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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 1만 원은 돼야 여행이라도..." 여성 가장 결국 울다

[두 도시 이야기 - 서울 ②] "올해 최저임금 올랐지만 살림살이 나아진 것 없어"

등록|2018.03.24 20:19 수정|2018.03.24 20:19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사회적인 논란이 거셉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은 노동자들의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지켜주는 버팀목"이라며 최저임금 인상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보수진영과 재계는 최저임금 인상이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 나아가 한국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면서 반발하고 있습니다. <br> <br><오마이뉴스>가 여기 두 도시 이야기를 내놓습니다. 미국 대도시 가운데 가장 먼저 시간당 최저임금 15달러를 도입한 시애틀. 이제 갓 7530원이 된 한국의 서울. 최저임금 인상은 이들 두 도시 노동자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들의 삶은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또 경제는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여기 두 도시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말]

▲ 대학생 자녀 2명을 홀로 키우는 박씨는 최저임금이 올랐지만, 살림살이는 여전히 퍽퍽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자녀들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는 북받쳐오르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 권우성


"애들이랑 같이 가까운 데 여행이라고 가봤으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묻자 박아무개(52)씨는 결국 눈물을 훔쳤다. 그는 최저임금 노동자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월급도 올랐지만, 가벼운 가족 여행조차 아직은 꿈 같은 일이다. 월급이 올랐지만, 주머니가 팍팍한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대학생 아들 2명을 키우는 여성 가장인 박씨는 10여 년째 서울 구로구의 한 제조업체에서 차량용 시트를 제봉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경력이 쌓였지만, 월급은 언제나 최저임금에 딱 맞춰 지급돼 왔다.

올해 첫 월급 160만 원

올해도 마찬가지다. 지난 5일 박씨의 올해 첫 급여 통장에는 160여 만 원이 들어왔다. "회사가 시급 7530원에 정확히 맞춰주더라"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지난해보다는 10만 원 가량 올랐지만, "여전히 마이너스 인생"인 박씨다.

박씨의 월 지출 내역은 이렇다. 아파트 관리비(20만 원)와 보험료(45만 원), 생활비(30만 원)가 나간다. 여기에 더해 대학생 자녀 2명의 학자금과 용돈(70만 원) 명목으로 돈이 빠져나간다. 질 좋은 반찬거리를 조금 더 살 수 있다는 게 그가 느끼는 월급 인상 효과다.

"오르긴 올랐는데, (오른 월급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월급이 올라서 그나마 좀 변한 게 있다고 하면 반찬거리를 좀 더 질 좋은 걸로 사고 고기반찬 조금 더 해먹을 수 있었다는 거?"

박씨의 가계부는 아슬아슬하다. 아파트 관리비나 생활비가 조금이라도 더 나가면 '마이너스'다. 그때를 대비해 아파트 관리비가 적게 들어가는 시기에 조금씩 돈을 모아 충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목돈 저축은 꿈꿀 수 없다.

피곤할 때 쌍화탕 한 병, 자신에게 쓰는 유일한 지출

▲ 가산단지 내 한 사무실의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는 관련 없음. ⓒ 신상호


집안 살림에 대학생 자녀 뒷바라지까지 하느라 박씨는 자기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일이 거의 없다.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떨거나, 가끔씩 산에 오르는 것 정도가 박씨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회사 출퇴근하는 교통비, 그리고 일하다가 조금 피곤하면 쌍화탕 하나 정도 사먹는 거? 미용실 가서 염색하기도 비싸서 집에서 해요. 수영도 해보려고 했는데 힘들더라고요. 여유가 안되니까. 건강 생각해서 뭘 하긴 해야 하는데 여기저기 들어 가는 게 많으니까…"

그의 가장 큰 소원은 가족여행이다. 가계부 사정이 넉넉지 않다보니, 아들들과 흔한 여행 한번 가보지 못했다. 지금 월급으로도 가족 여행을 꿈꾸기는 어렵다. 덤덤하게 말하던 박씨가 울컥했다.

