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사인이라고요? 묘하네요
개성을 드러내는 사인... 멋진 사인 하나씩 가졌으면
봄비다. 반갑다. 사람의 생존에 물이 꼭 필요하듯 자연도 물을 머금어야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다. 만물 생존의 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비로 완전 해갈이 된 것 같다고 하니 자연의 한 구성원으로 기쁘기 그지없다.
이런 우중에 할 일 두 개가 기다리고 있다. 책 읽는 것과 글 쓰는 것이 그것이다.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괜찮겠다. 청경우독(晴耕雨讀)이란 말이 있긴 하지만 나는 후자, 즉 글쓰기를 택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따지고 보면 멋보다는 실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 같다. 얼마 전 한 밴드에 나의 사인(sign)을 찍은 사진을 올려놓고 뭔지 맞추는 사람에게 책을 한 권 선물하겠다고 했다. 재미로 올린 것인데 여러 사람이 댓글로 반응을 보였다.
퀴즈 같지 않은 퀴즈였지만 생각한 것보다 반응이 좋았다. 사인을 웃음 띤 나의 얼굴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몇 개를 골라 소개하면, '목사님 웃음이 보이네요', '새해에도 이렇게 웃는 한 해 되시길', 사람 얼굴? 마음 심-한자로...
그런 중에 한 사람이 정답을 맞추고 말았다. 다름 아닌 농부작가 문홍연이다. 그는 지금 김천일보에 '# 일상...'이라는 주유기(周遊記)를 연재해 인기를 누리고 있다. 농사를 지으면서 쓰는 글이 구수하다. 문 작가는 다음과 같이 댓글을 달았다.
"묘한 사인(sign)입니다."
정곡을 찔린 것과 같은, 아니 나만의 비밀을 들킨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정답이 나온 이상, 거기에 대해 가타부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답을 맞춘 문 작가에게 책 한 권 선물할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약속이니까.
사인(sign)은 영어다. 자신을 드러내는 독특한 문자나 기호로 인장(印章)을 대신한다. 어떤 사람은 이 사인을 사인(私印)과 동일하게 생각하나 그렇지 않다. '사인'은 한자에서 온 말로 개인 도장을 일컫는 것이다.
우리가 예전부터 쓰던 수결(手決)이 영어 사인(sign)에 가깝다. 수결은 이름이나 직함 밑에 자필로 글씨를 직접 써 넣는 것을 말한다. 서명(署名)과 같은 말이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인이 통용된다고 한다.
내 사인에 대해 부연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나도 사인이 여러 번 바뀌었다. 지금 쓰는 것은 1999년 농촌 목회를 하기 위해 낙향할 때부터 쓰기 시작했으니 근 20년이 다 되어 간다. 가장 오래 쓴 것이 된다.
내 사인에는 이름 석 자의 뜻이 다 담겨 있다. 한자로 이(李), 영어 알파벳 엠(m)은 '명(myung)'의 두문자(頭文字)이다. 그리고 흘림체로 쓴 엠(m)은 면을 뒤집어서 보면 역시 '있을 재(在)'의 흘림체가 되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덧붙이면 모두들 그럴 듯하다며 머리를 끄덕인다. 앞으로 남은 생 동안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지금 쓰고 있는 사인을 늘 동반하게 될 것 같다. 남에게 보여주기에도 떳떳하고 의미도 있어 애정이 각별하다.
사인은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기 때문에 관심 가는 경우가 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사인들을 보아왔지만 아직까지 나의 뇌리에 강하게 자리하고 있는 사인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5, 6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의 사인이 그것이다.
성함이 김동일 선생님이셨는데, 그 사인이 얼마나 멋졌으면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선생님의 사인을 흉내 낼 수 있을 정도다. 선생님은 숙제 검사를 했다는 표시로 몇 개의 동그라미를 그린 뒤 꼭 당신의 사인을 덧붙이셨다.
한 번은 숙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생님께 검사를 받지 못해 혼 날 위기에 처했다. 그 다음 날 다시 검사하는 시간에 붉은 동그라미를 표시하고 밑에 선생님 사인을 해 넣음으로써 감쪽같이 위기를 모면했다. 사인을 도용한 덕이다.
요즈음 웬만한 것은 사인으로 다 통한다. 전자 시대여서 더 그렇다. 멋진 사인 하나는 갖고 살아가야겠다. 사인 난에 한글 또는 한자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써 넣는 사람들을 흔히 본다. 혈흔과 같이 필체도 자기만을 나타내는 고유성이 있다.
사인 난에 자신의 이름을 써 넣는 것도 괜찮지만 자기만의 삶을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는 멋진 사인 하나쯤 가지기를 권한다. 아무렇게나 사인을 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안에 자신의 이름과 철학, 삶의 과정까지 함축되어 있으면 더 할 나위 없겠다.
