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의 더러운 방화복에 담긴 무서운 진실
[이건의 미국소방 평론 10] 미국소방대원들의 방화복 관리프로그램에서 배워라
▲ 현장활동을 마친 소방대원들의 방화복이 검게 그을린 채 걸려있다. ⓒ 이건
신임 소방관 시절 선배들의 낡고 검게 그을린 방화복을 보면서 내심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그 방화복들은 오랜 시간을 현장에서 보내며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물로써 많은 소방관들이 이를 명예로운 훈장으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말해서 '오염된 방화복'에는 무서운 진실이 숨겨져 있다. 현장활동을 하는 동안 묻은 피, 타액, 각종 독성물질 그리고 유해인자들은 철저하게 세탁되고 관리되지 않는다면 소방관의 건강을 위협해 암 등 다양한 질병의 원인을 제공한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이런 유해한 물질들은 방화복 자체의 기능도 떨어뜨려 소방관들에게 충분한 보호기능을 제공할 수 없게 만든다. 결국 방화복 사용 매뉴얼에 따라 깨끗하게 세탁되고 잘 관리된 방화복만이 소방관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소방관들은 '미연방산업안전보건청(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의 규정과 '미국방화협회(National Fire Protection Association, 아래 NFPA)'에서 마련한 1851 기준에 맞는 방화복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해야만 한다. NFPA 1851 기준의 정식 명칭은 "Standard on Selection, Care, and Maintenance of Protective Ensembles for Structural Fire Fighting and Proximity Fire Fighting" 으로, 2014년도 발간된 기준이 현재 최신판이다.
한편 각 소방서마다 'Ryan White Act'라는 법령에 따라 방화복을 통한 교차 감염(Cross Contamination)을 예방하기 위해 '감염통제관(Infection Control Officer)'도 지정해서 운영해야 한다. 방화복 관리 전반에 관한 최종책임은 소방서장에게 있으나, 보통은 소방서별로 보건안전담당관 혹은 방화복 관리프로그램 매니저를 지정해서 운영한다. 이 업무를 위임받은 사람들은 NFPA 기준 1851에서 마련한 세부지침에 따라 별도의 교육과 훈련도 이수해야만 한다.
방화복 관리프로그램은 크게 3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어떤 제품을 선택할 것인지,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주요 포인트다. 방화복 구매와 관련해서는 소방서의 임무와 용도에 따라 NFPA 기준에 맞는 제품을 소방서별로 선택해서 구입한다. 일단 적합한 제품이 선택되고 각 소방대원에게 지급되면 그때부터 방화복의 임무가 시작된다. 이 시점에서부터 방화복의 사용과 관리 그리고 유지보수에 따라서 제품의 수명이 현저히 달라질 수 있으며 소방대원의 보건과 안전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NFPA 1851 기준을 보면 방화복은 보통 '일반 세탁(Routine Cleaning)'과 보다 섬세한 작업이 요구되는 '심화 세탁(Advanced Cleaning)'으로 분류된다. 일반 세탁은 보통 소방대원이 하고 심화 세탁은 자격을 갖춘 개인이나 전문업체에 맡겨 필요시 혹은 정기적인 스케줄에 맞춰 진행한다. 세탁을 할 때에는 방화복에 묻은 오염물질로부터의 감염을 막기 위해 보호안경, 방진마스크, 그리고 고무장갑 등을 착용해야 한다.
▲ 한 세탁 전문업체 관계자가 방화복 세탁에 앞서 감염여부를 검사하고 있다. ⓒ Lion Totalcare Cleaning
이런 철저한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소방관들이 유해물질로부터 100퍼센트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래서 '미국소방대원 암 지원 네트워크(Firefighter Cancer Support Network)'에서는 소방관의 보건과 안전을 위해 아래와 같이 몇 가지 권고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현장에서 묻은 다량의 오염물질은 현장에서 소방호스를 사용해 즉시 세척할 것, 출동 후에는 방화복을 다른 방화복으로 교체하거나 혹은 깨끗하게 세탁한 후 착용할 것, 화재진압 후에는 반드시 샤워할 것, 오염된 방화복은 거실이나 차 안에 놓지 말 것, 외형적으로 깨끗해 보이는 것과는 상관없이 방화복은 정기적으로 세탁할 것, 그리고 매년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을 것 등이다.
대한민국 소방관들 역시 크고 작은 화재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있다. 아주 오래 전 나무나 종이가 타는 전통적인 화재의 개념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고, 지금은 모든 화재를 화학사고로 불러도 될 만큼 우리 주변에는 화학약품으로 처리된 제품들이 여기저기 넘쳐난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전문가들인 소방관들의 건강과 안전수준은 곧바로 그 지역사회 안전의 척도가 된다.
비용절감도 무시할 수는 없으나 최저가 입찰로 간신히 기준을 통과한 방화복을 제공하고 이렇다 할 관리프로그램도 전무한 현 실정에서 대한민국 소방관들의 보건과 안전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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