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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건축기술

[숲책 읽기] 베른트 하인리히 <귀소 본능>

등록|2018.03.05 13:24 수정|2018.03.05 13:24
"어린 시절 나는 잎이 무성한 나무 밑처럼 자연으로 에워싸인 공간에 있는 걸 좋아했다. 거기서 바라볼 만한 전망이 있다면 더더욱 좋았다."(432쪽)
"거위나 백조와 마찬가지로 어린 두루미 역시 겨울나기를 하는 곳에서 번식지까지 날아가는 길을 부모에게서 배운다고 알려져 있다."(29쪽)


베른트 하인리히 님이 쓴 <귀소 본능>(더숲 펴냄)을 읽습니다. 이 책은 새를 비롯한 뭇목숨이 어떻게 '옛 보금자리'를 그토록 잘 찾아내는가를 살핀 이야기를 바탕으로, 지은이가 어릴 적부터 찬찬히 지켜본 아름답고 놀라운 숲살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겉그림 ⓒ 더숲


지은이는 어릴 적부터 나무 밑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멀리 내다볼 수 있는 탁 트인 곳을 좋아했다고 하며, 드넓은 도시가 아닌 드넓은 숲이나 멧줄기를 바라보기를 좋아했다고 해요.

어느 모로 본다면, <귀소 본능>을 쓴 분부터 스스로 '옛 품으로 돌아온' 셈입니다. 어릴 적에 늘 즐기거나 누리던 터전인 숲에서 살아가면서 일하는 길을 걷습니다. 도시 한복판에 있는 대학 연구실이 아닌, 숲에 마련한 오두막집을 연구실이자 일터이자 보금자리로 삼아서 지낸다고 합니다.

▲ 속그림 ⓒ Bernd Heinrich, 더숲


"암수 한 쌍이 내는 금속성의 시끄러운 소리는 멀리서 날아오는 다른 두루미를 유인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소리를 통해 '출입 금지' 신호를 보내는 것이 맞을 듯했다."(37쪽)
"이런저런 연구를 통해 우리는 바다거북이나 바닷새처럼 바다를 항해하거나 횡단하는 동물들이 끝없는 망망대해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헤매다 자신들이 태어난 작고 외진 지역의 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110쪽)


학문을 살피는 길을 걷자면 먼저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어릴 적에는 궁금한 마음으로 바라보았을 테고, 차츰 머리를 빛내어 여러 가지 책도 찾으며, 이웃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그러모읍니다. 몸으로 부딪히고, 앞선 학자가 닦은 길을 살피며, 시골이나 숲에서 살림을 짓는 이웃이 겪어낸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로써 연어가 냄새를 기억한다는 결론이 분명해졌다. 녀석들은 자기가 자랄 때 경험한 냄새에 이끌렸던 것이다."(156쪽)
"단순한 둥지는 '눈에 띄지 않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으며, 따라서 땅바닥에 살짝 파인 자국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둥지는 우리의 상상력을 시험하는 건축기술이 포함된다. 새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건축기술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형태는 공중에 매달린 둥지다."(204쪽)


▲ 속그림 ⓒ Bernd Heinrich, 더숲


<귀소 본능>을 읽으면 지은이가 조그마한 뭇목숨을 얼마나 찬찬히 바라보거나 마주하면서 학문 연구라는 길을 걷고, 이 길에 즐거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벌레가 짓는 집을 지켜보면서 배웁니다. 새가 짓는 집을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사람처럼 기계를 부리지 않는 벌레나 짐승이나 새인데, 대단히 놀랄 만한 집을 짓는다고 해요. 때로는 매우 엉성해 보이는 둥지를 마련하는 새가 있고, 감쪽같이 숨는구나 싶은 둥지를 짓는 새가 있으며, 아슬아슬해 보이지만 놀라워 보이는 둥지를 엮는 새가 있다고 합니다.

새뿐 아니라 거미가 짓는 집도 놀랍다지요. 지은이는 숲 오두막에서 거미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거미집을 살핍니다. 거미한테 여러 먹이를 일부러 줄에 붙들리도록 던져 주면서 지켜보고, 여러 벌레가 거미줄에 문득 붙들렸을 적에 이를 어떻게 다루어 어느 만큼 먹고 건사하다가 언제쯤 찌꺼기를 줄에서 털어내는가를 지켜봅니다.

"녀석은 어째서 밤을 숨기려고 그렇게 멀리까지 날아간 걸까? 그렇게 하면 특정한 장소에 대한 기억력을 높일 수 있을까? 먹이를 멀리 숨겨두고 오가는 것이 가까이에 소량으로 먹이를 여기저기 숨겨두는 것보다 장소를 기억해내기 편한 걸까?"(317쪽)
"개간된 땅에 곰이 떨어뜨린 씨앗에서 오래된 사과나무가 시작된 것이라면 1830년대 아래쪽 계곡에 정착민들이 들어와 아사 애덤스를 비롯한 몇몇이 황소를 끌고 산비탈로 올라왔을 때 어느 정도 자란 사과나무를 발견했을 수도 있다."(339쪽)

▲ 속그림 ⓒ Bernd Heinrich, 더숲


가까이에 먹이를 묻는 다람쥐나 새가 있고, 멀리 날아가서 먹이를 묻는 짐승이나 새가 있다고 합니다. '가까이'라고 하면 보금자리에서 가깝다는 뜻이요, '멀리'라고 하면 보금자리에서 멀다는 뜻이에요.

새나 짐승은 왜 먹이를 가까이에 두거나 멀리 두는가를 다 알아내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다만 이 같은 몸짓을 찬찬히 지켜보면서 이론을 세우고, 이 이론을 바탕으로 더 오랫동안 끈질기게 지켜보며, 새나 짐승 한살림을 파헤쳐 낸 뒤에는, 이를 다시 사람살이에 빗대어 우리가 걸어가는 길을 돌아볼 수 있다고 해요.

그러고 보면 나무 한 그루에서 맺는 열매는 사람도 먹고 새나 벌레나 숲짐승도 먹습니다. 사람·새·벌레, 이렇게 셋이 한 알씩 나누어 먹는다는 콩 석 알 이야기처럼 우리는 예부터 지구라는 별에서 다 함께 살아왔습니다. 이런 틀에서 본다면 집을 찾는 길이란, 귀소 본능이란, 우리가 어떤 보금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는 살림인가를 헤아리려는 몸짓이지 싶어요.

이웃 목숨을 살피면서 저마다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돌아보는 학문이란, 우리가 사람으로서 얼마나 슬기롭고 아름다우면서 너그럽게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할 줄 아는 살림으로 나아갈 만한가를 생각하자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돌아갈 곳이 있기에 씩씩하게 일합니다. 돌아갈 곳을 그리면서 새롭게 기운을 내어 오늘 이 길을 걷습니다.
덧붙이는 글 <귀소 본능>(베른트 하인리히 / 이경아 옮김 / 더숲 / 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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