사인 이야기를 하며 과거를 되돌아보니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초등학교 때 친구부터 스승 그리고 사회에 진출해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떠오르는 사람들에게 내 사인을 선물할 날이 있을까. 사인은 인정 나눔의 매개물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우중에 할 일 두 개가 기다리고 있다. 책 읽는 것과 글 쓰는 것이 그것이다.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괜찮겠다. 청경우독(晴耕雨讀)이란 말이 있긴 하지만 나는 후자, 즉 글쓰기를 택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따지고 보면 멋보다는 실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 같다. 얼마 전 한 밴드에 나의 사인(sign)을 찍은 사진을 올려놓고 뭔지 맞추는 사람에게 책을 한 권 선물하겠다고 했다. 재미로 올린 것인데 여러 사람이 댓글로 반응을 보였다.
퀴즈 같지 않은 퀴즈였지만 생각한 것보다 반응이 좋았다. 사인을 웃음 띤 나의 얼굴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몇 개를 골라 소개하면, '목사님 웃음이 보이네요', '새해에도 이렇게 웃는 한 해 되시길', 사람 얼굴? 마음 심-한자로...
▲ 이명재(李明在)의 뜻이 오롯이 담겨 있는 나의 사인(sign) ⓒ 이명재
그런 중에 한 사람이 정답을 맞추고 말았다. 다름 아닌 농부작가 문홍연이다. 그는 지금 김천일보에 '# 일상...'이라는 주유기(周遊記)를 연재해 인기를 누리고 있다. 농사를 지으면서 쓰는 글이 구수하다. 문 작가는 다음과 같이 댓글을 달았다.
"묘한 사인(sign)입니다."
정곡을 찔린 것과 같은, 아니 나만의 비밀을 들킨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정답이 나온 이상, 거기에 대해 가타부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답을 맞춘 문 작가에게 책 한 권 선물할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약속이니까.
사인(sign)은 영어다. 자신을 드러내는 독특한 문자나 기호로 인장(印章)을 대신한다. 어떤 사람은 이 사인을 사인(私印)과 동일하게 생각하나 그렇지 않다. '사인'은 한자에서 온 말로 개인 도장을 일컫는 것이다.
우리가 예전부터 쓰던 수결(手決)이 영어 사인(sign)에 가깝다. 수결은 이름이나 직함 밑에 자필로 글씨를 직접 써 넣는 것을 말한다. 서명(署名)과 같은 말이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인이 통용된다고 한다.
내 사인에 대해 부연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나도 사인이 여러 번 바뀌었다. 지금 쓰는 것은 1999년 농촌 목회를 하기 위해 낙향할 때부터 쓰기 시작했으니 근 20년이 다 되어 간다. 가장 오래 쓴 것이 된다.
내 사인에는 이름 석 자의 뜻이 다 담겨 있다. 한자로 이(李), 영어 알파벳 엠(m)은 '명(myung)'의 두문자(頭文字)이다. 그리고 흘림체로 쓴 엠(m)은 면을 뒤집어서 보면 역시 '있을 재(在)'의 흘림체가 되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덧붙이면 모두들 그럴 듯하다며 머리를 끄덕인다. 앞으로 남은 생 동안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지금 쓰고 있는 사인을 늘 동반하게 될 것 같다. 남에게 보여주기에도 떳떳하고 의미도 있어 애정이 각별하다.
사인은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기 때문에 관심 가는 경우가 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사인들을 보아왔지만 아직까지 나의 뇌리에 강하게 자리하고 있는 사인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5, 6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의 사인이 그것이다.
▲ 초등학교 5,6학년 담임을 맡으셨던 김동일 선생님이 사인(sign). 완벽하지는 않지만 비슷할 것이다. 선생님이 함자(김동일)를 다 담고 있는 것 같다. ⓒ 이명재
성함이 김동일 선생님이셨는데, 그 사인이 얼마나 멋졌으면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선생님의 사인을 흉내 낼 수 있을 정도다. 선생님은 숙제 검사를 했다는 표시로 몇 개의 동그라미를 그린 뒤 꼭 당신의 사인을 덧붙이셨다.
한 번은 숙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생님께 검사를 받지 못해 혼 날 위기에 처했다. 그 다음 날 다시 검사하는 시간에 붉은 동그라미를 표시하고 밑에 선생님 사인을 해 넣음으로써 감쪽같이 위기를 모면했다. 사인을 도용한 덕이다.
요즈음 웬만한 것은 사인으로 다 통한다. 전자 시대여서 더 그렇다. 멋진 사인 하나는 갖고 살아가야겠다. 사인 난에 한글 또는 한자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써 넣는 사람들을 흔히 본다. 혈흔과 같이 필체도 자기만을 나타내는 고유성이 있다.
사인 난에 자신의 이름을 써 넣는 것도 괜찮지만 자기만의 삶을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는 멋진 사인 하나쯤 가지기를 권한다. 아무렇게나 사인을 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안에 자신의 이름과 철학, 삶의 과정까지 함축되어 있으면 더 할 나위 없겠다.
사인 이야기를 하며 과거를 되돌아보니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초등학교 때 친구부터 스승 그리고 사회에 진출해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떠오르는 사람들에게 내 사인을 선물할 날이 있을까. 사인은 인정 나눔의 매개물도 되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지역신문 <김천일보>에도 기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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