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지도에 그려진 나일강이 '소름 돋는' 이유
[지도와 인간사] 강리도 속 '달의 산'과 호수들
지구별에서 가장 긴 강인 나일강은 어디서 흘러 나오는가? 그 원천은 수천 년 동안 상상과 추측, 탐사의 대상이었습니다. 한양에서 1402년에 만들어진 지도에 과연 나일강의 원천이 그려져 있을까요? 이런 의문 속으로 머나먼 탐험 여행을 떠납니다. 우선 다른 나라, 다른 문명권의 옛 지도를 유람해 봅니다.
다음은 19세기 초(1805) 서양에서 나온 지도입니다.
아프리카 대륙을 동서로 나누고 있는 거대한 산맥이 인상적입니다. 이 지도에서 나일강의 원천을 보여주는 세부도에 주목해 봅니다. '달의 산(Mountains of the Moon)'에서 물이 흘러 나와 나일강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다음과 같이 그려져 있습니다.
도대체 '달의 산'은 어디에 있으며 정말 나일강의 원천일까요?
그들은 어떻게 그려 넣었을까
서양에서 나일강을 그린 지도가 나온 것은 15세기 후반에 이르러서 입니다. 한편, 이슬람권에서는 서양보다 훨씬 앞서 9세기부터 나일강을 그립니다. 아래는 최초의 나일강 지도로, 알 콰리즈미(al- Khwarizmi, 페르시아, 789~850)의 지도를 우리에게 익숙한 방향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맨 아래쪽에 나일강의 원천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반달 모양의 큰 산이 '달의 산'입니다. 거기에서 여덟 줄기의 물이 흘러나와 두 개의 호수를 이룬 후 거기에서 다시 물줄기가 호수에 모여든 후 북쪽으로 구불구불 흘러 갑니다. 우측에서 또 하나의 물줄기가 북상하다가 합류하는데, 이는 오늘날의 청 나일강(Blue Nile)을 묘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청나일강이 '달의 산'에서 발원한 백 나일강(White Nile)과 합류한 후 북류하여 지중해(맨 위쪽의 진청색 사각형)로 들어갑니다. 나일 강 유역에서는 여러 마을과 도시가 발달하고 문명이 움트고 성장합니다.
다음은 11세기에 그려진 아랍인의 세계상입니다. 원도는 남쪽이 위를 향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방향으로 돌려 놓았습니다. 이 지도는 1020년부터 1050년 사이에 이집트에서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기한 것들의 책>(영어로 약칭하여 'The Book of Curiosities')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저자 불명의 이 책은 2002년 옥스포드 도서관이 입수하여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지도 역시 나일강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도 하단을 보면 '달의 산'을 횡으로 가로질러 축척을 표시하는 잣대가 그려져 있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달의 산' 일대의 형상은 앞에서 본 알 콰리즈미의 그것과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의 유로는 다릅니다. 두 줄기가 홍해로 흘러 들어가고 나머지 한 줄기는 지중해로 들어갑니다. 우리의 강리도(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경우는 나일강의 한 줄기는 홍해로, 다른 한 줄기는 지중해로 들어갑니다.
이제 중세의 가장 탁월한 이슬람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al-Idrisi, 모로코, 1100~1165)의 지도를 봅니다. 먼저 세계지도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방향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래 부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거대한 대륙이 아프리카입니다. '달의 산'과 호수가 크게 부각되어 있습니다. 나일강의 한 줄기는 북상하여 지중해로 들어가지만, 다른 한 줄기는 북서행하여 대서양으로 사라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다음은 알 이드리시가 그린 나일강 원천의 세부도입니다.
이 지도는 1152년 알 이드리시가 그린 60매의 지역도 중의 하나로서 16세기(1553년)에 재현한 것입니다. 북쪽을 위로 돌려 놓았습니다. 좌 하단에 나일강의 원천이 아름답고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달의 산'에서 여덟 줄기의 물이 흘러 나와 두 개의 호수를 이루고 거기서 흘러 나온 물줄기가 다시 또 다른 호수('나일강의 눈')를 이룬 후 나일강으로 이어지는 패턴입니다.
