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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지적 없으면, 우린 패럴림픽도 못보나요?

자국에서 열린 패럴림픽에 소외되는 장애인들... 시청자로서의 권리 존중돼야

등록|2018.03.14 16:04 수정|2018.03.14 16:22
1981년에 열린 봉황대기 전국고교 야구대회는 시각장애인들이 불편없이 결승전 경기를 즐길 수 있게 해 주었다. 유수호, 박종세 캐스터의 박진감 넘치는 야구 중계는 눈으로 보지 않아도 마치 보이는 것처럼 느낄 수 있었다. 타자가 타석에 서서 커브를 받아 치면 요란한 소리와 함께 "홈런이냐, 홈런이냐"는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러면 시각장애인들은 홈런인지 아닌지 가슴을 졸이며 결과를 기다리곤 했다. 보이진 않지만 보이는 것과 별 다를 것 없이 느낄 수 있었다. 이 날은 필자에게 맹학교의 많은 학생들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야구를 관람한 추억으로 남았다. 이는 두 캐스터의 자세한 설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2월 9일,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의 개막식이 전 세계에 중계되었다. 시각장애인인 필자는 캐스터의 중계와 해설가의 해설을 들었지만 무슨 상황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비장애인은 눈과 귀로 마음껏 느끼고 즐길 수 있겠지만 필자는 그럴 수 없었다.

시민단체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장애벽허물기)'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개회식에 수어 통역을 제공하지 않은 대회 조직위원회와 이를 관리 및 감독하지 않은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를 차별행위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했다.

인권위는 이 진정을 받아들여 폐회식에는 수어 통역을 제공할 것을 권고했지만, 결국 수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필자는 청각장애인은 아니지만 청각장애인들이 수화 통역이 없어 얼마나 답답하고 화가 났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패럴림픽 중계시간, 외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

패럴림픽 개막 리셉션 환영사 하는 문 대통령문재인 대통령이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개회식에 앞서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용평리조트 내 블리스힐스테이에서 열린 패럴림픽 환영 리셉션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9일에는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대회가 열렸다. 이 날 개회식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 통역이 제공되었지만,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 음성 서비스는 제공되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은 장애인들의 올림픽인 패럴림픽에서 조차 소외되고 만 것이다.

더욱이 패럴림픽 경기는 중계방송이 거의 없어 우리나라에서 패럴림픽이 열리는지도 알기 힘든 상황이다. 공중파 3사의 메인 뉴스에서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1~2꼭지의 패럴림픽 소식을 전달하지만 전반적인 대회 상황은 전혀 알 수가 없다.

이에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 보좌관 회의를 통해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중계방송이 부족하다"며 중계를 확대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그에 따라 KBS를 비롯한 방송사들은 13일부터 패럴림픽 중계방송을 조금씩 확대 편성했다. 실제 지상파 3사의 편성표에 따르면 KBS는 약 41시간, SBS는 32시간, MBC는 18시간을 패럴림픽 중계에 할애한다.

프랑스의 FT 100시간, 미국 NBC 94시간, 일본 NHK 62시간을 중계한 것에 비교해 보면 매우 부족하다.  KBS의 경우 문 대통령의 지적 이후 기존 25시간에서 부랴부랴 확대 편성했지만, 자국에서 열린 경기임에도 외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장애인의 시청자로서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은 민주 국가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각 방송사는 시청률을 걱정하느라 패럴림픽 중계를 배제하고 있다. 방송사는 시청률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공익성을 실현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치러지는 패럴림픽에서 어떤 경기가 펼쳐지는지 장애인들 역시 잘 모른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대통령의 지시가 없어도, 패럴림픽이 막을 내려도 시청각 장애인들의 방송 접근권이 보장되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더불어, 언론사는 장애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갖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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