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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공개념이 공산주의? 고등학생도 비웃는다

[아이들은 나의 스승 132] '땅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는 고등학생과의 대화

등록|2018.03.24 18:15 수정|2018.03.24 18:15
"저런 얼토당토않은 말에 수긍하는 분들이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에요. 사람들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더니, 말하는 이나, 또 그걸 믿는 이들이나, 저희 눈에는 의식이 여전히 20세기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 같거든요. 몇몇 친구들은 '무뇌충'들 아니냐며 키득거리기도 해요."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을 두고 대한민국을 공산화시키려는 좌파들의 야욕이 드러났다며 발끈한 자유한국당의 반발에 대한 한 아이의 반응이다. 지난 22일 자유한국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토지공개념을 명시한 대통령의 개헌안에 '사회주의 관제 개헌'이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토지의 공공성을 강조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색깔론으로 응수한 것이다.

자타공인 '헌법 마니아'라는 그는 요즘 1948년 제헌 헌법부터 개정된 내용을 오답노트 정리하듯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헌법이 엄청난 분량에다 한자말이 많아 무지 어려울 거라 여겼는데, 막상 A4 크기로 출력해보니 별 것 아니었다며 주변 친구들에게도 일독을 권유하고 있단다. 아직도 친구들로부터 헌법을 보려면 법원 같은 곳에 가야하는 것 아니냐는 황당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고 한다.

특히 헌법 제2장 제23조의 내용을 보란 듯이 되뇌며, 자유한국당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그 몇 줄 안 되는 조문조차 안 읽어본 모양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다른 건 몰라도,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다루고 있는 헌법 제2장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헌법을 단 한 번이라도 훑어본 이라면, 공산주의 혁명 운운하는 저들의 주장을 코미디로 여길 게 분명하다고 단언했다.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짤막한 세 문장으로 된 헌법 제23조의 1항과 2항을 그는 이렇게 해석했다. 공공복리에 어긋나는 재산권 행사는 법률로써 제한된다는 의미라는 것.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달리 해석할 수 없을 거라면서, 토지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을 두고 사유재산제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는 저들의 주장은 되레 자신들이 문맹임을 고백하는 것이라며 조롱했다.

거주할 게 아니라 이윤을 챙길 목적으로 집을 사고파는 것은 집 없는 이들의 희망을 짓밟는 일이니 공공복리에 어긋나는 행위다. 농사를 지을 것도 아니면서, 농지를 사고파는 일은 헌법상 경자유전의 원칙을 위반한 범죄다. 나아가, 땅과 건물을 사라며 투기를 종용하는 신문과 방송 광고까지 공공복리에 반하는 것이라며 법으로 엄격히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저들의 주장은 공산주의라는 말만 들으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응하는 가엾은 유권자들에게 보내는,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으로서의 몸부림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또래 친구들 중에도 공산주의 말만 나오면 토끼눈을 치켜뜨는 아이들이 더러 있다면서, '레드 콤플렉스'의 강인한 생명력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이는 그가 친구들 앞에서 통일의 당위성을 부르짖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래 친구들에겐 이름조차 낯설 '토지 공개념'에 대해 그가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작년 방과 후 수업 때 수강했던 현대사 강좌가 직접적 계기였다고 말했다. 해방 직후 극심한 좌우 이념 대립 과정에서도 국회가 꾸려지고 헌법이 제정되는 과정이 특히 흥미로웠다면서, 지금은 공휴일에서 빠진 제헌절의 역사적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됐다며 뿌듯해했다.

우선, 인터넷에서 헌법 전문을 출력한 뒤 클리어 파일에 담아 보관하고 있다며 자랑스레 보여주었다. 최근 개헌과 관련된 뉴스를 접할 때마다 수시로 꺼내 읽게 된다고 한다. 그때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면서, 헌법 정신은 판검사나 변호사들이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일상 속에서 체감하는 상식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현대사를 제대로 공부하고자 한다면, 다른 건 다 집어치우고, 헌법만 읽어봐도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제헌 헌법부터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계기로 개헌을 한 현행 헌법까지 훑다보면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과 당시 권력자들의 속내를 고스란히 읽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내친김에 정규교육과정에 헌법이 독립 교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치기도 했다.

