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위드유…내 삶을 바꾸는 성평등 민주주의
34회 한국여성대회 광화문광장서 열려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이 주관한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34회 한국여성대회'가 지난 4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시민 3000여명이 모였다. 인간의 존엄과 해방을 의미하는 보라색과 미투(Me Too) 운동을 상징하는 검정색 물결이 광장에 넘실거렸다.
이번 여성대회의 슬로건은 '내 삶을 바꾸는 성평등 민주주의'였다. 최근 미투 운동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한국 사회의 성차별ㆍ성폭력을 제도적으로 방지할 것을 요구하고, 성평등 사회로 변혁을 함께 외치는 장이었다. 시민들은 미투 운동을 넘어 남성 중심적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타파하기 위한 정부와 정치권의 성평등시스템 마련을 촉구했다.
대회는 3ㆍ8행진, 3ㆍ8샤우팅, 기념식 등으로 이어졌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110년 전, 미국 여성노동자들이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궐기한 날을 기념해 1975년에 유엔(UN)이 공식 기념일로 지정했다.
한국에는 형식적 평등과 자유가 보장됐지만, 여성은 여전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살해당하기까지 한다. 여성대회는 젠더(gender: 사회ㆍ문화적으로 형성된 성) 문제에 사회적 관심을 끌어내고, 지속적인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자 매해 열린다.
2시간 넘게 진행된 3ㆍ8행진은 광화문에서 안국동과 종각을 지나 다시 광장으로 돌아왔다. 행진 참가자들은 ▲성폭력 근절 ▲성평등 헌법 개정 ▲여성 대표성 확대 ▲성별 임금격차 해소 ▲차별금지법 제정 ▲낙태죄 폐죄 등 요구사항 여섯 가지를 외쳤다.
이어서 '말하고 소리쳐 바꾸자 - 3ㆍ8샤우팅' 행사가 열렸다. 학생ㆍ교수ㆍ경찰ㆍ청년 당원 등 다양한 연령대와 조직의 성차별ㆍ성폭력 피해자가 무대에 올라 자신의 피해경험을 이야기했다. 이들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회 전반에 성차별과 성폭력이 만연함에도 여성들은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히기 어렵다. 가해자가 조직 안에서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 오히려 '성폭력 피해 말하기'로 인해 피해자가 불이익을 받고 2차 피해를 당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용기를 낸 발언자들을 향해 시민들은 지지와 응원을 보냈다.
이아무개(19)양은 초등학교 시절 남성 담임교사에게 상습적으로 당한 성추행 경험을 고백했다.
"여성청소년은 폭력에 가장 취약한 대상이다. 초등학교 4학년 담임교사였던 A씨는 제 몸을 함부로 만지고 본인의 다리 위에 나를 앉혔으며, 심지어 여자화장실에 함부로 들어와 추행했다"고 한 뒤 "학교와 외부 상담교사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선생님이 설마 그러겠냐는 말로 묵살했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20년 가까이 경찰생활을 했다는 임아무개씨는 "후배 여경이 찾아와 선배 B가 상습적으로 성추행하고 있다고 말하기에, 고소를 도와줬다. 하지만 조력자로서 나는 '꽃뱀 여경'으로 낙인찍혔고, 조직에 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다른 지역으로 배치됐다"며 "경찰사회는 남성 중심의 수직적 계급사회인데, 10%에 불과한 소수 여성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여러 악습에 희생당한다"고 경찰조직 문화를 비판했다.
30년간 문화예술계 전문가로 일해 온 남정숙 전 성균관대학교 교수는 "교수도 성폭행을 당하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약자인 여성은 어느 조직에서나 항상 폭력의 피해자다. 과장이 되면 부장한테, 부장이 되면 전무한테, 전무가 되면 회장한테 당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서 "성폭력은 권력형 범죄이기 때문에 가해자 처벌만으로 해결되지 않고, 법과 정치 제도로 시스템을 보완하는 게 필요하다"며 후속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이어진 기념식에서 '30회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시상했는데, 상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징계가 불법이라는 최초의 대법원 판결을 받아낸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피해자에게 돌아갔다. 수상자 박아무개씨는 성희롱 피해 사실을 신고한 이후 부당 징계ㆍ퇴사 종용ㆍ따돌림을 당했다.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4년 6개월간 법정 싸움 끝에 회사 책임임을 끌어냈다.
