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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입 막는 3가지 장애물... 금태섭 "익명 폭로도 미투다"

[국회-여성가족위] 무고죄·실명 공개 강요·사실적시 명예훼손 등 문제 지적

등록|2018.03.19 18:34 수정|2018.03.20 09:12
[박인숙 자유한국당 의원] : "장관직을 걸고 (폭행과 협박에 의해서만 적용되는) 강간죄를 고치겠다고 말하라."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 "장관직을 걸고 그렇게 하겠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법 개정도 장관직을 걸고 (노력) 하겠다."

▲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19일 미투 운동과 관련한 정부 대책을 보고하기 위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 남소연


정현백 장관이 장관직을 걸었다. 19일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성희롱·성폭력 근절대책 현안보고 자리에서 여야 가릴 것 없이 한국 '미투' 운동에 대한 여성가족부의 미온적 대응에 질타가 쏟아지자 나온 답변이다.

앞서 박 의원은 "장관직이라는 것, 별거 없다. 고위층 비정규직이다"라면서 "장관직을 걸고 강간법 하나는 고치겠다고 하면 여성들이 박수칠 거다. 왜 자꾸 검토해보겠다, 논의하겠다고만 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회의에서는 '미투'를 주저하게 만드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도 지적됐다.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고발해도 되레 무고죄나 명예훼손 등으로 역고소를 당하거나 여론의 공격을 받는 지금의 현실이 함께 도마에 올랐다.

특히 법률인 출신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금태섭 의원은 '미투' 피해자들의 입을 막는 현행 법 개선에 여성가족부가 적극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침묵 유발 ①] 피해자 옥죄기·무고죄

박주민 의원은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따르면 피해자에 무고죄가 적용되는 부분을 방지하라는 권고가 있었다"면서 "이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가부가 조치를 취해야 하고, 무료 변론을 받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의 말처럼, 루스 핼퍼린 카다리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부의장은 지난 달 22일 유엔 본부 회의에서 한국의 성폭력 피해에 대한 무고죄, 명예훼손 고소 행태에 "모든 피해자를 침묵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박 의원은 더 나아가 성폭력 피해자들이 상담을 위해 찾는 여성가족부 산하 기구 해바라기센터가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함께 지적했다. 정 장관은 "(상담원) 교육은 진행 예정이다. 상담 서비스 종사자들의 처우 개선을 병행하지 않으면 전문성 확보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예산 확보"의 문제라는 것이다.

곧바로 현실 대응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따라 나왔다. 박 의원은 "해바라기센터의 상담 교육 예정을 보니 '우월적 지위에 의한 성폭력, 성희롱' 관련 상담 역량 강화 교육이 오는 7월 30일로 예정돼 있었다. 지금부터 넉 달 후다"라면서 "지금 미투로 문제되고 있는 것이 우월적 지위에 의한 성희롱과 성폭력인데 7월 30일 교육이라니... 너무 안이하다. 순서를 바꾸든지 앞당겨 하는 것이 맞고, 교육 내용을 봐도 미흡하다. (지금의) 상황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침묵 유발 ②] 익명 폭로도 미투다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폭로는 '미투'가 아니라는 일부 여론에 대한 인식 전환도 강조됐다. 금태섭 의원은 "일각에서는 실명으로 폭로해야한다, 익명 폭로는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성폭력 피해자가 실명을 밝혀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라면서 "여성가족부에서 가명 조서를 써도 되고, 신원 공개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홍보해 달라"고 요구했다.

실제 우리 법에도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범죄 신고자나 그 친족이 보복을 당할 우려가 있는 경우 그 취지를 조서 등에 기재하고 범죄 신고자 등의 인적 사항은 기재하지 아니한다(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 제7조)"라고 적시되어 있다.

금 의원은 이어 "(협의 부처인) 법무부 장관이 나름 고려할 상황이 있을 테고, 또 장관이 말해도 그 뜻이 관철되지 않는 다고해도... 가명 조서 문제 등은 공개적으로 홍보해서 피해자들이 용기를 얻도록 해달라"고 강조했다.

박 의원 또한 "안타까운 것은 원래 시스템이 잘 작동했다면 사실 (피해자들이) 미투를 하지 않아도 됐다는 것이다"라면서 "실명과 얼굴을 드러내며 피해를 고발하지 않아도 해결이 잘 돼야하는 것인데... 지지하면서도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침묵 유발 ③] 가해자의 역공격, 사실적시 명예훼손

무고죄 외에도, 가해자가 피해자를 옥죄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법안 개정에 대한 여가부의 적극적 의견 개진도 함께 요구됐다.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고발했음에도, 가해자가 고발 사실을 역이용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세태에 대한 비판이었다.

금 의원은 "(사실 적시 명예훼손의) 조각 사유(죄가 없음)는 오직 공익을 위해 조각이 되는데,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고소를 당하고 경찰서에 가서 공익을 위해 한 것이라고 이야기해야 (조각) 한다"라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폭로하는데 공익을 위해 (폭로) 하는 것이라고 묻는 장치인 것"이라고 짚었다. 정 장관은 이에 "(법을) 개정하는 방향으로 여가부의 의견을 낼 것"이라고 답했다.

같은 날 국회사무처 의사국 의안과가 알린 '지난 한 주간 새로 들어온 법률안'에는 표창원 의원이 대표 발의한 관련 법안이 올라 와 있었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정당한 문제제기가 범죄로 치부되지 않도록"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 요건에 '사람을 비방할 목적'을 추가해 법 적용 범위를 축소하는 취지의 형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었다.

표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개정 법률안에는) 특정인을 비방할 목적 없이 성폭력 등 범죄피해사실 등을 밝힌 경우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라면서 "가해자가 자신을 방어할 수단으로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를 악용하지 않도록 해야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미투는 권력관계 또는 지시, 감독관계에서 성폭력 등 불법적 처우로 고통 받아온 피해자들이 우리 앞에 힘겹게 내어놓은 용기인 만큼, 그들의 증언이 법적 공방으로 소모되지 않도록 해야한다"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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