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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샘이 바칼로레아(IB) 논문 쓴 사연

충남 삼성고 박하식 교장, 2013년 고려대 박사논문 '뒤늦게 화제‘

등록|2018.03.27 15:24 수정|2018.03.27 15:24
"바칼로레아를 피상적으로만 알고 한국에 도입하려는 건 아닌가요?"

"우리 팀에 박하식 박사(현 충남 삼성고 교장)란 분이 있습니다. 한국의 경기외고 국제반에 바칼로레아를 들여온 분입니다."

"……(그렇다면 안심이 됩니다.)"

IB 교육과정 한글화 협의IB 교육과정의 한글 번역 작업 등을 협의 중인 IB 한국대표단. ⓒ 제주교육청


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 창립 50주년 국제 총회(25~27일)가 열린 싱가포르 선텍시티(Suntec Singapore Convention & Exhibition Centre).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등 'IB 한국대표단'은 시바 쿠마리 IBO 회장 등 IB 본부 측을 설득하기 위해 진땀을 흘렸다. 특히 이 소장과 손발을 맞춘 이범 교육평론가는 전방위적으로 날아다니면서 한국 측 요청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애를 썼다. 수시로 작전회의를 열어 '설득 논리'를 찾은 뒤 치밀하게 역할 분담을 했다. 마치 평창겨울올림픽 유치작전을 펴는 것 같았다.

핵심은 IB 교육과정의 한글 번역 작업이었다. IB형 교육을 국내 공교육에 보급하기 위해선 한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IB 본부 회장단은 한글화 작업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한글화를 수용하기 어렵다"며 제주교육청과 충남교육청에 전자우편(이메일)을 각각 발송하기까지 했다. '①(한국어 IB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이 얻는 게 무엇인가, ②두 개 언어 결합에 따른 교육의 질이 보장되겠는가, ③IB 교육과정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에 의구심을 품었다. IB 본부의 레베카 휴즈 담당관은 "IB와 한국어의 결합은 흥미로우면서 어려운 과제"라고 밝힐 정도였다.

IB 한글화 '어렵다'에서 '이사회 안건상정'으로 변경

하지만 결국 IB 본부 회장단은 IB의 한글화를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5월 IB 이사회에서 'IB 한글화 방안'을 안건상정하기로 결정했다. '어렵다'에서 '이사회 안건 상정'으로 바뀐 것이다.

"IB 교육과정의 한글 번역 작업이 최종 결정되면 월드컵, 올림픽 유치보다 더 큰 역사적 순간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 미래에 긍정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킬 게 확실하다."

초조해 하던 'IB 한국대표단'엔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IB 본부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주인공이 있었다. 바로 박하식 충남 삼성고 교장이다. 박 교장은 싱가포르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 존재 자체로 IB 본부 회장단을 설득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그는 IB형 교육의 국내 최고 전문가로 IB 본부 측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박하식 충남 삼성고 교장2011년 경기외고 부임 시절 국제 바칼로레아 교육과정을 처음으로 국내 공교육에 도입한 박하식 교장. ⓒ 제주교육청


박하식 교장, 박사논문에서 IB 도입 위한 이론적 토대 마련

박하식 교장은 2011년 경기외고 교장 시절, 국내 고등학교 최초로 IB를 운영할 수 있는 학교로 인증 받았다. 해외 대학을 목표로 하는 국제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했으며, 공교육에 IB형 교육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선구자란 평가를 받았다. 당시엔 학비가 비싼 일부 국제학교에서만 IB 교육이 있었다. IB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IB 본부로부터 엄격한 심사를 통해 승인을 받아야 한다. 최소 2년간 학교시설, 교육과정 운영, 교사 역량 등을 구체적 수준까지 점검 받아야 한다.

