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출신 영화감독 3인, 4.3으로 뭉치다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광고 작업한 양윤호·한재림·오멸 3인3색 인터뷰
4.3 범국민위는 제주4.3 70주년을 맞아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릴레이 캠페인을 비롯해 여러 홍보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그 중 가장 먼저 확정된 프로젝트 중 하나가 바로 제주 출신 감독 3인이 만드는 TV 광고다. 양윤호 감독이 먼저 제안을 받아 후배 감독들을 꾸렸고, 흔쾌히 캠페인의 의도에 공감한 배우 김상중과 제주출신의 배우 고두심, 소설가 현기영이 합류하면서 라인업이 완성됐다. 지난 겨울을 거치며 3인 3색의 개성 있는 광고로 4.3 70주년을 알리기 위해 나선 3인의 감독을 만났다.
"오사카의 제주 한인들, 참 미안했다"
영화 <바람의 파이터>, <홀리데이>, 드라마 <아이리스>의 양윤호 감독
- 4.3 범국민위의 광고 연출 제안을 받고 처음 느낌이 어떠셨나요.
"혼자도 아니고 감독 셋을 모아 달라고 해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70주년의 의미라는 차원에서 생각을 더 해보니 이해는 가더라고요. 그래서 해 보자 싶었죠. 제주 출신으로 현역에서 활동하는 감독들이 열 명 정도인데, 아무래도 제가 맏형 격이거든요. 나이 터울도 좀 나고. 제주 엔터테이너 모임에서도 제가 활동하거든요. 이번 기회에 제주지역에서 오래 활동한 오멸과 제주 관련해서 활동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흔쾌하게 봉사하겠다고 나선 한재림 감독까지 함께 할 수 있어서 더 뜻깊었던 것 같아요."
- 광고의 배경으로 일본 오사카를 잡으셨습니다.
"<바람의 파이터>(2004) 촬영 때 오사카를 방문했었는데, 그때 촬영팀 전체가 제주 한인들에게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대접을 잘 받았습니다. 김치찌개를 한 솥을 끓여 주시고(웃음). <아이리스2> 때도 자원봉사한 일본인과 그 남편은 한국인이었는데, 참 열심히 해 준 기억도 나고요. 중국에서 작업했을 때도 그렇고, 이번 오사카 이쿠노쿠 제주 한인들도 마찬가지로 만나보면 짠하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이 커요. 그래서 더 제주4.3에 대해 이제는 국민들도 이해를 해야 하고 국가가 국민들에게 이해시킬 의무도 있는 것 같고요. 이번 광고도 그렇고, 70주년 사업들도 그렇고, 여러 차원에서 대외적으로 4.3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봐요. 일본 오사카 제주인들 상황도 마찬가지고요."
- 아이들이 환하게 웃는 얼굴이 꽤나 인상적이던데요.
"안 그래도, 촬영 전 조선학교 관련 자료는 다 찾아봤는데요. 당시가 아베 정권과 북한과의 정세가 안 좋을 때라 조총련 학교는 만나지도 못하고 민단 쪽 학교와 접촉을 했어요. 학교 정문에 제주 돌하르방을 세워놨더라고요. 역시나 반성이 되더라고요. 그 학생들이 탈춤을 배우고,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하고, 또 고등학생들이 초등학생 후배들에게 한국을 가르쳐요. 코 끝이 찡하면서도 우린 뭘 하고 있었나 하는 반성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한국의, 제주의 뿌리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들 때문에요.
이번 다시 취재를 가니 예전에 계셨던 어르신들이 많이 돌아가시고 안 계셨어요. 또 예전엔 제주말도 다 통했는데, 이제는 오사카에서 그 과거 영향력들이 확 줄었더라고요. 과거엔 오사카 쪽에서 도리어 제주에 도움을 많이 줬다고 해요. 1960년대인가? 감귤 묘목도 처음에 일본에서 큰 배로 통째로 싣고 왔다고 하더라고요. 교포들이 그렇게 도움을 많이 줬는데, 우리가 도와줘도 모자랄 판에 이제껏 뭘 했나 싶고. 그 분들이 참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4.3 때문에 일본인으로 넘어간 이후 일본인들에게 '빨갱이'라 차별받을까 봐 신분을 숨기고 밑바닥 생활을 전전해야 했던 거죠. 내가 조선사람이오, 라고 밝히지도 못하고. 그래서 북조선 쪽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요. 슬픈 일이죠. 그래서 더 4.3 진상규명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하고."
