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픽추, 내게는 폐허의 유적이 아니었다
[안데스 자전거원정 ⑥] 마추픽추를 찾아가는 날
▲ 마추피추가 내게도 대면을 허락했다. 나는 세상에 용기와 결단만으로, 열정과 충동만으로는 불가능한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마추픽추에서 지금 깊은 숨을 들이킬 수 있는 것은 내가 알지못하는 모든 것들이 허용되어져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강복자
새벽 1시에 일어나니 비가 내리고 있다. 새벽에도 빗발이 보일 만큼 주룩주룩 쏟아지는 비는 마음을 짓눌렀다. 하필 태양의 도시, 마추픽추를 찾아가는 날 작달비라니...
여정을 미룰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날씨에 따라 일희일비할 수도 없는 일, 다시 잠을 청했지만 잠들지 못했다. 결국 다시 새벽 2시에 잠자리를 박찼다. 잠이 오지 않는 상황에서 잠을 청하는 대신 잠을 깨우는 방식으로 불면을 길들여왔다. 명상이나 독서는 오히려 숙면을 위한 내 나름의 처방이다.
고산병을 진정시키는 마법의 효과를 기대하면서 코카 차를 마셨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 있게 된 연유를 상기해 보았다. 이곳의 나는 내 용기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양보였음이 더 선명해졌다. 창밖의 퍼붓는 빗줄기도 더 이상 내 마음을 휘두르지 못했다.
새벽 5시, 어제 예약해 둔 택시를 타고 마추픽추 바로 아랫마을 아구아스 칼리엔테스(Aguas Calientes)행 기차를 탈 오얀타이탐보(Ollantaytambo)로 향했다. 오얀타이탐보의 해발고도는 2797m, 3399m 쿠스코에서는 70km의 내리막이다.
▲ 산중도시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흐르는 우루밤바강물은 비탓에 황토물이 되었다. ⓒ 강복자
산과 그 사이의 초원이 멋진 풍경을 만들었다. 자전거로 달리려고 했던 '바예 사그라도(성스러운 계곡 El Valle Sagrado/The Sacred Valley)'의 피삭(Pisac), 우루밤바(Urubamba) 마을을 차창 밖으로 눈을 맞추었다.
우루밤바 강(Rio Urubamba)변의 농경지를 통해 계곡에 삶을 의탁한 안데스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대지의 신 파차마마(Pachamama)을 섬기며 계곡을 성스럽게 대하는 그들의 삼가는 태도를 마음에 담는다.
숨을 쉬는 모든 생명이 자연에 가져야 할 가장 근본의 마음가짐인 거다. 엄마와 뱃속의 아기가 탯줄로 하나가 되는 것처럼 자연과 내가 연결된 탯줄을 느끼려고 애쓴다. 성스러운 계곡을 지나면서 안데스 사람들도 그렇다는 것에 일체감을 느낀다.
오전 7시 22분발 잉카 트레인을 탔다. 쿠스코-오얀타이탐보-아구아스 칼리엔테스 구간을 운행하는 두 철도회사가 있다. 잉카레일(Inca Rail)과 페루레일(Peru Rail). 우리는 어제 잉카레일을 예약했다. 잉카레일의 출발지가 오얀타이탐보이다.
▲ 잉카레일의 출발지는 오얀타이탐보이다. ⓒ 강복자
천 길 협곡의 발치를 따라 겨우 침목 두 개를 깔 공간을 확보한 철길을 달리는 기차를 비로 불어난 우루밤바강의 황토물이 계속 따른다. 비는 그치고 수직 절벽의 산허리를 안개가 감았다. 기차는 어쩐 일인지 서다 가다를 반복하다 결국 서버렸다. 몇 km 앞 전방에 산사태가 철길을 덮쳐 긴급복구 중이라는 안내였다.
나는 기차에서 내려 우루밤바강물을 내려다보았다. 천둥소리를 내며 흐르는 이 강물은 세계에서 가장 길고 넓은 유역을 가진 아마존 강의 최상류를 이룬다. 7천km의 안데스산맥의 품에서 7천km의 아마존 강을 발밑에 두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 내 이마를 타고 내렸던 빗물은 언제 대서양에 닿을까? 대서양으로 향하는 대신 호수에 고인 물로 있다가 목마른 동물의 목을 축일 수도 있겠지.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도착한 것은 낮 12시. 1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를 3시간 더 지체한 것이다.
▲ 산사태로 기차가 서버렸다. 긴급복구를 마치고 다시 기차가 출발한 것은 3시간 뒤였다. ⓒ 강복자
마추픽추, 신비로 남기를...