박하식 교장은 2013년 고려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박사학위 논문으로 IB 교육에 관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연구 주제는 '국내 고교의 국제공인 교육과정(IBDP)의 도입 및 실행에 관한 연구-경기외고의 사례를 중심으로'였다. 이 논문에는 ▲IB 교육과정의 특징 ▲국내 고교 도입 현황 ▲ 국내 고교 IBDP(IB 고교과정)의 실행과 성과를 소개해 놓았다. ▲ 공교육에 국제 바칼로레아 도입하고, 학문적으로도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충남 삼성고 창의공학설계 경진대회박하식 교장 주도로 국제 바칼로레아 교육과정 도입을 추진 중인 충남 삼성고의 창의공학설계 경진대회 장면. ⓒ 충남 삼성고


교육부와 국가교육회의에선 IB에 별다른 관심 없는 듯

일선 시도 교육청과 몇몇 고교 및 초등학교에서는 자체적으로 IB 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이 중 일부는 30명으로 구성된 'IB 한국대표단'에 포함돼 싱가포르 IB 총회에서 IB 본부 회장단을 설득했다. 일부에선 이번 대표단을 'IB 신사유람단'으로 비유했다.

IB를 국내에 적용하기 위한 이론적 기반쌓기도 활기를 띠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학회(회장 고려대 홍후조 교수)는 IB 연구 결과를 6월 23일 제주도에서 열릴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반면, 교육부(사회부총리 겸 장관 김상곤)와 국가교육회의(의장 신인령)는 IB 교육과정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바칼로레아 교육을 한국에 적용하는 게 타당한지 여부를 확인이라도 하고 있는지 교육 관계자들은 궁금해 한다. IB 교육과정의 한글화 안건이 5월 IB 이사회에 정식 상정되는 과정에서도 교육부와 국가교육회의는 보이지 않았다. '대한민국 교육부'도 나서지 않는데 IB 본부에서 한글화 작업을 서두를 이유는 없다.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모든 정부 부처가 IB 도입에 힘을 실어준 일본과 정반대다.

전남교육청, 전북교육청, 광주교육청, 울산교육청, 인천교육청, 강원교육청은 IB 도입 움직임이 아예 없다. 부산교육청, 대구교육청, 경남교육청, 충북교육청이 그나마 IB 논술형 교육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IB 도입을 선언하거나 검토 중인 제주교육청과 충남교육청, 서울교육청은 외부에 용역을 주어 교육정책연구를 사실상 '의존'하는 상황이다. 외부 도움 없이 경기외고에 IB 교육과정을 도입한 '개인' 박하식 교장의 경쟁력과 비교된다. 막대한 예산과 고급 인력을 갖고 있다는 대한민국 교육당국의 민낯이다. 국가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라도 나서야 할 판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주입식, 암기식, 객관식 시험으로 미래 교육을 맡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바칼로레아 교육과정 도입 필요"박하식 교장이 제주교육 심포지움에서 IB 교육과정의 도입 필요성을 설명하는 장면. ⓒ 제주교육청


다음은 논문 '국내 고교의 국제공인 교육과정(IBDP)의 도입 및 실행에 관한 연구'를 요약한 내용이다. 교육부 장관과 국가교육회의 의장, 기획재정부 장관, 각 시도 교육감들, 교사들, 학부모들도 읽어보면 좋겠다.

(충남 삼성고 박하식 교장은 민사고, 외대부고, 경기외고를 거치며 교육과정혁신의 역사를 남겨온 스타 교장이다. 특히 박 교장은 경기외고를 2010년말 IBDP 운영 학교로 지정 받아 2011학년도부터 2년간의 IBDP 교육과정을 정식으로 실시하였다. 경기외고는 2013년 2월 38명의 IBDP 첫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디플로마 취득률 92.11%로, 첫 졸업생을 낸 학교로서는 비교적 좋은 실적을 올렸다.)


IB 본부 회장단과 함께한 IB 한국대표단IB 교육과정의 한글 번역작업 등을 협의하기 위해 IB 창립 50주년 싱가포르 총회에 참가한 한국대표단이 IB 본부 회장단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제주교육청


['국내 고교의 국제공인 교육과정(IBDP)의 도입 및 실행에 관한 연구' 논문 요약]

교육과정 국제화에 어떤 한계와 가능성 있는지 분석

국제적으로 공인 검증된 국제 바칼로레아를 전세계에서 선호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경기외고 1개 고교만 이를 실시하고 있어 그 배경이 궁금하다. 이 연구는 국내 고교의 IBDP 도입과 실행 과정에 관한 연구를 근간으로 했다. 국내 교육과정의 국제화에는 어떤 한계와 가능성이 있는가를 밝혀 그 현황을 진단하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IB의 이념과 역사, 특징, 세계적 도입 추이를 분석하였다. 둘째, 국내 고교의 IB 도입과정 절차 등을 분석하여 정리하였다. 셋째, IB 교육과정과 국내 고교 교육과정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분석하여 국내 교육과정 체제 내에서 IB 도입을 위해 필요한 조정 작업이 무엇인지를 탐구하였다. 넷째, 경기외고에서 IB형 교육에 참여한 학생과 교사들의 반응을 분석하여 실제로 이것이 어떻게 작용하였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를 분석하였다.