- 제주4.3은 감독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요.
"대학 생활하면서 5.18을 알았고, 제주 사람이라 4.3도 추가된 느낌이었어요. 격분도 많이 했고. 젊은 시절에 많이 싸웠다면, 나이가 드니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게 커지는 느낌이고요. 문화예술을 하는 사람들이라 더 그럴지도 모르고, 일종의 부채의식도 커요. 갈수록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근원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되고요. 불행한 역사는 반복하면 안 되지만, 해방을 우리 힘으로 못했다는 한계까지 의식하게 되고. 종교전쟁은 있었지만, 이러한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섬 전체를 죽인 예는 없었잖아요. 4.3과 같은 이데올로기 학살은 단언컨대 없었어요. 미국의 매카시즘도 같은 맥락이고. 미군의 책임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도 이러한 큰 틀에서 미 군정의 존재감이 크기 때문일 겁니다."
- 제주의 기억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영화감독이란 직업을 선택한 이유도.
"어릴 때 경찰대에 입학할 뻔했는데, 재수 끝에 예술 장르 중에서 가장 하고 싶은 영화연출을 선택했어요. 개인적인 연도 작용했고. 어릴 땐 도심까지 나가서 영화관을 찾기도 했었거든요. 고등학교 때는 학생회장을 하기도 했고. 사실 제주가 예술가가 많은 이유도 각자 상처나 아픔을 못 풀어내서가 아닐까라고 생각도 해요. 아버지 세대가 겪은 4.3의 트라우마가 자식 세대까지 대물림 되는 일이 다반사고. 정신 감정을 다 받아보면 어느정도 다 미치지 않았을까…. 살아남은자의 슬픔을 가장 크게 겪었을 거고. 내 경우도 내 아이들에게까지 4분의 1 정도는 물림이 되는 것 같고요. 그래서인지, 4.3은 제게 홀어머니 같은 느낌이에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기도 하셨지만, 어떻게 보면 보통은 아닌, 미워할 수도 없지만 더 애정이 가고. 그러면서 설명하기는 어려운."
"제주 4.3의 산증인, 현기영 선생님 외에 누구도 떠오르지 않았다"
영화<관상>, <더킹>의 감독 한재림
- 제주 출신으로서 광고 연출을 제안받고 어떤 느낌이셨는지요.
"제주 선배이자, 선배 감독이신 양윤호 감독님께 제안해주셔서 참여하게 됐습니다. 4.3은 제주도만의 일이 아니고, 모두가 알아야 하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사건인데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잖아요. 4.3을 더 많이 알린다는 좋은 취지에 공감하여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흡사 단편영화를 연상케 하는 광고 영상입니다. 특히 <순이삼촌> 속 문장들을 광고 나레이션으로 가져오셨는데요.
"현기영 선생님의 <순이삼촌> 이 제주 4.3을 최초로 세상에 알린 대표작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제주4.3에 대해 조사하면서 작품을 읽고 이 소설이 제주4.3의 아픔을 절절히 표현하고 있어 큰 감동을 받았고, 이에 광고 영상에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한겨울에 진행된 촬영 과정은 어떠했는지, 어려움은 없으셨는지요. 또 출연자로 <순이삼촌>의 현기영 소설가를 촬영 전 섭외하셨습니다. 작업 과정도 궁금합니다.