여성연합은 "박씨의 용기와 끈기로 2차 가해 방지와 성평등한 노동환경을 위한 제도 구축의 출발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축사를 전하며 "우리는 한국 사회에 성차별적 구조가 얼마나 깊이 뿌리박혀 있는지 성찰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약자를 향한 일상화된 차별과 억압의 문제다. 정부는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개선하고 실질적 성평등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행사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인천 서구 주민 조혜민(25)씨는 "성차별ㆍ성폭력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일탈 문제로 축소시킬 게 아니라 권력이 불평등하게 배분된 사회구조의 문제로 생각해야한다"고 말했다.
인천지역 여성단체와 여성정치인도 이날 행사에 참여했다. 인천여성회 중ㆍ동구지부 회원 윤나현(38)씨는 "사람들이 젠더 문제를 단순히 여성의 몫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의 노력이 필요한 사회문제로 인식했으면 좋겠다"며 "올해 지방선거에서도 여성대회의 요구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정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고, 인천 유권자들이 젠더 이슈가 본인이 속한 모든 공간에 존재함을 인식하고 정치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미영 인천시장 예비후보는 여성대회 시작 전 광화문을 방문해 "미투 운동은 여성에게 기울어진 운동장 자체를 바로 잡자는 몸부림이다"라며 이번 지방선거에서 책임감 있는 여성 정책 제시를 약속했다.
▲ ▲ 지난 4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4회 한국여성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대회를 환영하고 있다. ⓒ 김시운
이번 여성대회의 슬로건은 '내 삶을 바꾸는 성평등 민주주의'였다. 최근 미투 운동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한국 사회의 성차별ㆍ성폭력을 제도적으로 방지할 것을 요구하고, 성평등 사회로 변혁을 함께 외치는 장이었다. 시민들은 미투 운동을 넘어 남성 중심적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타파하기 위한 정부와 정치권의 성평등시스템 마련을 촉구했다.
한국에는 형식적 평등과 자유가 보장됐지만, 여성은 여전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살해당하기까지 한다. 여성대회는 젠더(gender: 사회ㆍ문화적으로 형성된 성) 문제에 사회적 관심을 끌어내고, 지속적인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자 매해 열린다.
▲ ▲ 여성대회 한 참가자가 성차별적 호칭을 개정하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 김시운
▲ ▲ 시민들이 성폭력 근절, 성평등 헌법 개정, 여성 대표성 확대, 성별 임금격차 해소, 차별금지법 제정, 낙태죄 폐지 등 요구사항 여섯 가지를 외치고 있다. ⓒ 김시운
▲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백미순ㆍ김영순ㆍ최은순 여성연합 공동대표 등이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 김시운
▲ ▲ 미투, 위드유 피켓을 들고 있는 학생들. ⓒ 김시운
2시간 넘게 진행된 3ㆍ8행진은 광화문에서 안국동과 종각을 지나 다시 광장으로 돌아왔다. 행진 참가자들은 ▲성폭력 근절 ▲성평등 헌법 개정 ▲여성 대표성 확대 ▲성별 임금격차 해소 ▲차별금지법 제정 ▲낙태죄 폐죄 등 요구사항 여섯 가지를 외쳤다.
이어서 '말하고 소리쳐 바꾸자 - 3ㆍ8샤우팅' 행사가 열렸다. 학생ㆍ교수ㆍ경찰ㆍ청년 당원 등 다양한 연령대와 조직의 성차별ㆍ성폭력 피해자가 무대에 올라 자신의 피해경험을 이야기했다. 이들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회 전반에 성차별과 성폭력이 만연함에도 여성들은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히기 어렵다. 가해자가 조직 안에서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 오히려 '성폭력 피해 말하기'로 인해 피해자가 불이익을 받고 2차 피해를 당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용기를 낸 발언자들을 향해 시민들은 지지와 응원을 보냈다.
