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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족, 내 주변에 먼저 '미투'를 말하는 게 필요하다"

대전 미투운동 집담회, 3시간 동안 있었던 일

등록|2018.03.05 19:23 수정|2018.03.05 23:18

▲ 5일 오후 1시 30분. 대전 엔지오(ngo)센터에서 대전여성단체연합 주최로 '미투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긴급 집담회가 열리고 있다. ⓒ 심규상


#장면1. 집담회 시작 전 행사장 옮긴 이유

"이렇게 관심이 뜨거울 줄 몰랐네요."

5일 오후 1시, 대전 엔지오(ngo)센터. 예정된 집담회가 열리기 30분 전이었지만 이미 수십여 명이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대전여성단체연합이 마련한 '미투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긴급 집담회였다.

사전 준비된 회의실은 50석 규모였다. 행사시간 10분 전쯤 이미 좌석을 꽉 찼다. 10여 개의 여분 의자를 급히 옮겨 놓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더 넓은 곳으로 행사장을 옮겨야겠어요."

100여 석 규모의 회의실로 급히 옮겼다. 그런데도 빈 자석은 없었다. 취재열기도 뜨거웠다. 사회자로 나선 김경희 대전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가 말문을 열었다.

"전혀 동원하지 않았는데, 여성단체 행사에 예상보다 많은 분들과 취재 기자가 참석한 것은 근래 처음입니다."

당초 두 시간 동안 예정된 이날 행사는 훌쩍 3시간 가까이가 지나서야 끝났다. 그만큼 참여시민들의 참여도도 높았다.

#장면2. "그 교사 이름이 000 아냐?"

이날 집담회 자리에서 김경희 대전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여고시절 모 교사가 벌인 성추행사례를 소개했다. 그러자 객석 여기저기에서 "그 교사 이름이 000 아니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많게는 십 수 년의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같은 학교를 다닌 선후배 학생들간 같은 교사로부터 기억하기 싫은 똑같은 불편한 기억을 갖고 있는 현실이 확인된 씁쓸한 순간이었다. 이는 미투운동이 확산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한 여성은 29년 전 지하철과 버스에서 각각 한 남성으로부터 당한 성추행 사례를 밝혔다. 그는 "하지만 그때는 피해자인데도 부끄럽고 창피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 5일 오후 1시 30분. 대전 엔지오(ngo)센터에서 대전여성단체연합 주최로 '미투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긴급 집담회가 열리고 있다. ⓒ 심규상


10년 전 '미투'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사례도 소개됐다. 

한 여성은 초등학생 6학년 시절 신체검사 때마다 여학생의 웃옷을 모두  벗게 한 교사의 사례를 떠올렸다. 해당 교사는 또 여학생들을 뒤에서 껴안았다고 한다.

이 여성은 "10여 년 전 당시 초등학교 동창들의 인터넷 카페에 당시 해당 교사의 성추행 사례를 올렸다"며 "하지만 당시 동료들이 '그 선생님이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 니가 그런 소릴 하느냐"는 핀잔을 들어야했다"고 밝혔다.

그는 "미투운동이 좀 더 빨리 시작됐더라면 보다 많은 사회적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면3. 대전, 느리지만  미투운동만은....

"대전은 뭐든지 다른 지역보다 한참 늦은 거 알죠? 우스갯소리를 하면 대전 사람들은 (그로부터) 2년 뒤에 웃는다고 하지 않나."

박은숙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가 '대전지역 문화예술계의 미투 현실과 문제점'에 대해 발표를 시작했다. 이어 "항상 느린 대전이지만 이번만은 빠르게 같이 드러내 해법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연구계와 무용계는 집단으로 일을 하다 보니 지역에서도 성희롱과 성추행이 특히 비일비재하게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며 "하지만 지역이 좁고, 미운털 박히면 예술 생명이 끝나는 상황이라 공개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진희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대표는 대전시사회복지사협회에서 오랫동안 일한 경험이 있다. 이 대표는 "사회복지사 중 70% 가까이가 여성"이라며 "지역 사회복지계에도 문제 삼을 만한 일이 있고,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채계순 대전여성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근로감독관의 전문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관련 통계를 보면 근로감독관에게 접수한 성폭력 건수는 2천여 건인 반면 기소된 건 고작 9건"이라며 "근로감독관이 전문성이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장동환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대전충청지부)는 "확산되고 있는 미투운동은  매우 유의미한 실천"이라며 "이제 외로운 싸움이 아니고, 이를 통해 대전지역 사회도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면4. 피해자 연대모임 + 전문가 역량 모으자

▲ 5일 오후 1시 30분. 대전 엔지오(ngo)센터에서 대전여성단체연합 주최로 '미투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긴급 집담회가 열리고 있다. ⓒ 심규상


이날 참석자들은 자유발언을 통해 다양한 대안을 제시했다.

앞의 29년 전 지하철 성추행 사례를 소개한 참석자는 "내 아이와 남편에게 내가 지하철에서 겪었던 일을 먼저 말하고 '지하철 여성 전용칸' 필요성을 얘기했다"며 "내 가족, 내 주변에 먼저 '미투'를 말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원정규 대전여성정치네트워크 공동대표는 "대전에는 은행동과 도마동에 각각 청소년성문화센터가 있지만 평일에는 오후 6시에, 주말은 토요일 오전을 끝으로 문을 닫는다"며 "주말은 6월까지 이미 예약이 꽉 차 있고, 주중에는 일하느라 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책수혜자인 시민의 입장이 전혀 고려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미투운동이 지속적으로 퍼져나가려면 아이들과 어른들이 자유롭게 오고가는 각 마을단위마다 성문화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병구 양심과인권나무 사무처장은 "대전지역 각 초중고 학교에서 제대로 된 성평등 교육을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법률과 제도로 건강한 교육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집담회에서 내린 결론은 우선 먼저 서로가 연대할 수 있는 온-오프 창구를 만들자는 것으로 모아졌다.

이현숙 대전성폭력상담소장의 "반짝 관심을 모으다 사그러들어서는 안된다"며 "피해 사례를 모을 수 있는 공식적인 센터(창구)와 피해자 연대모임을 만들고 지역사회 전문가들이 각각의 힘을 모아야 한다"는 제안에 대한 답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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