나일강 수원에 대한 지리 정보는 이슬람의 대학자 이븐 할둔(Ibn Khaldun, 튀니스, 1332~1406)의 저작에도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제 시공을 훌쩍 뛰어 넘어 18세기(1770)에 인도에서 그려진 이슬람 지도를 살펴 봅니다. 아래는 나일강의 수원 지대로서 남쪽이 위를 향하고 있습니다.
분홍색으로 물든 거대한 산이 '달의 산'인데 여기에 전설적인 알렉산더 궁을 그려 놓고 있습니다. '달의 산'에서 발원한 나일강이 힘차게 흐르고 강 유역에는 코끼리 등의 야생 동물과 인간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초승달이 빛을 뿌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이슬람권을 벗어나 기독교권으로 이동합니다. 서양 기독교권은15세기에 들어 와서야 잠에서 깨어납니다. 다음 지도는 이태리인(Francesco Berlinghieri)이 1480~1481년에 프톨레미의 <지오그라피>에 기초하여 그린 세계지도입니다. 이 지도가 만들어진 시기는 강리도 원본(1402)이 최초로 모사된(일본 류코쿠대 본) 시기와 일치합니다. 유심히 감상해 봅니다.
매우 혁신적이고 아름다운 지도입니다. 경도 및 위도를 표시하는 수학적인 선분이 교차하고 있고 투영도법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지도의 세계상을 살펴 보면, 아프리카는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 않고 동방의 육지로 이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인도양은 땅에 갇힌 내해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제 여기에서 나일강을 찾아 봅니다. 맨 아래 쪽을 보면 '달의 산'에서 네 개의 물줄기가 흘러나와 두 개의 호수를 이루고 그 호수에서 흘러나온 물이 나일강을 이루어 북상하다가 지중해로 들어갑니다. 나일강의 원천 부분을 주목해 보면, 앞서 본 이슬람 지도에서처럼 '달의 산'과 호수가 그려져 있지만 한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제 3의 호수(이슬람 지도에서 '나일강의 눈')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래 지도도 마찬가지입니다. 16세기 독일인 Münster, Sebastian(1489~1552)가 그린 아프리카 전도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중세 이슬람 지도와 르네상스기의 서양 지도에서 나일강을 살펴 보았습니다. 지도마다 나일강의 묘사에 차이가 있지만, '달의 산'에서 물줄기가 발원하여 호수를 이루고 거기에서 나일강이 흘러 나가는 기본 구도는 동일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달의 산'이 나일강의 원천이라는 소식은 원래 어디에서 유래된 것일까요?
2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지리학자 클로디우스 프톨레미(Claudius Ptolemy)의 <지오그라피>가 그 발신처입니다. 프톨레미는 아프리카에 대한 지리정보를 그리스의 선구적 지리학자 마리누스(Marinus of Tire, 70~130)의 글에 기초로 작성하였습니다. 여기에 '달의 산' 정보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마리누스가 원천 정보의 주인인 셈인데 그의 글은 전해 오지 않기 때문에 프톨레미의 <지오그리피>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 요지인 즉 이렇다 합니다.
지리학의 바이블 격인 프톨레미의 <지오그라피>에 서술된 '달의 산'은 그 후 장구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과 모험심을 사로잡았습니다. '달의 산'이 실제로 발견된 것은 1889년 스탠리에 의해서였습니다. 오늘날 우간다와 민주 콩고의 국경지대에 있는 1509m의 루웬조리(Rwenzori)산(달의 산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음)이 그것입니다. 최근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K. 롤링은 그곳 '달의 산'에 와가두(Uagadou)라는 마법 학교를 가상으로 세웠다고 발표하기도 하였지요.
한편 최근 '달의 산'(공식 명칭은 루웬조리산) 등반에 성공한 영국의 여행작가 Mark Stratton은 이렇게 말합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달의 산이 나일강의 원천이다'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달의 산', 즉 루웬조리 산의 빙하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나일강의 일부를 이룰 뿐이니까요.
강리도에서 나일강의 원천 찾기
우리는 이렇게 머나먼 '달의 산' 탐험 여정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 하나를 남겨 두고 있습니다. 2세기의 <지오그라피>에 서술되었고 21세기의 롤링 작가가 마법학교를 세운 '달의 산'과 인근의 호수들이 과연 15세기 조선의 선비들이 붓으로 그린 강리도에 묘사되어 있겠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중요한 항목입니다. 왜냐면 만일 '달의 산'이 강리도에 나타나 있다면 세계지도로서의 면목이 재확인될 것이기 때문이지요. 반대로 나일강이 만일 우리의 강리도에 표사되어 있지 않다면 세계지도로서의 면목을 잃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나일강 전체를 다루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큰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번에는 '달의 산'과 호수에만 주목해 봅니다.
