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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시가행진' 하는 유엔군 포로들, 진심이었을까

[박도 기자의 사진 근현대사 44] 포로 (2) 유엔군 측

등록|2018.06.11 11:52 수정|2018.06.11 11:52
"전쟁에는 2등이 없다"

한국전쟁 중 유엔군 측이 추산한 행방불명자는 10만 명에 가까웠다. 하지만 정전회담 중 공산군 측이 제시한 유엔군 포로 명부에는 1만1555명뿐이었다. 이 점은 한때 정전회담을 지연시키는 요인이기도 했다. 유엔군 포로 가운데 그 일부 사진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장총을 멘 인민군 호위에 유엔군 포로들은 반전 플래카드를 들고 시가행진을 하고 있었다. 그게 진심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전쟁 중 포로생활은 동서고금을 통해 비참하고 굴욕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쟁에는 은메달(2등)이 없다"라는 말이 생겨났나 보다. 나는 학군단 후보생 시절과 광주 보병학교 기초보수반 교육 시절 그 말을 귀에 익도록 들으며 아주 고된 군사훈련을 받았다.

전쟁이 없는 평화는 인류의 이상이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나 보다. 이번 [박도 기자의 사진 근현대사] 44회에서는 한국전쟁 중 유엔군 측 포로들의 생생한 모습 사진들로 배치해봤다. - 기자 말

▲ 1950. 8. 서울. 유엔군 포로들이 반전 플래카드를 들고 시가행진을 하고 있다. ⓒ NARA




▲ 날짜 장소 미상. 유엔군 포로들이 반전 시가행진을 하고 있다. ⓒ NARA


▲ 1951. 북한군 측에 수용된 유엔군 포로들 ⓒ NARA


▲ 북한군 측에 수용된 유엔군 포로들 ⓒ NARA


▲ 1950, 유엔군포로들이 정치 학습을 강제로 받고 있다. ⓒ NARA


▲ 1950. 유엔군 포로들이 한강 부교를 건너 북으로 연행되고 있다. ⓒ NARA


▲ 1950. 서울, 한강변에서 북한군에게 억류된 유엔군 포로들이 수용소로 끌려가고 있다. ⓒ NARA


▲ 1950. 서울, 북한군에게 억류된 유엔군 포로들. ⓒ NARA


▲ 1952. 1. 7. 북한군에 억류된 유엔군 포로들. ⓒ NARA


▲ 1950. 서울, 유엔군 포로들이 반전 플래카드를 들고 시가지를 행진하고 있다. ⓒ NARA


덧붙이는 글 여기에 수록된 사진 이미지들은 눈빛출판사에서 발간한 박도 엮음 <한국전쟁 ‧ Ⅱ>에 수록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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