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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만든 내가 어쩌다 한옥을 짓게 됐을까

[작은 한옥 수선기 ④] 나를 이순간으로 이끈 것들

등록|2018.04.06 11:05 수정|2019.01.28 21:20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소박하게나마 하고 싶은 일을 꾸려가며 사는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80년이 넘은 한옥과의 첫만남부터 고치고, 수선하는 과정을 담아갈 이 연재는 앞으로 공간의 완성, 그 이후 공간에서 만들어갈 일들을 담아낼 예정입니다. - 기자말

▲ 꿈처럼 작은 한옥 한 채가 내 앞에 서 있다. 한옥이 품고 있는 건 마당만이 아니다. 지붕선을 타고 보이는 저 하늘도 품고 있다. ⓒ 황우섭


한옥에서 살아야겠다고 처음부터 맘 먹은 건 아니었다. 단독주택에 살아보고 싶다고 마음을 먹은 뒤 서울 시내 곳곳 오며가며 들른 부동산을 통해 보러 다닌 집들 중에는 오히려 일반 주택이 많았다.

아니, 정확히 말해 한옥은 애초에 선택지에 들어 있지 않았다. 뭔가 특별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은 사람만 들어가 살 수 있는 곳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한옥은 춥고 불편하며 방범을 비롯한 여러 문제로 살기에 편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옥에 눈을 돌린 건 서울 경복궁 옆 서촌에 작은 한옥 한 채가 지어지는 과정을 책으로 만든 뒤부터였다. 이 책을 만들기 시작한 건 집 짓는 과정의 이야기가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진 원고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보통 집을 짓는 과정을 담은 책의 저자는 그 집을 설계한 건축가인 경우가 많았다. 아니면 집주인이거나.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이 집을 직접 지은 목수였다. 나 역시 책을 '만드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어떤 결과물을 볼 때 그 뒤에 가려진, 그것을 진짜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의 날 것의 원고를 보았을 때 내 손으로 꼭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서촌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작은 한옥 한 채의 탄생기와 인연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한옥은 한옥이고, 책은 책일 뿐이었다. 책을 만들면서도 여전히 한옥은 내가 가닿지 못할 것이기에 그저 부러운 대상이었다. 내가 만드는 책 속의 세상사일 뿐 내 일은 아니었다.

책을 만들면서 밥 먹고 하는 일이 오로지 한옥 짓는 것밖에 없는 저자와 의기를 투합했다. 우리는 제법 말이 잘 통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좋은 집을 짓기 위해 늘 탐구하고, 집 짓는 일이라면 늘 호기심 천국에 들어선 아이처럼 눈을 빛내며 신나서 일하는 저자와 만날 때마다 현재 짓고 있는 집, 그러니까 한옥 짓는 이야기를 마르고 닳도록 들었다.

그를 만나러 자연스럽게 한옥 공사현장도 숱하게 들렀다. 집을 짓는 분을 만나게 되니 그 집의 주인분들과도 뵙게 되고, 한옥에 살게 되기까지의 매우 현실적인 문제, 한옥에 사는 장점, 단점 등을 매우 '리얼'하게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함께 만드는 책의 주인공인 서촌 작은 한옥의 집주인과도 각별해졌고, 틈만 나면 서촌의 골목을 다니며 도시형 한옥의 어제와 오늘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다른 세상의 일이기만 했던 한옥이 점점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서울시 한옥지원 프로그램을 알게 된 것도 한몫을 했다(http://hanok.seoul.go.kr/front/kor/life/lifeGuide.do?tab=3).

몇 해 전부터 서울은 물론 각 지자체마다 한옥을 고쳐 살거나 새로 짓는 이들에게 적지 않은 금액을 지원하고, 낮은 이자로 융자를 해주는 프로그램이 많아졌다. 그 덕분에 예전에 비해 한옥을 지으려는 이들이 늘어났고, 수요가 많아지자 자연스럽게 비용은 물론 기술 등의 사정도 훨씬 좋아졌다.

이런 여러 상황 덕분에 나 같은 이들 역시 한옥에 살아볼 엄두를 내볼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물론 여전히 일반주택에 비해 비싸긴 하지만 꿈처럼 다른 세상의 일이기만 했던 때보다는 훨씬 좋은 상황이었다.

