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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각 어른요! 고통 없는 곳에서 편히 잠드소서

SO-SO 한 이야기 14

등록|2018.03.26 13:46 수정|2018.03.26 13:46
새벽 일찍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뜨였다. 아직 창밖은 새벽의 어둠으로 흐렸다. 조금 더 잘까 말까를 갈등했다. 전날 금요일은 내가 진밭지킴이 당번인 걸, 깜빡 잊어버리고 말았다. 미안한 마음이 내 잠재의식 속에 살아있었나 보다. 더 잠들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진밭을 향해 차를 몰았다.

▲ 사드가 배치된 소성리 달마산을 오르는 길목인 진밭, 진밭을 지키는 소성리평화지킴이들은 매일 기도로 아침을 시작합니다. ⓒ 손소희


▲ 사드배치된 미군기지로 오르는 진밭에 경찰들의 경계초소가 설치되어 길을 막고 있다. ⓒ 손소희


소성리 마을을 지나는 도로의 검문 테이블은 홀로 쓸쓸히, 그러나 늘 자리를 지켰다. 진밭으로 걷고 있는 사나이가 보였다. 소성리종합상황실의 김 팀장이었다. 긴 롱패딩을 휘날리며 걷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장난기가 발동했다.

"야 타! 안 타!"

차를 세워 그를 향해 소리쳤다. 그는 나를 돌아보며 순간 당황하는 안색이었다. 나는 그의 표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상쾌한 장난에 즐거운 나를 울게 만든 한마디

"오늘 새벽 4시에 규란 엄니 부군께서 돌아가셨다는 거 들었어?"

눈물이 마를 날 없는 규란 엄니의 남편이신 용각 어른이 암투병을 시작한 지 불과 한 달도 안 돼 영면하셨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통원치료 중이었던 용각 어른이 음식을 섭취하지 못해 치료에 난항을 겪는다는 소식에 마음이 아팠다. 병든 남편을 돌보며 몰래 눈물 흘렸을 규란 엄니 걱정에 호두나무 도마를 선물하며 아버님을 위해 맛있는 죽을 끓여달라고 했던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규란 엄니는 남편을 위해 맛있는 죽을 끓여줄 시간이나 있었을까? 왜 그렇게 급하게 가셨는지 용각 어른이 야속하기만 하다. 아침부터 치솟는 눈물을 참지 않았다.

아침을 여는 진밭은 오늘도 사드가 배치된 미군기지의 통행을 감시하기 위해 개신교의 기도로 아침을 연다. 진밭의 새벽은 원불교 교무님들의 목탁 소리로 시작한다.

▲ 진밭을 지키는 또다른 생명 '평화', 진밭의 평화 ⓒ 손소희


진밭의 또 하나의 생명 '평화'는 용각 어른의 부고 소식을 아는지 모르는지 차에서 내린 나를 보고 두발을 들어 껑충껑충 뛰면서 반가이 맞아준다. 비종교인인 나도 매일같이 진밭을 지키면서 이뤄져온 종교인들의 기도는 내 안의 기도로 자리를 잡았다.

원불교의 법회도, 개신교의 예배도, 천주교의 미사도 내게는 내안의 평화를 이루기 위한 기도이고, 소성리의 평화를 염원하는 간절함이다.

소성리에 남겨둔 사드를 뽑지 못해 가슴 아팠을 용각 어른을 위해 기도했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소성리에 홀로 남을 규란 엄니의 곁을 우리가 지켜드리겠다고 용각 어른께 약속했다. 용각 어른께, 소성리는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영면하시라 기도했다.

아침 기도를 마친 소성리평화지킴이들은 진밭교에서 사드 미군기지로 가는 길에 놓여있는 경찰경계초소에 올라 진밭의 아침을 알렸다.

'전쟁연습 중단하고, 대화하라.' '미국사드는 미국으로 가져가라.' '주한미군 철수하라.' '무기장사 그만하라'고 외친다. 배에 힘을 꽉 주고 외친다.

'전쟁 말고 평화', ' 대결 아닌 대화'

소성리가 눈물로 호소하는 이유다.

용각 어른요. 사드 못 뽑았다고 슬퍼하지 마이소. 규란 엄니 잘 모시고, 사드 뽑을 때까지 소성리주민들과 희노애락을 함께 할끼라예. 하늘 나라 가서는 고통없이 편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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