"촬영 과정이 쉬운 것은 없겠지만, 이번 촬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날씨였던 것 같습니다. 마침 제주도에 눈보라가 불어서 연출적으로, 보시는 분들에게 깊은 감정을 전달해 드릴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물론 단 하루의 촬영이었지만 스텝들과 이번에 좋은 의미로 참여해주셨던 제주 출신 배우분들이 정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추운 날씨에 눈보라를 계속 기다려야 했고, 또 눈보라가 부는 날씨에 맞춰서 홑겹의 옷만 입고 연기를 해주셨어야 해서 정말 죄송스러우면서도 감사했습니다.
현기영 선생님은 제가 <순이삼촌>을 영상에 사용하기로 결정하면서 함께 해주신다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부탁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비록 성우처럼 또렷한 발음이나 발성은 아니지만, 그의 실제 목소리를 나레이션에 사용하여 더 사실감을 높이려 했고요. 직접 출연까지 부탁드린 이유는, 현기영 선생님이야말로 제주 4.3의 산증인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런 영상에 출연할 명사로, 현기영 선생님 이외에 누구도 떠오르지 않아 어렵게 모시게 되었습니다."
- <관상>, <더킹> 등 평소 작품 세계에 '권력'이란 주제를 녹여 놓기로 유명하신데, 제주4.3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작품을 만들면서 제주4.3을 크게 의식해 본 적은 없지만, 아마 무의식적으로 제주도 사람의 성향들이 영화에 녹아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왠지 무심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굉장히 뜨거운 그런 성향 같은 거 말이죠. 그런 성향이 4.3에 많이 녹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창시절이랄지, 감독님의 과거 제주 생활이나 제주에서의 기억은 어땠는지요.
"성인이 되며 제주도를 떠나와서인지, 서울에서 쭉 생활해서인지 제주도에 일들을 많이 잊고 살았습니다. 조금씩 나이가 드니 잊었던 제주 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그립고. 제주는 저에게 늘 바다입니다. 어렸을 적 가족들과 해수욕장을 갔던 기억, 학창시절, 늘 점심시간에 바닷가에 갔던 기억이 나네요."
-이번 영상 광고는 제주 출신 감독 3인이 제작해 화제입니다.
"양윤호 감독님, 오멸 감독님 모두 바쁘신분들인데 제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작은 예산에도 즐겁게 참여한 것 같습니다. 만들어진 영상이 조금이나마 제주4.3을 알리는데 일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독님에게 제주4.3과 70주년은 어떤 의미인지요.
"제주4.3은 정부에 의해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대량으로 학살당한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참혹한 사건이었잖아요. 그게 벌써 70주년이 되었고. 그럼에도 많은 대중들이 알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있고요. 당시 정부의 무식한 대응이 낳은 이 참사를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알게 되고 또 그래서 앞으로 80주년, 90주년은 좀더 많은 이들이 함께 희생자분들을 위로하고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주4·3은 '사람'의 이야기다"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 <눈꺼풀> 감독 오멸
"<지슬>은 이념을 다룬 게 아니다. 4·3은 사람의 이야기로 보는 게 중요하다."
"어떤 데서는 아직도 4·3을 두고 폭도다 빨갱이다 폄훼하는 표현을 한다. 중요한 건 밭 일구고 바다에서 일하던 순박한 사람들이 죄 없이 죽임을 당했다는 것."
"1만 관객이 영화적 사건이라면 3만명 이상은 사회적인 사건이다. 이는 또다시 정치적 사건을 낳을 수 있다. 개인이, 민중이 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일이다. 도민들은 아직도 4·3을 쉽게 얘기하지 못한다.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발언이라고 믿는다." (<지슬> 관련 기자간담회 중에서)
"<지슬>에서 등장하는 제주4.3 사건이 미군정 시기와 연결돼있기 때문에 미국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미국 본토에서 미국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역사를 환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지 않을까.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 (서울독립영화제 공식 인터뷰 중에서)
제 20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감독 조합상, CGV아트하우스상 수상작이자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해 14만 관객을 동원한 작품 <지슬>의 오멸 감독은 신작 <눈꺼풀>이 4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눈꺼풀>은 망망대해 위 외딴 섬 '미륵도'에서 직접 쌀을 찧어 떡을 만들며 저승으로 긴 여정을 떠나는 사람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노인의 이야기를 담았으며 세월호 희생자들을 향한 진혼곡으로 알려졌다.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캠페인 슬로건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이도 바로 오멸 감독이다.
