어려운 이웃을 위해 돈을 쓰는 착한 큰딸.

어렸을 때 책 한 권만 있으면 혼자서도 잘 놀던 딸. 커가면서 가난한 아버지 탓인지 허영심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지만 책값만큼은 아끼지 않는 딸. 아버지 빚이 얼마냐며 자는 아버지를 깨워 은행에 가서 모든 채무 관계 서류를 요구하는 바람에 지점장으로 있는 친구 앞에서 아버지를 떨떠름하게 만들었던 큰딸.

이 세상 모든 근심과 거리가 먼 작은딸.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더니 2년 만에 돈이 모이니까 여행이나 다녀야겠다며 회사를 그만두는 딸. 1년만에 돈 떨어지더니 다시 돈 벌겠다며 취직하는 딸. 아무때고 맘 내키면 훌쩍 떠났다가 돌아오며 맛있는 빵 하나 사 먹겠다고 군산 유명한 빵집을 차비 아까운 줄 모르고 다녀오는 작은딸.

아버지가 모아놓은 와인과 시집으로 친구들 생일선물을 하는 괘씸한 딸. 설날이면 아버지 손목을 잡아끌며 친구가 아르바이트하는 매장에 들려 친구에게 세배를 시키고 세뱃돈 주라며 옆구리를 찌르는 딸. 휴일이면 연극 표를 아버지 코앞에서 흔들어대며 아버지도 문화생활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며 강제로 대학로 소극장으로 끌고 가는 딸. 철학 서적과 시를 좋아하는 작은딸.

아버지가 아는 딸들은 이렇구나. 당연히 아버지가 모르는 뭐가 또 있겠지만, 이놈들아 이정도만 아버지가 너희들은 이해해도 행복한 줄 알아라. 아버지의 아버지, 즉 네놈들의 할아버지는 아들인 아버지가 뭐를 좋아하는지 무슨 책을 읽는지 도무지 깜깜이다. 언젠가 할아버지에게 "아버지 제가 오마이뉴스에 글을쓰고 있습니다. 읽어보셔요." 했더니 "네가 무슨 글을 쓴다고 그래? 쓸데없는 짓 하지 마러" 그러시더라. 그자리에서는 웃고 말았지만 사실 아버지는 너무 너무 서운했단다.

할아버지를 보면서 문득 아버지가 자식이 뭘 좋아하는지, 자식이 아버지가 뭘 좋아하는지 안다는 일은 부모자식간에 참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보았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평생 칭찬 한번 들어보지를 못했구나. 뭐가 그렇게 못마땅한지......

어쨌든, 그건 아버지 사정이고 아버지는 기쁘다. 너희들과 시집 한 권을 놓고 함께 의견을 나누고 시 한 편을 놓고 문학동아리 수준의 시평을 해가며 놀 수 있다는 것도 아버지의 복이지 싶다. 지난번 작은딸 현우와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를 놓고 다투던 적도 있었지.

오늘은 아버지를 자기 몸보다 더 아꼈던 할머니 생각이 나는구나. 할머니는 아버지를 보면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아이구 우리 똥강아지"

할머니 때문에 아버지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강아지를 때리거나 못살게 군 적이 없다. 아버지가 할머니에게 귀여운 똥강아지였던 것처럼 '쫑' 역시 독꾸의 귀여운 똥강아지였으므로...

재미있는 시 하나 소개하마. 짧으니 외워두어도 좋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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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부른 걸까

박성우

마당에서 노는데
할머니가 부른다

우리 똥강아지 어디 갔냐?

강아지도 뛰어가고 나도 뛰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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