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는 사원증, 한손엔 커피... 하나도 안 부럽습니다
[직장 말고 창작] 금요일에 퇴근하며 "내일 봬요"... 신입사원의 하루
▲ 친구는 항상 트렌치코트, 커피, 사원증 이 세 가지를 얘기하며 멋진 회사원을 꿈꿨다 ⓒ unsplash
트렌치 코트를 입고 손에는 벤티사이즈 테이크아웃 커피를 든다. 목에는 내 얼굴이 새겨진 사원증이 걸려있다. 거리는 여의도 혹은 강남 어딘가. 당당히 활보하며 큰 빌딩 안으로 들어간다.
취준생이었을 시절. 내 친구는 항상 트렌치코트, 커피, 사원증 이 세 가지를 얘기하며 멋진 회사원을 꿈꿨다. 물론 나도 함께 그렸다. 오피스룩 쇼핑몰 사이트를 보며 예쁜 원피스와 깔끔한 에이치라인 스커트에 블라우스를 입은 모델의 모습에 내 얼굴을 대입해 보았고, 첫 월급을 타면 부모님의 용돈과 함께 명품백도 할부로 긁어야지 생각했다.
꿈은 이루어졌지만
무엇보다 내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과 돈을 번다는 것. 이 두 가지를 위해 수백 장의 자소서를 쓰고 수십 번의 면접을 보았다. 누군가를 만날 때 당당히 명함을 내민다거나 부모님이 나를 소개할 때 당당하게 '우리 딸 어디다녀'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덤.
그렇게 내 스스로에게는 당당한 워킹을, 부모님에게는 더 당당한 '자식부심'을 선물해 줄 수 있는 위치. 바로 회사원(좋은 직장의)이었다.
그렇게 나는 취준생의 시절을 지나 회사원이 되었다. 월급을 받아 트렌치코트를 사 입었고, 커피를 손에 들고 사원증을 목에 멘 채, 강남 어딘가의 빌딩으로 매일 드나들었다. 명함도 생겼고 우리 부모님은 나를 당당하게 이웃집 아주머니들에게 소개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꿈은 이루어졌지만 그 꿈의 사원증은 아무리 길게 늘여 메도 늘 목을 조여 왔다. 취준생 시절 커피는 호사였지만, 회사원의 커피는 필수였다. 마셔도 마셔도 졸립고 피곤한 날들이었다. 원래 꿈과 현실은 괴리를 동반하는 법이지만 생각보다 너무 많이 동떨어져 있었다.
직장상사 A
한마디로 워커홀릭. 토요일 출근은 기본 일요일은 옵션. 그 옵션마저도 매번 선택하기 일쑤였다. 한 달에 온전히 회사에 출근하지 않은 횟수는 딱 2번. 그때의 나의 달력은 온통 검정색 숫자들만 있었다.
그 상사는 금요일에 퇴근을 할 때면 "난 내일 나올 거야"라고 말하고 퇴근했다. 한번도 신입사원이었던 나에게 내일 나오라고 직접 말한 적 없지만 그 주어는 항상 '너'로 들렸다. "넌 내일 나올 거야." 나는 금요일에 퇴근하며 "주말 잘 보내세요" 대신 "내일 봬요" 라고 인사했다.
직장상사 B
기러기 아빠. 아내와 자식들을 중국으로 보내고 혼자 살고 있었다. 그러니 퇴근과 동시에 "오늘 한잔 할까"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 한 잔은 열잔이었고, 그 열 잔은 2차 3차로 이어졌다. 일주일에 세 번 새벽 2시에 퇴근했다. 그때의 나는 집에서 잔 기억이 없다. 들른 기억만 있다. 그러고는 부서에서 가장 일찍 출근했다. 퇴근 시간과 상관없이 제일 먼저 출근해야 했다. 아무도 시킨 사람은 없었지만 신입사원의 자리는 그래야 했다.
직장선배 C
일을 안 했다. 맨날 아팠다. 기력이 있었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어제는 감기, 오늘은 몸살 내일도 아플 예정. 결국 그 선배의 업무는 고스란히 나에게 내려왔다. "부탁해~" 그 선배에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나는 정말 아팠다. 어제는 두통, 오늘은 편두통 내일도 두 통 아니 세 통 네 통 예정. 하지만 단 한 번도 병가를 써본 적은 없었다. 퇴근 후에만 아팠다. 신입사원의 조건 중에는 어떤 경우에도 아프지 말 것, 아니 아픈 것을 티 내지 말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너무 힘들었다. 신입사원을 건너 뛰고 선배와 상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저렇게 살아야 한다면 선배도 상사도 되고 싶지 않았다. 나도 신입사원을 벗어나 선배가 되고 상사가 되면 저렇게 될까? 저 A, B,C 의 상사와 선배들도 신입사원일 땐 나와 같았을까?
선배도 상사도 되고 싶지 않았다
▲ 오늘도 여의도 혹은 강남 어딘가에서 퇴근, 회식, 집에 '들러' 다시 출근을 반복하고 있을 사원들에게 ⓒ unsplash
잘 모르겠다. 나는 그것들을 계속 해낼 자신이 없어 퇴사를 했다. 저런 일련의 과정들을 계속 겪고 해내야 한다면 그런 자리는 앉고 싶지 않았다.
어떤 것을 보거나 겪고 난 후 배우는 방향은 두 가지.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 혹은 '저렇게되지는 말아야지' 나는 후자를 택하고 사원증과 월급을 반납했다. 후자를 택하고도 그렇지 않은 선배와 상사가 되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이었겠지만. 평일만 가득했던 날들과 회식으로 이어졌던 야근들, 아픔이 업무를 뛰어 넘을 수 없었던 나날들은 결국 퇴사로 이어졌다.
그때의 내가 금요일 퇴근 때 "주말 잘 보내세요"라고 말하고, 퇴근 후 직장 상사의 한 잔 할까 제안이 오기 전 빌딩을 나가고, 미열에도 병가를 낼 줄 알았다면 그 퇴사는 조금 더 미뤄졌을까? 그것도 잘 모르겠다.
그러니 오늘도 여의도 혹은 강남 어딘가에서 퇴근, 회식, 집에 '들러' 다시 출근을 반복하고 있을 사원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앞에 '신입'이 붙은 사원이라면 더 많은 응원을 보내고 싶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멋진 트랜치코트에 벤티사이즈 커피를 들고 사원증을 목에 메고 빌딩으로 들어가는 직장인들이 멋져 보이지 않는다. 그 빌딩 안의 하루하루가 어떨지 너무 잘 알고 직장생활은 그 3가지로 포장될 수 없음을 격하게 경험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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