▲ 양윤호감독 ⓒ 김원
"오사카의 제주 한인들, 참 미안했다"
영화 <바람의 파이터>, <홀리데이>, 드라마 <아이리스>의 양윤호 감독
- 4.3 범국민위의 광고 연출 제안을 받고 처음 느낌이 어떠셨나요.
"혼자도 아니고 감독 셋을 모아 달라고 해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70주년의 의미라는 차원에서 생각을 더 해보니 이해는 가더라고요. 그래서 해 보자 싶었죠. 제주 출신으로 현역에서 활동하는 감독들이 열 명 정도인데, 아무래도 제가 맏형 격이거든요. 나이 터울도 좀 나고. 제주 엔터테이너 모임에서도 제가 활동하거든요. 이번 기회에 제주지역에서 오래 활동한 오멸과 제주 관련해서 활동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흔쾌하게 봉사하겠다고 나선 한재림 감독까지 함께 할 수 있어서 더 뜻깊었던 것 같아요."
- 광고의 배경으로 일본 오사카를 잡으셨습니다.
"<바람의 파이터>(2004) 촬영 때 오사카를 방문했었는데, 그때 촬영팀 전체가 제주 한인들에게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대접을 잘 받았습니다. 김치찌개를 한 솥을 끓여 주시고(웃음). <아이리스2> 때도 자원봉사한 일본인과 그 남편은 한국인이었는데, 참 열심히 해 준 기억도 나고요. 중국에서 작업했을 때도 그렇고, 이번 오사카 이쿠노쿠 제주 한인들도 마찬가지로 만나보면 짠하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이 커요. 그래서 더 제주4.3에 대해 이제는 국민들도 이해를 해야 하고 국가가 국민들에게 이해시킬 의무도 있는 것 같고요. 이번 광고도 그렇고, 70주년 사업들도 그렇고, 여러 차원에서 대외적으로 4.3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봐요. 일본 오사카 제주인들 상황도 마찬가지고요."
- 아이들이 환하게 웃는 얼굴이 꽤나 인상적이던데요.
"안 그래도, 촬영 전 조선학교 관련 자료는 다 찾아봤는데요. 당시가 아베 정권과 북한과의 정세가 안 좋을 때라 조총련 학교는 만나지도 못하고 민단 쪽 학교와 접촉을 했어요. 학교 정문에 제주 돌하르방을 세워놨더라고요. 역시나 반성이 되더라고요. 그 학생들이 탈춤을 배우고,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하고, 또 고등학생들이 초등학생 후배들에게 한국을 가르쳐요. 코 끝이 찡하면서도 우린 뭘 하고 있었나 하는 반성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한국의, 제주의 뿌리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들 때문에요.
이번 다시 취재를 가니 예전에 계셨던 어르신들이 많이 돌아가시고 안 계셨어요. 또 예전엔 제주말도 다 통했는데, 이제는 오사카에서 그 과거 영향력들이 확 줄었더라고요. 과거엔 오사카 쪽에서 도리어 제주에 도움을 많이 줬다고 해요. 1960년대인가? 감귤 묘목도 처음에 일본에서 큰 배로 통째로 싣고 왔다고 하더라고요. 교포들이 그렇게 도움을 많이 줬는데, 우리가 도와줘도 모자랄 판에 이제껏 뭘 했나 싶고. 그 분들이 참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4.3 때문에 일본인으로 넘어간 이후 일본인들에게 '빨갱이'라 차별받을까 봐 신분을 숨기고 밑바닥 생활을 전전해야 했던 거죠. 내가 조선사람이오, 라고 밝히지도 못하고. 그래서 북조선 쪽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요. 슬픈 일이죠. 그래서 더 4.3 진상규명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하고."
▲ 고두심배우 ⓒ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 제주4.3은 감독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요.
