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이재봉 교수 "국익 위해서는 친미도 반미도 필요하다"

[서평] 시와 소설, 음악과 미술, 연극과 영화를 통한 미국 비판서 <문학과 예술 속의 반미>

등록|2018.03.16 15:37 수정|2018.03.16 15:40
"한국의 반미주의는 불평등한 한미 관계로 손상된 민족적 긍지와 침해된 자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외침이요 몸부림이었다."


최근 출판된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이재봉 교수의 책 <문학과 예술 속의 반미>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국제 관계 관련 기사는 독자들에게 그렇게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한다. 기자 입장에서는 늘 쉽게 말해 조회 수가 잘 나오지 않는 분야를 쓰는 것이 부담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제 한 매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과 무역협상이 잘 안 되면 '주한미군 철수'를 시사했다"라는 기사를 송고하자 반응이 폭발했다.

페이스북 기사 댓글에 달린 누리꾼들의 반응은 대체로 "제발 어서 나가달라"는 내용이 주류를 이뤘다. 대체로 30∼40대 독자들이 대다수일 텐데 이들에게도 알게 모르게 이른바 '반미 감정'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에 다시 놀랐다.

그래서 지난주 이 교수에게서 선물 받은 책을 차분히 다시 읽어 보았다. 해방 전후의 시기부터 최근의 상황까지 이른바 '반미주의'와 관련해 그렇게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에 우선 놀랐다.

80년대 운동권 출신인 나 자신도 과거 이승만 정권이나 박정희 정권의 혹독한 탄압 시절에 무슨 반미 운동이 가능이나 했을까? 생각했지만, 이 책을 자세히 읽는 순간 그러한 편견은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 <문학과 예술 속의 반미> : 시와 소설, 음악과 미술, 연극과 영화를 통한 미국 비판 ⓒ 네잎클로바


저자도 이 책을 통해 "반미주의는 1980년대에 처음 나타난 게 아니다. 한반도가 해방된 1945년부터 반미운동이 전개되었다"며 "그때부터 1970년대까지 '무풍'이 아니라 '미풍'도 불고 때때로 '강풍'으로도 불었다가, 1980년대부터 '폭풍'과 '태풍'으로 바뀐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자는 또한, "한국인들은 미국의 내정간섭과 지배를 받으며 미국인들의 오만함과 굴욕감을 맛보았다"면서 "그러나 그들의 원한과 분노는 혹독한 정치적 탄압과 빈약한 사회경제적 환경 때문에 자유롭게 표출될 수가 없었다"며 현 상황을 그대로 갈파했다.

하지만 저자는 "미국과 한국은 국력의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평등한 관계를 맺기는 어렵다"면서 "따라서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간섭이나 압력이 존재하는 한 한국인들의 반미자주 운동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정통성 있는 정부라면 반미운동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필요 없다"

그는 또 "이제 한국 정부는 시민사회의 반미자주운동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면서 "과거에는 정통성을 지니지 못한 정부나 위정자들이 미국의 지지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미국 정부나 정치인들보다 더욱 과민하게 반응해왔다"는 따끔한 질책도 잊지 않았다.

사실, 저자하고는 예전부터 내가 존경하는 학자로 모시고 있어 친분이 있는 사이다. 그가 예전에 '친(親)북'으로 낙인이 찍혔을 때, 나는 실제로 북한을 그만큼 잘 파악하고 있는 '반(反)북' 인사도 보지 못했다.

"우리가 북한을 알아야 교류도 하고 북한과 친해야 통일도 할 수 있는데, 친북이 무슨 잘못이 있느냐?"라고 설파하는 그의 말은 바로 내 가슴에 와닿았다. 이른바 '빨갱이 타령'으로 위선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질타하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지식인'의 모습이 엿보였다.

저자는 새로 출간된 이 책에서도 "국익을 위해서는 상황에 따라 '친미'도 필요하고 '반미'도 필요하다"면서 자신의 주관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반미'가 아니라, 우리 역사 속에서 미국의 존재와 관련해 어떠한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되새겨 보면서 우리의 활로를 찾자는 것이다.

저자 역시 강연을 통해 "더 중요한 것은 '지미'와 '용미'다. 먼저 미국을 제대로 알고(知美), 상황에 따라 미국에 반대도 하고(反美) 경우에 따라 지지도 하면서(親美), 미국을 활용해 (用美)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국가 목표나 이익을 추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어쩌면 제목에도 있는 '반미'라는 이 글자 때문에 이른바 미국을 무조건 반대하는 도서로 낙인이 찍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찬찬히 다 읽고 나면 더 큰 눈으로 미국을 바라볼 수 있는 알 수 없는 힘이 생겨난다.

아직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미국만큼 중요한 변수를 자치하는 요소가 또 있을까. '주한미군 주둔'으로 상징되는 무조건적인 반미가 아니라, 지금도 실제로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을 바로 알기' 위해서도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