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침실에서 '골든타임' 놓친 박근혜, 중대본 방문조차 최순실이 제안했다

검찰 수사로 드러난 '박근혜 세월호 7시간'... "인후염 치료로 침실에 있었을 거라 추정"

등록|2018.03.28 19:40 수정|2018.03.28 20:06

▲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4월 1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사고 상황에 대해 보고 받고 있다. ⓒ 청와대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검찰 수사 결과, 당시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적절하게 이뤄진 것으로 꾸미기 위해 실제 보고가 이뤄진 시각과 횟수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전화를 받지 않고 혼자 침실에 있을 때, 세월호 구조의 '골든타임'은 속절없이 지나갔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이 사고 당일 유일하게 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조차도 '비선 실세' 최순실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28일 검찰은 세월호 참사 발생 당시 청와대의 '대통령 보고 조작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수사를 통해 그동안 논란이 됐던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박 전 대통령의 행적도 드러났다. 참사 이후 계속 논란이 됐던 '박근혜 세월호 7시간'이 4년 만에 확인된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침실에 머물며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다.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보고와 지시가 이뤄졌을 리 만무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 19분. 청와대 국가안보실 산하 위기관리센터는 언론사 TV속보를 통해 세월호 사고 발생 사실을 인지했다. 센터는 오전 9시 24분께 청와대 문자메시지 발송시스템으로 내부에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실무자들이 해경을 통해 선박명, 승선인원, 출항시간, 구조인원 등의 상황을 파악한 뒤, 오전 9시 57분께 상황보고서 1보 초안을 완성했다.

상황보고서는 VIP, 즉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다. 김장수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1보 초안을 전달받았고, 오전 10시쯤 휴대폰으로 박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연락을 두절한 채 관저에서 머물고 있었다. 결국 김 전 실장은 보고를 위해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오전 10시 12분. 김 전 실장은 '문고리 3인방' 중 하나인 안봉근 전 제2부속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이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세월호 관련 상황보고서 1보가 올라갈 예정이니 대통령에게 보고될 수 있게 조치해 달라"고 말한 뒤, 신인호 전 위기관리센터장에게도 전달을 지시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에게 소식을 전할 방법은 '인편'뿐이었다. 모든 보고 시스템이 무너지고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 동원된 것이다.

신 전 센터장의 지시를 받은 상황병은 관저까지 달려갔다. 검찰은 상황병이 상황실을 출발해관저에 도착하기까지 7분이 소요됐다고 봤다. 실제 검찰 수사관이 수사과정에서 청와대를 방문해 직접 달려 측정한 시간이다. 상황병은 오전 10시 19분쯤 박 전 대통령의 살림을 돕는 김아무개씨(71세)에게 보고서 1보를 전달했다. 김씨는 평소처럼 박 전 대통령의 침실 앞 탁자에 보고서를 올려놓았다. 그때까지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것이다.

측근들 보고에 박근혜 "그래요?"

비슷한 시각인 오전 10시 20분. 김장수 전 실장의 전화를 받은 안 전 비서관과 이영선 행정관은 관저 내 침실 앞에서 박 전 대통령을 수차례 불렀다. 박 전 대통령은 그제야 침실 밖으로 나왔고, 이들은 "국가안보실장이 급한 통화를 원한다"고 보고했다. 박 전 대통령은 "그래요?"라며 다시 침실로 들어가 오전 10시 22분쯤 김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청와대가 사고 소식을 접수 한 지 1시간 3분 만에 대통령에게 보고가 이뤄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사실을 알았을 땐 이미 '골든타임'이 지난 상태였다. 세월호는 이날 오전 10시 17분 구조가 불가능한 상태로 침몰하고 있었다. 청와대도 시간이 흐른 뒤에 그 사실을 알았다. 그때가 선내에서 마지막으로 카카오톡 메시시지가 발신된 시각이었다. 당초 청와대가 박 전 대통령의 첫 지시 시각을 당일 오전 10시 15분으로 한 것은 박 전 대통령이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조작이었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그 이후로도 박 전 대통령은 제대로 상황 보고를 받지 않았다. 대통령비서실은 총 11회에 걸쳐 상황보고를 작성해 정호성 전 제1부속비서관에게 이메일을 보냈지만, 박 전 대통령이 계속 관저에서 나오지 않아 오후와 저녁 시간에만 각 1회씩 일괄 출력해 전달하는 데 그쳤다.

▲ 국정농단 혐의로 구속된 최순실이 지난해 2월 9일 서울 강남구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수사를 하고 있는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도착하고 있다. 최씨는 특검 소환에 자진 출석해 삼성 뇌물관련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 이희훈


오후 2시 15분께 'A급 보안손님' 최순실씨가 이영선 행정관이 운전하는 차량을 타고 청와대 관저로 들어왔다. 'A급 보안손님'은 실제 경호실에서 사용하는 용어라고 검찰은 밝혔다. 이들은 관저 안에 들어가기까지 어떠한 보안검색도 받지 않는다. 최순실씨, '비선의료진' 김영재 원장과 부인 박채윤씨, 이렇게 세 사람만 'A급 보안손님'의 특권을 누렸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 문고리 3인방은 머리를 맞댔다. 이 자리에서 중대본 방문을 제안한 것은 '비선실세' 최씨였다고 검찰은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최씨의 의견을 따랐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도 주요 결정을 최씨가 이끈 것이다.

그 뒤 윤전추 행정관은 박 전 대통령의 화장과 머리 손질을 담당하는 정아무개 자매에게 '상황이 급하니 빨리 청와대로 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 순간에도 박 전 대통령의 머리 손질과 화장이 급했던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준비를 마친 뒤 오후 4시 33분 관저를 나섰다.

오후 5시 15분. 박 전 대통령은 김기춘 비서실장과 중대본에 도착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박 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엉뚱한 말을 하게 된다. 그는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드냐"며 세월호 참사 현장 상황과 매우 동떨어진 발언을 했다. 오후 6시쯤, 관저로 돌아온 박 전 대통령은 그 뒤로도 본관으로 가지 않고 계속 관저에 머물렀다.

검찰 "미용시술 아냐... 전날 인후염 진료받아"

그렇다면 박 전 대통령은 왜 당일 오전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으며 세월호 참사 뒤에도 계속 관저에 머무른 걸까. 지금까지 박 전 대통령의 7시간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일각에선 불법 미용시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참사 다음 날인 17일 진도 체육관에 방문할 당시와 21일 수석비서관회의 참석 할 당시 사진에 박 전 대통령의 턱밑에 주삿바늘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비선의료 의혹을 부인했다. 검찰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전날 인후염 진료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시술이나 이상한 치료는 없었다"고 밝혔다. 또, "가까운 거리에서 박 전 대통령을 모셨던 비서관이 유럽 순방을 다녀온 뒤로 컨디션이 안 좋았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의료용 가글을 받는 등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건 맞다. 평소에도 관저에서 생활을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수사결과를 바탕으로 김기춘 전 비서실장,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 등을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불구속 기소할 방침이며, 위증 혐의를 받는 윤전추 행정관 또한 불구속으로 재판에 넘길 예정이다.

이날 최순실씨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는 "5인 회의니, 중대본 방문 결정 등에 관여한 것 등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최씨는 박 전 대통령의 사적 부분에 조력한 사람으로서 그에 관한 일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법정에 출석한 박근혜-최순실뇌물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첫 정식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오른쪽 두번째 자리에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앉아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