▲ 저 문은 한쪽이 기울어져 제대로 열리지 않는다. 그러나 저 문살의 고운 선에는 만든 사람의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누군가 정성껏 지은 이 집에서 나도 정성을 다해 살고 싶다. ⓒ 황우섭


많은 사람이 단독주택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랬다. 아파트를 떠나 단독주택에 산다면 어떤 집이 좋을까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그려보았는지 모른다. 그럴 때 내 마음속에 떠오른 그림은, 말하자면 외양에 관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어떤 모양, 어떤 동네, 어떤 크기의 집이면 좋겠다는 뭐, 그런 것.

마음속에 집 한 채를 꿈꾸며 내가 떠올린 것은 도산서당이었다. 퇴계 이황 선생은 젊은 시절부터 마음에 드는 집을 얻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를 하셨다. 집을 짓기 위해 거치는 과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선생은 그때마다 실제로 설계도를 그리고, 잘 지어졌다는 집들을 발품을 팔아 여기저기 다녀보시기도 했다.

몇 차례의 시도 끝에 마련한 도산서당은 선생의 마음에 꼭 드는 집이었던 모양이다. 평생에 마음에 드는 집 한 채를 갖기 위해 선생이 쏟은 정성도 남달랐지만, 집이 지어진 뒤 퇴계가 그 집에서 펼친 일상의 의미는 더 각별했다. 한양 생활을 정리하고 도산서당으로 거처를 정한 뒤 평생 좋아하는 책 속에 파묻혀 살면서 제자들과의 강독을 즐겼다. 매화나무를 각별히 아끼고, 울타리를 가꾸고, 연못을 꾸몄다.

▲ 창밖의 전경만 아름다운 건 아니다. 단정하고 규칙적인 창호의 배치가 아름답고, 유리창에 부서지는 빛이 아름답다. 처음 만들 때의 원형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맞은편 쪽마루에 걸터 앉아 그림 같은 이 모습을 다시 보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 황우섭


어쩌면 집을 향한 내 마음이 구체적으로 시작된 건 바로 그 도산서당에 관한 책을 만들 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책을 쓰신 선생님의 단정한 문장 속에 그려지는 퇴계의 삶을 따라가며 나는 나이가 든 이후 나의 삶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도산서당에 관한 책을 쓰신 선생님은 책을 통해 집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무엇을 하는가를 더 귀하게 여긴 퇴계의 자세를 유념할 필요가 있노라 하셨다. 책의 머리말에도 예의 그 단정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그 뜻을 밝히셨다.

책에 넣을 사진을 찍으러 일부러 도산서당을 찾았다. 동행한 사진작가가 도산서당 곳곳을 찍으러 다니는 동안 나는 그곳 툇마루에 한참 걸터 앉아 있었다. 나 역시도 이렇게 마음 한 켠에 곱게 꿈 하나를 가꾸고, 그 꿈으로 이룬 공간에서 고요하고 평화롭게 평생 해오던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그런 만년의 삶을 산다면 좋을 것이라 여겼다. 이런 꿈과 공상의 경계 어디쯤에 그려지는 어렴풋한 풍경 속에 잘 지은 한옥 한 채가 들어서 있던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20대 중반부터 지금껏 책을 만들며 살았다. 일상 대부분의 이정표는 읽거나 만든 책에서 비롯되었다. 도산서당과 작은 한옥 한 채에 관한 두 권의 책이 나를 지금 이 순간으로 이끌어왔다. 하긴 어디 그 두 권뿐이랴. 한옥을 짓는 법에 관한 책도, 우리 주택의 변천사를 탐구한 책도 만드는 그 시간 속에 내 꿈이 영글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꿈처럼 작은 한옥 한 채가 내 앞에 서 있다.
덧붙이는 글 사진을 찍은 황우섭은 주로 인물과 건축물을 찍는다. 사람도 건물도 기교와 치장 대신 있는 그대로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는 걸 좋아한다. 오래된 것에 집착하고,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것에 주로 관심을 갖는다. 산티아고 순례와 나오시마 여행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긴 단행본이 국내에 출간되었고, '조병수 건축사무소' 전속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찍은 사진이 영국 'Thames&Hudson'에서 펴낸 조병수 건축가의 작품집 『BYOUNG CHO』의 표지 및 본문에 실렸다.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되었다.(https://blog.naver.com/hyehwa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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