예전에 설명했듯이 강리도는 1402년에 그렸다는 원본은 사라지고 없고, 네 개의 모사본(조선에서 제작)이 모두 일본에 있습니다. 그 중 류코쿠 대학본(원본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서 이 이미지가 학계에서 '1402 Kangnido'로 통용되고 있음)은 1480년대 초 경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조지형), 나머지 세 판본은 제작 시기를 알기 어렵지만 모두 1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 네 판본에서 나일강의 수원을 묘사한 부분을 옮겨 와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달의 산'과 호수들을 묘사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호수의 형상을 보면 서양지도 보다는 이슬람 지도에 가깝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제3의 호수가 그려진 것으로 보아서 그렇습니다(서양 지도에는 나타나 있지 않음). 그러나 강리도의 호수는 이슬람 지도와도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바로 꽈리 혹은 눈동자 형상의 호수가 그것입니다. 이로 보아 강리도는 나일강의 원천에 대하여 고전적 지리정보를 반영하였지만 어느 한 범주를 따르지 않고 여러 지리 정보를 독특한 방식으로 혼합했다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의문은 과연 강리도에 '달의 산'이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류코쿠대 판본을 보면 아무 글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세 판본에는 글자들이 보입니다. 이 중에 '달의 산'에 해당하는 한자가 표기되어 있을까?
강리도의 서방 지명 연구를 개척한 스기야마에 의하면, 류코쿠대 본 이외의 세 판본에는 모두 '這不魯哈麻(중국어 발음으로 '저불루하마')가 기록되어 있습니다(스기야마 마사아끼 <대지의 초상> 58쪽). 이것이 '달의 산'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맨 처음 밝힌 것은 1960년대 일본의 다카하시 타다시(高橋正)에 의해서였다고 합니다.
강리도의 서방지역에는 수백 개의 난해한 지명이 나옵니다. 그 해독 문제가 최대의 미결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최근 카자흐스탄의 학자 눌란 켄지크메트(Nurlan Kenzheakhmet, 북경대에서 박사학위)가 강리도의 지명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는 점입니다(이곳 '지도와 인간사'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됨).
다음은 눌란 박사가 잡지 <The Silk Road>(2016)에 실은 '달의 산' 해설도입니다.
이제 눌란 박사의 설명을 들어봅니다.
강리도가 이처럼 나일강의 원천과 유로를 뚜렷이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까요? 이는 강리도가 시공을 가로지른 다른 문명권의 지도 및 지리정보와 연동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강리도의 세계성을 잘 드러내주는 징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지도로서의 면모가 아닐 수 없지요.
이에 비추어 보면 '강리도가 중화주의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피상적이고도 고답적인 평가는 무색해지고 맙니다.
다음은 19세기 초(1805) 서양에서 나온 지도입니다.
▲ 아프리카 지도달의 산 ⓒ img.raremaps.com
아프리카 대륙을 동서로 나누고 있는 거대한 산맥이 인상적입니다. 이 지도에서 나일강의 원천을 보여주는 세부도에 주목해 봅니다. '달의 산(Mountains of the Moon)'에서 물이 흘러 나와 나일강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다음과 같이 그려져 있습니다.
▲ 달의 산달의 산 ⓒ img.raremaps.com
도대체 '달의 산'은 어디에 있으며 정말 나일강의 원천일까요?
