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모이] 딸아, 우리 함께 행복하자꾸나

'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등록|2018.04.07 15:15 수정|2018.04.07 15:15

▲ ⓒ 조상연


딸아, 행복하냐? 행복이란 게 도대체 뭘까? 저기 사막 끄트머리에 뭔가 보여 달려가면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걸까? 아버지는 행복이라는 정의를 딱 부러지게 못 내리겠구나. 너에게 편지를 쓰다 말고 옆의 동료에게 행복하냐고 물어봤더니 "글쎄? 로또 일등에 당첨되면 모를까 웃을 일이 없네"라는 대답이다. 이 말은 웃을 일이 있다면 행복하고 그 웃을 일은 결국 돈이다는 얘기로 들린다만 로또처럼 허황된 꿈은 좌절만 안겨줄 뿐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여긴다.

바람이 많이 부는구나. 어라? 이게 웬 돈! 발밑에 오만 원짜리 한 장이 팔랑팔랑 날아다닌다. 쫓아가 잡으려고 하면 날아가고 잡으려고 하면 날아가고, 얼렐레?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어린 꼬마가 발로 탁 잡더니 냉큼 집어 들고 유유히 사라진다.

바람에 날리는 오만 원짜리가 바로 허황된 꿈이다. 오만 원 지폐를 발견하기 전까지 전혀 불행하지 않았는데 눈앞에 오만 원이 나타났고 충분히 내 것이 될 수도 있었던 오만 원은 어린 꼬마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그 오만 원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사라질 때까지 한동안 땅만 바라보며 걷겠지.

그런데 그 돈이 처음부터 네 돈은 아니었다. 남의 돈이 네 주머니로 들어오면 행복해? 잠깐은 행복할 수도 있겠구나. 그러나 바람에 날리는 오만 원어치의 행복에 우리가 기만당해서야 되겠느냐. 엄밀히 말해서 그 오만 원은 '행운'이지 '행복'이 아니다. 행운은 나를 기만할 수도 있고 요행처럼 잠깐 스쳐지나가는 것이지만 행복은 내가 삶의 가치관을 어디다 두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지속가능한 삶의 한 단면이다.

바람에 날리는 오만 원짜리가 네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행복은 멀어질 수도 있다. 어린 꼬마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 오만 원과 네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 오만 원은 다른 돈이다. 꼬마는 돈에 대한 개념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땅에 떨어진 걸 주웠지만 너는 그 돈을 쫓아다녔다. 그 쫓아다녔다는 행위 자체가 욕심이요 미혹(迷惑)이라는 것이지.

사랑하는 딸아!
명예를 쫓아라.
돈보다 명예를 쫓아라.

아버지는 그 명예조차도 사막의 신기루처럼 부질없는 것이라 여기지만 너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 명예는 소중히 여겼다. 동계올림픽의 이상화 선수가 꼭 금메달을 따고 은메달을 따서 명예가 지켜지는 것은 아니란다. 이상화 선수가 일등으로 테이프를 끊는 것이 최종 목적이겠지만 스케이트를 탄다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목적이 돼야 한다. 이상화 선수가 금메달을 따느냐 마느냐는 나중 문제다. 이렇게 인생의 목적이라고 하는 것은 나의 삶의 체험 속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아버지는 지금 독일의 대표적 철학가 하이데거가 말한 '인생에 있어서 목적과 수단은 분리가 될 수가 없다'라는 것을 빗대어 말하고 있다. 삶의 목표는 무엇이 되느냐 하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함의 문제다.

쉽게 얘기하면 대통령이 목적이 아니라 어떤 대통령이 되느냐가 목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가가 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기보다는 어떤 문학가가 되느냐가 목적이 되어야 하며 그 '어떤 문학가' 속에는 타인의 가슴 속에 사랑을, 꿈을,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수단과 방법이 포함된다. 그래서 목적 못지않게 수단과 방법도 중요하다.

아버지의 딸은
무엇이 되느냐보다는
어떤 무엇이 되느냐를
항상 고민하며 살아갔으면 좋겠구나.

봄비가 내리는구나. 작약의 새순이 신비롭다. 정몽주 선생의 시 한 편 감상하련? 직장생활에 바쁜 너에게 무리한 요구겠지만 이 시는 한문과 함께 필사를 여러 번 해가며 외워두었으면 좋겠구나.

春雨細不滴 춘우세부적
夜中微有聲 야중미유성
雪盡南溪漲 설진남계창
草芽多少生 초아다소생

봄비 보슬보슬 듣더니
밤새 토닥토닥 빗소리
눈 녹아 시냇물 넘실거리고
새 싹도 꽤나 돋아나겠지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