"대학 생활하면서 5.18을 알았고, 제주 사람이라 4.3도 추가된 느낌이었어요. 격분도 많이 했고. 젊은 시절에 많이 싸웠다면, 나이가 드니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게 커지는 느낌이고요. 문화예술을 하는 사람들이라 더 그럴지도 모르고, 일종의 부채의식도 커요. 갈수록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근원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되고요. 불행한 역사는 반복하면 안 되지만, 해방을 우리 힘으로 못했다는 한계까지 의식하게 되고. 종교전쟁은 있었지만, 이러한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섬 전체를 죽인 예는 없었잖아요. 4.3과 같은 이데올로기 학살은 단언컨대 없었어요. 미국의 매카시즘도 같은 맥락이고. 미군의 책임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도 이러한 큰 틀에서 미 군정의 존재감이 크기 때문일 겁니다."
- 제주의 기억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영화감독이란 직업을 선택한 이유도.
"어릴 때 경찰대에 입학할 뻔했는데, 재수 끝에 예술 장르 중에서 가장 하고 싶은 영화연출을 선택했어요. 개인적인 연도 작용했고. 어릴 땐 도심까지 나가서 영화관을 찾기도 했었거든요. 고등학교 때는 학생회장을 하기도 했고. 사실 제주가 예술가가 많은 이유도 각자 상처나 아픔을 못 풀어내서가 아닐까라고 생각도 해요. 아버지 세대가 겪은 4.3의 트라우마가 자식 세대까지 대물림 되는 일이 다반사고. 정신 감정을 다 받아보면 어느정도 다 미치지 않았을까…. 살아남은자의 슬픔을 가장 크게 겪었을 거고. 내 경우도 내 아이들에게까지 4분의 1 정도는 물림이 되는 것 같고요. 그래서인지, 4.3은 제게 홀어머니 같은 느낌이에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기도 하셨지만, 어떻게 보면 보통은 아닌, 미워할 수도 없지만 더 애정이 가고. 그러면서 설명하기는 어려운."
▲ 한재림감독 ⓒ 우주필름
"제주 4.3의 산증인, 현기영 선생님 외에 누구도 떠오르지 않았다"
영화<관상>, <더킹>의 감독 한재림
- 제주 출신으로서 광고 연출을 제안받고 어떤 느낌이셨는지요.
"제주 선배이자, 선배 감독이신 양윤호 감독님께 제안해주셔서 참여하게 됐습니다. 4.3은 제주도만의 일이 아니고, 모두가 알아야 하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사건인데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잖아요. 4.3을 더 많이 알린다는 좋은 취지에 공감하여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흡사 단편영화를 연상케 하는 광고 영상입니다. 특히 <순이삼촌> 속 문장들을 광고 나레이션으로 가져오셨는데요.
"현기영 선생님의 <순이삼촌> 이 제주 4.3을 최초로 세상에 알린 대표작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제주4.3에 대해 조사하면서 작품을 읽고 이 소설이 제주4.3의 아픔을 절절히 표현하고 있어 큰 감동을 받았고, 이에 광고 영상에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 현기영소설가 ⓒ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한겨울에 진행된 촬영 과정은 어떠했는지, 어려움은 없으셨는지요. 또 출연자로 <순이삼촌>의 현기영 소설가를 촬영 전 섭외하셨습니다. 작업 과정도 궁금합니다.
"촬영 과정이 쉬운 것은 없겠지만, 이번 촬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날씨였던 것 같습니다. 마침 제주도에 눈보라가 불어서 연출적으로, 보시는 분들에게 깊은 감정을 전달해 드릴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물론 단 하루의 촬영이었지만 스텝들과 이번에 좋은 의미로 참여해주셨던 제주 출신 배우분들이 정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추운 날씨에 눈보라를 계속 기다려야 했고, 또 눈보라가 부는 날씨에 맞춰서 홑겹의 옷만 입고 연기를 해주셨어야 해서 정말 죄송스러우면서도 감사했습니다.
