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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 딸 앞에만 서면 약장수가 되는 아버지

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 2018년 3월 12일

등록|2018.03.12 13:51 수정|2018.03.12 13:51

▲ ⓒ 조상연


'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사람들은 라스베이거스의 휘청대는 네온사인에 감탄은 할지언정 위로받지 못한다. 차라리 카바이트 칸델라 불빛이 희미한 포장마차 속 소주를 마시는 사람의 실루엣에서 위로의 실마리를 찾는다. 서점에서 파는 남들의 성공한 이야기보다 아버지의 실패한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인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개그맨의 실수가 웃음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득 아버지가 너희하고 대화를 나눌 때면 청량리 시장에서 뱀 한 마리 들고 약을 파는 약장수 같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오는구나. 너희들도 알다시피 아버지가 쓰는 모든 글 속에는 성공한 이야기가 별로 없다. 아버지가 자라온 고향 이야기, 어려웠던 이야기, 실패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아버지는 장바닥의 약장수처럼 내 이야기를 해가며 수많은 시인의 시를 끌어다 사용하였다. 시는 장바닥 약장수의 뻥으로 이루어지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그렇게 시를 끌어다 썼는가? 아버지는 육체의 병을 고치는 약장수가 아니라 마음의 병을 고치는 약장수이기 때문이다. 물론 약효는 아주 미미하지만, 세상이 오죽 모지락스러우면 약발도 없는 이야기에 위로를 받겠나 싶다.

시를 많이 읽으면 슬픔과 기쁨에 대해 섬세해진다. 그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우리가 무심히 보아왔던 것들 속에서 기쁨과 슬픔을 찾아내어 기쁜 일은 함께 기뻐해 주고 슬픈 일 역시 함께 슬퍼해 주자는 거다. 그리고 그 속에서 치유와 위로의 실마리를 찾자는 거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 나름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안나 까레리나'에 나오는 명대사이다. 행복한 가정을 보면 사는 게 다 고만고만할뿐더러 행복한 이유 역시 고만고만하다. 그러나 불행한 가정을 보면 그 불행한 이유가 천차만별이다. 행복한 가정은 사랑을 내세우고 불행한 가정은 사랑보다 돈을 내세운다. 비록 사업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아버지보다 많이 부자인 아버지의 친구가 이혼한 이유도 돈이다.

부자인 친구는 딸 둘에 아들 하나를 두었지만, 그의 딸이나 혹은 아들이 "아버지 얘기 좀 해요." 무릎으로 다가앉으면 아버지의 친구는 "왜? 돈 필요해? 얼마면 돼?"하며 지갑부터 꺼낸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게 자식과의 대화 전부다. 그런 친구를 보며, 친구의 딸과 이혼한 그의 부인을 보며 아버지는 결심했다. 엄마와 너희들 앞에서만큼은 아버지의 생이 다 하는 날까지 약장수로 살아갈 것을,

"애덜은 가고 아줌마들은 바짝 붙어봐. 이 비얌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오늘은 뻔뻔스럽게 아버지가 지은 시를 첨부한다. 약장수는 원래 뻔뻔스럽다. 그리고 사진은 20여 년 전 시장 입구에서 주운 포지티브 필름인데 우습지만, 아직도 책상 서랍에 있더구나.

-

사랑은.

가슴
저미던
아픈 기억마저도

훗날
아름다운 기억으로
되돌려 놓고야 마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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