제헌 헌법의 초안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법률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놀라고, 세부 조항의 내용이 현행 헌법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좌편향'되어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고 했다. 당시 좌익계 인사들이 사실상 배제된 상태에서 제정된 헌법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제헌 헌법을 두고 '우파가 만든 좌파 헌법'이라고 규정지었다.

특히 제헌 헌법 제84조 등 경제 관련 내용은 차라리 북한 헌법으로 착각될 만큼 파격적이라며, 만약 지금 그런 내용을 입에 올렸다간 대번 구속감이었을 거라고 말했다. 이는 신문에서 '사회주의 관제 개헌'이라는 자유한국당의 논평을 읽은 뒤 맨 먼저 떠오른 헌법 조항이라면서, 어디선가 스크랩한 자료를 보여주었다. 그는 군사독재정권을 거치면서 가장 먼저 축소된 조항으로 보인다며 나름의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제84조.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
제85조. 광물 기타 중요한 지하자원, 수산자원, 수력과 경제상 이용할 수 있는 자연력은 국유로 한다.
제86조.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 그 분배의 방법, 소유의 한도, 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


정부는 고율의 보유세와 각종 개발이익 환수장치의 헌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토지 공개념을 부각시키고 있지만, 제헌 헌법에서는 아예 토지는 사유재산권을 함부로 행사할 수 없도록 묶어놓은 것 아니냐며 반문했다. 애초 토지는 헌법상 공공재라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부동산하면 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헌법상 이 둘은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조합이라는 지적이다.

그에겐 또 다른 계기도 있었다. 최근 탐독한 <월든>이라는 책을 통해 토지 소유에 대한 회의적 인식을 더욱 확고히 하게 됐다고 말했다. <월든>은 미국의 철학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1845년 여름부터 2년여 동안 월든 호숫가에 살며 실천했던 대안적인 삶을 기록한 책으로, 물질만능주의에 찌든 현대사회를 성찰하게 만든 명저로 우뚝하다. 많은 대학에서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들에게 추천하는 대표적인 권장도서이기도 하다.

그는 책에서 '땅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명토 박은 구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저자는 땅에다 금을 그어 담장을 친 뒤 네 땅이니 내 땅이니 다투는 모습을 한탄하며, 땅은 하느님의 것이고, 인간은 단지 땅을 이용하고 보전할 책임만 위임받았을 뿐이라고 설파했다. 이 말이 그동안 읽어온 헌법 조문들과 겹치며 적이 공감되더라는 것이다.

한편으론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땅을 사들이고 건물을 지어대며 몸집을 키워가는 데 여념이 없는 대학이 권장도서랍시고 학생들에게 <월든>을 추천하는 게 우스꽝스럽다고 말했다. 명색이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이 책이 주는 교훈도 모른 채 이름값만 보고 단지 입시용 삼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며 씁쓸해했다. 물론, 그랬다간 보기 좋게 떨어질 테지만, 만약 면접 때에 <월든>에 관한 질문이 나온다면, 한 번 반문해보고 싶다고도 했다.

그는 또, 고등학생의 조언을 들을 리 만무하지만, 토지 공공성 강화를 두고 사회주의와 좌파 운운하는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에게 제헌 헌법과 <월든>을 꼭 한 번 읽어보라며 권하고 싶단다. 읽고 나서도 자신들의 주장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인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문맹을 넘어 사람도 아니라면서. 하긴 그들의 정치적 뿌리인 제헌 국회의 국회의원들에게까지 색깔론을 뒤집어씌울 수는 없을 테고, 그들이 정신적 고향으로 여기는 미국의 철학자에게 종북 좌파 운운하며 낙인찍지는 못할 테니 그들의 반응이 궁금하기는 하다.

그나저나, 그와의 대화를 통해 깨달은 거지만, 만18세, 아니 그보다 더 선거 연령을 낮춰도 그다지 문제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 지난 색깔론에 부화뇌동하는 기성세대보다야 그가 백 번 성숙하지 않은가. 학교에 '헌법 동아리'를 직접 꾸려보고 싶다는 그는, 얼마 전 국회의사당 앞에서 청소년에게도 선거권을 달라고 외치며 '삭발 시위'에 나선 이들을 지지한다면서 <월든>의 한 구절을 들려주었다.

'단지 연륜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젊은이들에게 좋은 스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노인들이 젊은이들에게 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충고는 없다. 노인들 자신의 경험도 아주 부분적인 것에 불과하고, 그들의 삶도 개인적인 이유로 비참하게 실패한 삶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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