현기영 선생님은 제가 <순이삼촌>을 영상에 사용하기로 결정하면서 함께 해주신다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부탁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비록 성우처럼 또렷한 발음이나 발성은 아니지만, 그의 실제 목소리를 나레이션에 사용하여 더 사실감을 높이려 했고요. 직접 출연까지 부탁드린 이유는, 현기영 선생님이야말로 제주 4.3의 산증인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런 영상에 출연할 명사로, 현기영 선생님 이외에 누구도 떠오르지 않아 어렵게 모시게 되었습니다."
- <관상>, <더킹> 등 평소 작품 세계에 '권력'이란 주제를 녹여 놓기로 유명하신데, 제주4.3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작품을 만들면서 제주4.3을 크게 의식해 본 적은 없지만, 아마 무의식적으로 제주도 사람의 성향들이 영화에 녹아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왠지 무심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굉장히 뜨거운 그런 성향 같은 거 말이죠. 그런 성향이 4.3에 많이 녹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창시절이랄지, 감독님의 과거 제주 생활이나 제주에서의 기억은 어땠는지요.
"성인이 되며 제주도를 떠나와서인지, 서울에서 쭉 생활해서인지 제주도에 일들을 많이 잊고 살았습니다. 조금씩 나이가 드니 잊었던 제주 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그립고. 제주는 저에게 늘 바다입니다. 어렸을 적 가족들과 해수욕장을 갔던 기억, 학창시절, 늘 점심시간에 바닷가에 갔던 기억이 나네요."
-이번 영상 광고는 제주 출신 감독 3인이 제작해 화제입니다.
"양윤호 감독님, 오멸 감독님 모두 바쁘신분들인데 제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작은 예산에도 즐겁게 참여한 것 같습니다. 만들어진 영상이 조금이나마 제주4.3을 알리는데 일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독님에게 제주4.3과 70주년은 어떤 의미인지요.
"제주4.3은 정부에 의해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대량으로 학살당한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참혹한 사건이었잖아요. 그게 벌써 70주년이 되었고. 그럼에도 많은 대중들이 알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있고요. 당시 정부의 무식한 대응이 낳은 이 참사를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알게 되고 또 그래서 앞으로 80주년, 90주년은 좀더 많은 이들이 함께 희생자분들을 위로하고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오멸감독 ⓒ 성하훈
"제주4·3은 '사람'의 이야기다"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 <눈꺼풀> 감독 오멸
"<지슬>은 이념을 다룬 게 아니다. 4·3은 사람의 이야기로 보는 게 중요하다."
"어떤 데서는 아직도 4·3을 두고 폭도다 빨갱이다 폄훼하는 표현을 한다. 중요한 건 밭 일구고 바다에서 일하던 순박한 사람들이 죄 없이 죽임을 당했다는 것."
"1만 관객이 영화적 사건이라면 3만명 이상은 사회적인 사건이다. 이는 또다시 정치적 사건을 낳을 수 있다. 개인이, 민중이 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일이다. 도민들은 아직도 4·3을 쉽게 얘기하지 못한다.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발언이라고 믿는다." (<지슬> 관련 기자간담회 중에서)
"<지슬>에서 등장하는 제주4.3 사건이 미군정 시기와 연결돼있기 때문에 미국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미국 본토에서 미국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역사를 환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지 않을까.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 (서울독립영화제 공식 인터뷰 중에서)
▲ 김상중배우 ⓒ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제 20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감독 조합상, CGV아트하우스상 수상작이자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해 14만 관객을 동원한 작품 <지슬>의 오멸 감독은 신작 <눈꺼풀>이 4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눈꺼풀>은 망망대해 위 외딴 섬 '미륵도'에서 직접 쌀을 찧어 떡을 만들며 저승으로 긴 여정을 떠나는 사람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노인의 이야기를 담았으며 세월호 희생자들을 향한 진혼곡으로 알려졌다.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캠페인 슬로건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이도 바로 오멸 감독이다.
덧붙이는 글
4370신문 편집팀이 인터뷰하고 기고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