기차역을 나와 레스토랑에서 때늦은 아침을 주문했다. 사실 내 관심은 밥보다도 하늘을 덮어버린 구름이 마추픽추조차 가려버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였다. 주문한 지 30분이 지나서 나온 식사를 마쳤을 때 내려진 발을 걷어올리듯 천천히 구름이 걷혔다.
▲ 마추픽추 아랫마을,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있는 잉카의 전사상. ⓒ 강복자
셔틀버스를 타고 마추픽추를 오른다. 그곳이 내게도 발길을 허용했다. 투명한 하늘, 잉카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돌 하나하나가 영롱한 태양의 빛을 받아 막 깨어날 듯한 기운으로 다가왔다. 내게는 폐허의 유적이 아니었다.
▲ 마추픽추가 현재까지 발굴된 것은 30%정도에 불과한 것이라고한다. 누가 왜 이런 산정에 도시를 세웠는지도 의문이다. 기록이 없는 마추픽추의 태반은 여전히 미스터리이다. ⓒ 강복자
이곳을 '잃어버린 공중도시'라고 부르는 것은 합당치 않다. 마추픽추는 자발적 고립을 택해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은 곳에 도시를 건설한 하늘의 도시였다. 이곳을 발견한 사람으로 미국인 고고학자 히람 빙엄(Heram Bingham)을 말한다. 이 말이 온당한가? 그가 발견한 것이 아니라 1911년 원주민 소년이 그에게 존재를 알렸을 뿐이다.
리마에서부터 우리와 일정을 함께한 페루의 여대생 케이나(Keyna)는 처음으로 마추픽추에 올라 조상이 이렇듯 놀라운 돌의 도시를 만들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을 가진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이곳의 돌건축에 대해 케이나가 배운 것은 돌 건축이 콘크리트보다 훨씬 무게가 더 나가기 때문에 더 안정된 건축이 가능했다는 것과 돌로 도구를 만들어 돌을 정교하게 가공했다는 것이다. 또한 마추픽추 건설에 사용된 큰 돌들은 외부에서 이동해온 것이 아니라 원래 돌이 많았던 곳이었으므로 위의 돌을 아래로 이동하면서 석축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정교하게 가공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이견이 존재한다. 여전히 잉카의 신묘한 돌건축술은 여전히 미스터리인 것이다. 마추픽추가 현재까지 발굴된 것은 30%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누가 왜 이런 산정에 도시를 세웠는지도 의문이다. 나는 그 의문들이 끝까지 의문으로 남길 바란다. 오만한 현대인에게 설명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알게 해야 한다. 북적대는 사람들에 아랑곳 않고 선한 표정의 리마들이 풀을 뜯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저마다의 버킷리스트였을 이곳이 리마에게는 일상일 뿐이다. 잉카인의 화신이듯 당당한 여유로움이 좋다.
▲ 유럽의 대항해시대의 개막은 중남미 아메리카에서의 문명의 파멸을 의미했다. 마추픽추는 그 비극의 무엇을 증언하기위해 이 고산의 산정에 돌로 남았는가. `북적대는 사람들에 아랑곳 않고 잉카인의 화신이듯 당당한 여유로운 모습의 리마들이 풀을 뜯고 있다. ⓒ 강복자
우루밤바강 협곡이 멀리 장대한 바위산을 감아돌고 있다. 그 바위산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위로 옮기면 와이나픽추(WaynaPpicchu)가 다가온다. 마추픽추와 와이나픽추는 산세와 완벽하게 조화로운 모습이다. 도대체 떠나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는다. 온몸을 땅에 붙이고 내 기억 속 모든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속으로 불러내 그들의 지혜와 행복을 기도했다.
▲ 페루의 여대생 케이나도 어떻게 이렇듯 신묘하게 돌을 다룰 수 있었는지에 대한 것은 미스터리라고했다. 다만 케이나가 배운 것은 이런 돌 건축이 콘크리트보다 훨씬 무게가 더 나가기때문에 더 안정된 건축이 가능했다는 것과 돌로 돌를 정교하게 가공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마추픽추 건설에 사용된 큰 돌들은 외부에서 이동해온 것이 아니라 원래 돌이 많았던 곳이었으므로 위로부터 아래로 이동하면서 석축을 쌓았다는 것이다. ⓒ 강복자
케이나와 함께 늙은 봉우리(마추픽추 Machu Picchu는 케추아어로 '늙은 봉우리'라는 의미)에서 젊은 봉우리(와이나픽추(Wayna Picchu 케추아어로 '젊은 봉우리'라는 의미)를 뒤로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 젊은 페루인이 잉카의 영광을 복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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