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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유권자 60만명,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주장] 사회 혼란? 청소년에 대한 인식 변화는 시대의 요구

등록|2018.03.25 16:36 수정|2018.03.25 16:36

선거연령 하향 촉구 삭발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회원들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에서 열린 선거연령 하향 촉구 농성 돌입 기자회견에서 삭발 후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남소연


지난 22일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고자 국회 앞에서 청소년들이 삭발식을 열었다. 지방 선거를 대비한 선거법 개정안은 4월 국회에서 통과될 예정이어서, 선거연령을 낮춘 법안이 통과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국회 앞에서 농성을 벌인 것이다.

삭발식은 보다 강력한 의미의 정치적 의사 표현이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혹은 정치적 표 계산에 따라서, 청소년 문제보다 먼저 해결해야 하는 중대한 사안이 있다는 이유로 청소년들의 목소리는 국회로까지 번지지 못했다. 국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정치라고 일컬으면서 암묵적으로 누군가는 투표권도 쥐지 못한 채 철저하게 배제된 것이다.

같은 시각, 조국 민정수석은 선거연령을 만 18세로 낮춘 선거권을 포함한 개헌안을 발표했다. 개헌안이 통과되면 만 18세의 청소년들은 자기 앞의 삶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자신의 의사를 투표를 통해 공식적으로 표현하고 반영함으로써, 공동체의 일원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들의 처절한 삭발의 모습과 조국 교수의 마이크 단상에 모습이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아직 개헌을 논의하고 국민 투표에 부치는 과정이 남았지만, 적어도 개헌안을 발표함으로써 선거 연령에 관한 이슈는 우리 사회에서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선거연령 하향이 불러올 긍정적 변화들

갑자기 중, 고등학교에 다녔던 때가 떠올랐다. 지금은 삶의 모든 부분이 정치적 순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삶 안에 정치를 데리고 올 겨를이 없었다. 중학교 때는 고등학교 진학 문제로, 고등학교 때는 대학교 진학 문제로, 모든 신경이 입시 문제로 쏠렸다.

형식적으로 학급 회의를 도입하면서 민주주의를 체험할 기회도 있었지만, 그다지 생생한 경험은 아니었다. 모두가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딱히 비중 있게 생각하는 시간도 아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짧은 회의 시간마저 교과 과목 수업에 밀려서 사라졌다.

우리 삶과 직결되는 제도에 관한 얘기도 어느 누구에게 들을 길이 없었다. 학교에서도 대체로 진학률에만 관심이 있었지, 학생의 구체적 삶에 관한 얘기를 나눌 시간도 기회도 없었다. 일방적인 규제만 학생들에게 작동하고 있었고, 따지고 물어야 할 차별은 어떤 반박도 허락하지 않은 채로 교실, 학교, 지역 사회에서 횡행했다.

20살이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러나 참고 견디는 데 익숙했던 사람이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 뜨거운 질문을 던질리 만무했다. 질문을 통제 받고 품지 말아야 할 것으로 여긴 많은 사람들이 그저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정치적 무관심을 편한 감각으로 삼은 채 그대로 살아간다.

선거연령을 낮추는 것은 청소년 일반의 삶의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감각이 생기고, 의견을 개진할 가능성을 부여받는 것이다. 선거 연령 하향을 지속해서 반대했던 자유한국당은 학교가 정치적 난장판이 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고 있는데, 이는 어리석은 생각일 뿐이다.

자유로운 의견의 교환과 사회 전반에 걸친 이야기를 공론화하고 자신이 주인공인 교육 정책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시간이 불필요한 것일까? 나는 이러한 시간이 입시 교육 일변도의 학교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법안을 발의하고 정책을 집행하는 공직자들에게도 청소년들이 고려 대상이 될 것이다. 기존 선거에서는 투표권을 가진 학부모들에게 초점을 맞춘 교육 정책 공약들이 주를 이뤘던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청소년들에게 투표권이 부여된다면, 그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라도 청소년들이 주가 될 수 있는 교육 정책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만 18세로 선거 연령이 변경된다면, 증가하는 유권자의 수도 전국적으로 60만 명이 된다고 한다. 항상 60만 명이라는 숫자는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을 때 수험생의 대표 숫자로 여겨졌는데, 이제는 당당히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숫자가 되는 것이다. 투표권도 없는 청소년들을 배제했던 기존의 정치가 더는 외면하고 만만하게 볼 숫자가 아니다.

현재 19세가 돼야 선거권을 주는 나라는 세계에 5개국뿐이고, 심지어 16세로 낮추는 나라들도 등장하고 있다. OECD 회원국 중에 선거연령이 19세 이상인 나라는 한국뿐이다. 한국은 국가적으로 청소년들을 독자적인 신념과 정치적 판단이 결여된 존재로 바라본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지난 촛불 혁명에서 청소년들의 모습은 어땠는가? 혁명의 주체가 되어 교육 정책을 고발하고 이게 나라냐고 되묻는 용기 있는 모습을 지켜봤다.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를 수집하고 자유로운 의견 개진에 익숙한 세대인 그들에게 정치적, 사회적 판단능력이 모자란다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꼰대일 뿐이다.

아마도 곧 적정한 선거 연령에 관한 논의가 비단 청와대와 국회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벌어질 것이다. 개헌안에서도 도입된 판국에 논의를 없애거나 은근슬쩍 지나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교육과 교정의 대상으로서만 청소년을 고정했던 지난 세월은 단지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수많은 핑곗거리들들을 데려왔다.

교육의 주체로서 그리고 우리 사회의 부당한 측면에 대한 건강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청소년을 인식하는 것은 시대의 요구이다. 선거 연령 하향은 시작에 불과하다.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과 수평적 대화를 지향하는 것은 성숙한 사회로서의 기본 소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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