이아무개(19)양은 초등학교 시절 남성 담임교사에게 상습적으로 당한 성추행 경험을 고백했다.
"여성청소년은 폭력에 가장 취약한 대상이다. 초등학교 4학년 담임교사였던 A씨는 제 몸을 함부로 만지고 본인의 다리 위에 나를 앉혔으며, 심지어 여자화장실에 함부로 들어와 추행했다"고 한 뒤 "학교와 외부 상담교사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선생님이 설마 그러겠냐는 말로 묵살했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20년 가까이 경찰생활을 했다는 임아무개씨는 "후배 여경이 찾아와 선배 B가 상습적으로 성추행하고 있다고 말하기에, 고소를 도와줬다. 하지만 조력자로서 나는 '꽃뱀 여경'으로 낙인찍혔고, 조직에 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다른 지역으로 배치됐다"며 "경찰사회는 남성 중심의 수직적 계급사회인데, 10%에 불과한 소수 여성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여러 악습에 희생당한다"고 경찰조직 문화를 비판했다.
▲ ▲ 3ㆍ8샤우팅에 발언자로 나선 남정숙 전 성균관대학교 교수. ⓒ 김시운
30년간 문화예술계 전문가로 일해 온 남정숙 전 성균관대학교 교수는 "교수도 성폭행을 당하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약자인 여성은 어느 조직에서나 항상 폭력의 피해자다. 과장이 되면 부장한테, 부장이 되면 전무한테, 전무가 되면 회장한테 당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서 "성폭력은 권력형 범죄이기 때문에 가해자 처벌만으로 해결되지 않고, 법과 정치 제도로 시스템을 보완하는 게 필요하다"며 후속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이어진 기념식에서 '30회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시상했는데, 상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징계가 불법이라는 최초의 대법원 판결을 받아낸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피해자에게 돌아갔다. 수상자 박아무개씨는 성희롱 피해 사실을 신고한 이후 부당 징계ㆍ퇴사 종용ㆍ따돌림을 당했다.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4년 6개월간 법정 싸움 끝에 회사 책임임을 끌어냈다.
여성연합은 "박씨의 용기와 끈기로 2차 가해 방지와 성평등한 노동환경을 위한 제도 구축의 출발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 ▲ 이날 행사에는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노회찬ㆍ심상정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남인순ㆍ진선미 국회의원 등이 참가했다. ⓒ 김시운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축사를 전하며 "우리는 한국 사회에 성차별적 구조가 얼마나 깊이 뿌리박혀 있는지 성찰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약자를 향한 일상화된 차별과 억압의 문제다. 정부는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개선하고 실질적 성평등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행사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인천 서구 주민 조혜민(25)씨는 "성차별ㆍ성폭력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일탈 문제로 축소시킬 게 아니라 권력이 불평등하게 배분된 사회구조의 문제로 생각해야한다"고 말했다.
▲ ▲ 이날 여성대회에는 인천여성회 회원들도 참여했다. 행진하는 인천여성회 회원들. ⓒ 김시운
인천지역 여성단체와 여성정치인도 이날 행사에 참여했다. 인천여성회 중ㆍ동구지부 회원 윤나현(38)씨는 "사람들이 젠더 문제를 단순히 여성의 몫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의 노력이 필요한 사회문제로 인식했으면 좋겠다"며 "올해 지방선거에서도 여성대회의 요구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정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고, 인천 유권자들이 젠더 이슈가 본인이 속한 모든 공간에 존재함을 인식하고 정치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미영 인천시장 예비후보는 여성대회 시작 전 광화문을 방문해 "미투 운동은 여성에게 기울어진 운동장 자체를 바로 잡자는 몸부림이다"라며 이번 지방선거에서 책임감 있는 여성 정책 제시를 약속했다.
▲ ▲ 행사 말미에 참가자들이 성평등 제도를 마련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김시운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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