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 누구도 내 딸의 삶을 대신해줄 수는 없다
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 2018년 3월 28일
▲ ⓒ 조상연
사랑하는 딸아! 네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너는 울었고 아버지는 웃었다. 이다음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도 네가 태어났을 때처럼 너는 울고 아버지는 웃었으면 좋겠다.
어렸을 때 책 한 권 주면 옹알이를 해가며 온종일 보채지도 않고 놀던 아이가 어느덧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아버지 손을 잡고 웨딩마치 행진을 했구나. 결혼하는 딸에게 그동안 함께 했던 아버지의 삶이 과연 보고 배울만한 것이었느냐 새삼 돌아보지만, 피로연에서 아버지가 남몰래 흘린 눈물은 딸을 곁에서 떠나보낸다는 서운함 이전에 네게는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후회 때문이었으리.
어찌 되었든 아버지와 함께한 그동안의 삶에서 배울 점이 있었다면 그대로 살면 될 것이요 그렇지 못하다면 나름대로 지혜롭게 살면 되지 싶다. 다만 아버지가 당부하고 싶은 말은 타인의 삶과 네 삶을 비교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불행은 남과 비교하는 데서 생기나니.
개망초를, 구절초를 아느냐? 세상에 시인이라 이름 붙여진 사람치고 개망초나 구절초를 시 속에 등장시키지 않은 이는 없으리. 이 두 꽃을 두고 어느 누가 기와집 정원에 가꾸는 모란보다 못하다고 망발을 하랴. 연꽃, 국화, 개망초, 구절초, 구분은 있을지언정 비교 불가하다. 세상에는 저마다 타고난 소질이 있고 쓰임새가 있는 법, 남과 비교할 거 없이 내가 행복하면 된다.
행복하다는데, 내가 행복하다는데 누가 뭐라 하랴!
아무튼, 하와이 신혼여행을 다녀와 네 짝꿍과 나란히 절하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행복했다. 밥 먹다 말고 네 신랑이 밥알이 튀어나오도록 웃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지? 사실은 밥 먹다 말고 네 신랑과 눈이 마주치기에 윙크를 했더니 별것도 아닌 일에 그렇게 자지러지더구나. 아무래도 네 신랑이 아버지한테 적응하려면 꽤 시간이 걸리겠다.
그리고 네가 사다 준 하와이안 셔츠가 아버지 마음에 조금, 아주 조금 미흡한데 다음에 하와이 다녀올 때는 빨갛고 파랗고 야자수 아래 춤추는 하와이안 그림이 그려진 화려한 셔츠로 사다 주었으면 좋겠다. 아버지가 보기보다 화려한 걸 좋아해.
하와이안 셔츠의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손종수 시인의 시 한 편 감상하자.
카톡, 눈 소식
카톡
카톡
카톡
시린 입김 푸르게 춤추는 아침
손전화가 바르르 진저리친다
멀리 가까이 방방곡곡 온 동네
눈 소식 카톡, 눈 사진 카톡,
살아 있어 반갑다는 맹렬한 인사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쏟아진다, 눈부신 삶의 눈사태.
작은딸이 선물해준 시집 '밥이 예수다' 60쪽 북인 074 현대시세계 시인선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