경기외고 교원과 학생 중심으로 IBDP 도입 사례 분석

연구방법으로는 사례 연구와 조사 연구를 주로 활용하였다. 사례 연구로는 국내 처음으로 IBDP를 도입 실행한 경기외고 사례를 도입 실행성과 평가를 중심으로 살펴 보았다. 조사연구로는 경기외고의 IBDP 도입과 실행과정에서 수집된 실증적 자료를 분석하고 실제 교육에 참여한 관리자, 교사, 학생들에게 설문조사와 면담을 실시하였다.

국내 고교의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의 근거가 되는 2009개정교육과정은 그 성격과 체제로 볼 때 IBDP의 도입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특히 교과 교육과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구성된 교육과정은 IBDP를 도입 운영하기 위해 매우 적합한 형태다.

그러나 이를 국내에서 실행하기 위해서는 국내 고교 교육과정의 '언어'로 재구성해야 하는 과정을 밟아야 했다. '과목 명칭'의 신설 및 허가, 학생들의 시간표 안에서 운영되기 위한 '단위' 개념 적용 등의 변환을 필요로 하였다. IBDP의 특별활동과 봉사활동(CAS: Creativity, Action, Service)을 국내 교육과정의 창의적 체험활동 안에서 구현하기 위한 조정작업으로 개념 및 활동유형의 연계성을 찾아보아야 했다. 단위 학교의 교육과정은 승인 절차를 통하여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IB 교육과정을 '한국화'해야 하는 절차가 불가피하였다.

교육정책 연구팀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이 이끄는 서울시교육청 교육정책 연구팀. ⓒ 신향식


IB 교육과정 모형을 국내 교육과정 틀에 맞도록 조정해야

IB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인적, 물적 여건의 조성과 실행단계에서 거쳐야 하는 교육 외적인 행정 절차들은 국내 고교가 IB를 도입하고 실행하는 데 장애로 작용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수 언어가 한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이 교육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교사와 학생이 외국어 구사능력을 갖추어야 하는 기본적인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뿐만 아니라 이미 세계의 많은 국가에서 사용 중인 IB 교육과정 모형을 국내 교육과정틀에 맞도록 조정해야 한다. 2년간 진행되어야 할 과목을 4학기로 과목명을 달리하여 분리해야 한다. 기존 IBDP 과목을 새로운 과목으로 승인 신청을 해야 하는 등 번거로운 과정도 거쳐야 한다. 그래야 국내 고교에서 IB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다.

국가교육과정 틀 안에서 IB 도입 방법 연구 시

경기외고에서 IBDP 교육을 받은 학생 38명과 이들을 지도한 교사들을 대상으로 조사 연구를 하여 그 성과와 실상을 알아볼 수 있었다. 경기외고에서 진행된 IBDP 실천과정의 설문조사나 면접조사를 통하여 IBDP의 수업운영과 평가의 특징을 구체적인 수준에서 알 수 있었고 국내에서 운영하는 데 필요한 시사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IBDP 교육에 참여한 학생과 교사들은 IBDP의 교육목표와 교육방법 등에 대체로 만족감을 나타내고 있으나 실행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국내의 다른 학교도 순조롭게 운영할 수 있도록 국가교육과정 틀 안에서 IB 도입 절차를 어떻게 할 것인지 제도 차원에서 연구해야 한다. IB 본부에서는 각국 학교가 이 교육과정을 도입하는 데 겪는 어려움을 국가별로 파악하여 해당 국가 교육당국과 협조 체제를 구축하여 장애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국제학교가 아닌, 자국의 학교에서 IBDP를 시행 중인 각국의 운영 실태를 비교하는 연구, ▲국내의 다른 고교에 적용하는 방안, ▲진학계 고교가 아닌 학교에서 도입할 수 있는 가능성도 계속 연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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