"(금전적인 여유가 생긴다면) 우리 애들하고 여행 가는 거... 아직 한번도 못 가봤죠. 여행 그냥 어디가 좋다기보다 가까운 곳에라도, 우리 셋이 맘 편히 쉴 수 있는 곳, 굳이 멀리 가지 않더라도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면 좋겠죠. 지금은 어려워요.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원이 되면 모를까..."

"계속 마이너스죠 뭐"

▲ 가산디지털단지역 4번 출구, 계단을 올라가면 아파트형 공장과 옛날식 공장이 섞인 독특한 풍경이 연출된다. ⓒ 신상호


주머니가 팍팍한 삶은 박씨만이 아니다. 가산디지털단지 휴대전화 부품 생산업체에 근무하는 김아무개(52, 여)씨도 최저임금 노동자다. 사업을 하던 김씨의 남편은 지난해 교통사고로 몸을 다쳐, 일을 쉬고 있다. 사실상 가장 노릇을 하면서, 대학생인 딸 2명의 뒷바라지도 하고 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올해 첫 월급은 세금을 빼고 138만 원을 받았다. 지난해보다 20만 원 올랐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대학생 딸 2명 학비와 용돈(60만 원), 교통비 10만 원, 보험 등 생활비 명목으로 50만 원 가량이 들어간다.

남편의 병원 치료비는 보험 처리가 가능해 한시름 덜고 있지만, 김씨의 수입으로 버티기는 힘들다. 최저임금이 올랐지만, 가족 4명의 삶을 꾸리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홑벌이가 된 지) 한 6개월요? 지금까지는 모아놓은 돈을 조금씩 썼어요. 남편이 앞으로 1년 정도 더 쉬어야 해서… 지금 이 상태로 간다면 제대로 저축도 못하고, 마이너스가 되겠죠. 딸 용돈도 차비, 식비만 줘요. 남편이 다시 일하거나, 딸들이 대학을 졸업해야 그나마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요?"

김씨는 지난해 초보다 월급이 줄어든 독특한 사례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월급은 180만 원 가량을 받았다.

잔업 특근 사라지면서 최저임금 올라도 실질 월급은 줄어

기본급은 최저임금이지만, 잔업과 특근을 하면서 수당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 9월부터 회사 쪽은 일감이 없다며 잔업과 특근을 없앴다. 하루 8시간만 일하면서 김씨는 최저임금만 받기 시작했다. 실질 임금은 오히려 줄어든 것.

"예전에는 야간도 하고 잔업도 하고 했는데, 월급이 줄어드니까, 최저임금이 올라도 별다른 효과가 없는 거 같아요. 전에 더 수입이 많았고, 그동안 계획했던 것에서 수입 구조가 확 줄었잖아요. 지금 벌어놓은 거 까먹기 시작하는 거죠. (지금처럼 최저임금만 받게 되면) 앞으로는 저축도 끝나겠죠?"

김씨가 다니는 회사는 2차례에 걸쳐 희망퇴직을 받았다. 회사 재정이 계속 어려워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최저임금을 받는 상황에서 일자리까지 위협받는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 사업주만 배부르고 노동자는 배고픈 현실에도 불만이 많다.

"말이 안 되는 거 같아요.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많아요. 솔직히 자기네가 조금 덜 가져가면 그런 생각이 나지 않을텐데, 너무 많이 가져가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충분히 노동자와 (이윤을) 나눌 수도 있는데, 그걸 안하려고 하는 거 같아요.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지만) 담담해요. 끝까지 싸우려고요."

▲ 가산디지털단지의 퇴근시간, 업무를 마친 노동자들이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 신상호


[최저임금 특별기획 - 두 도시 이야기]
[시애틀 ②] "최저임금 15달러는 시작, 생존 위해 계속 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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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괄 김종철취재 선대식, 신나리, 신지수(시애틀) 신상호, 박정훈(서울), 권우성, 남소연(사진)데이터 기획 이종호디자인 고정미개발 박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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