그들은 어떻게 그려 넣었을까
서양에서 나일강을 그린 지도가 나온 것은 15세기 후반에 이르러서 입니다. 한편, 이슬람권에서는 서양보다 훨씬 앞서 9세기부터 나일강을 그립니다. 아래는 최초의 나일강 지도로, 알 콰리즈미(al- Khwarizmi, 페르시아, 789~850)의 지도를 우리에게 익숙한 방향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 나일강달의 산과 유로 ⓒ <MEDIEVAL ISLAMIC MAPS>
맨 아래쪽에 나일강의 원천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반달 모양의 큰 산이 '달의 산'입니다. 거기에서 여덟 줄기의 물이 흘러나와 두 개의 호수를 이룬 후 거기에서 다시 물줄기가 호수에 모여든 후 북쪽으로 구불구불 흘러 갑니다. 우측에서 또 하나의 물줄기가 북상하다가 합류하는데, 이는 오늘날의 청 나일강(Blue Nile)을 묘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청나일강이 '달의 산'에서 발원한 백 나일강(White Nile)과 합류한 후 북류하여 지중해(맨 위쪽의 진청색 사각형)로 들어갑니다. 나일 강 유역에서는 여러 마을과 도시가 발달하고 문명이 움트고 성장합니다.
다음은 11세기에 그려진 아랍인의 세계상입니다. 원도는 남쪽이 위를 향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방향으로 돌려 놓았습니다. 이 지도는 1020년부터 1050년 사이에 이집트에서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기한 것들의 책>(영어로 약칭하여 'The Book of Curiosities')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저자 불명의 이 책은 2002년 옥스포드 도서관이 입수하여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 이슬람 세계지도중세 이슬람 세계상 ⓒ Jerry Broton, <GREAT MAPS>
이 지도 역시 나일강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도 하단을 보면 '달의 산'을 횡으로 가로질러 축척을 표시하는 잣대가 그려져 있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달의 산' 일대의 형상은 앞에서 본 알 콰리즈미의 그것과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의 유로는 다릅니다. 두 줄기가 홍해로 흘러 들어가고 나머지 한 줄기는 지중해로 들어갑니다. 우리의 강리도(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경우는 나일강의 한 줄기는 홍해로, 다른 한 줄기는 지중해로 들어갑니다.
이제 중세의 가장 탁월한 이슬람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al-Idrisi, 모로코, 1100~1165)의 지도를 봅니다. 먼저 세계지도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방향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 이드리시 지도이드리시 세계지도 ⓒ <The Mapping of Africa>
아래 부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거대한 대륙이 아프리카입니다. '달의 산'과 호수가 크게 부각되어 있습니다. 나일강의 한 줄기는 북상하여 지중해로 들어가지만, 다른 한 줄기는 북서행하여 대서양으로 사라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다음은 알 이드리시가 그린 나일강 원천의 세부도입니다.
▲ 알 이드리시 지도나일강 ⓒ 옥스포드대학 도서관
이 지도는 1152년 알 이드리시가 그린 60매의 지역도 중의 하나로서 16세기(1553년)에 재현한 것입니다. 북쪽을 위로 돌려 놓았습니다. 좌 하단에 나일강의 원천이 아름답고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달의 산'에서 여덟 줄기의 물이 흘러 나와 두 개의 호수를 이루고 거기서 흘러 나온 물줄기가 다시 또 다른 호수('나일강의 눈')를 이룬 후 나일강으로 이어지는 패턴입니다.
나일강 수원에 대한 지리 정보는 이슬람의 대학자 이븐 할둔(Ibn Khaldun, 튀니스, 1332~1406)의 저작에도 서술되어 있습니다.
"나일강은 하나의 거대한 산에서 발원한다. 이것은 '달의 산'이라고 불리며 지구에서 그보다 더 높은 산은 없다고 한다. 그 산에서 많은 샘물이 솟아나오는데, 그 중 일부는 인근의 호수로 흘러 들어가고 또 다른 일부는 다른 호수로 흘러 들어 간다. 이 두 개의 호수에서 여러 개의 강이 흘러 나와 모두 적도에 위치한 한 호수로 들어 간다." - 김호동 역 <역사 서설> 82쪽 참조
이제 시공을 훌쩍 뛰어 넘어 18세기(1770)에 인도에서 그려진 이슬람 지도를 살펴 봅니다. 아래는 나일강의 수원 지대로서 남쪽이 위를 향하고 있습니다.
분홍색으로 물든 거대한 산이 '달의 산'인데 여기에 전설적인 알렉산더 궁을 그려 놓고 있습니다. '달의 산'에서 발원한 나일강이 힘차게 흐르고 강 유역에는 코끼리 등의 야생 동물과 인간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 나일강인도 18세기 지도 ⓒ Jerry Broto, <GREAT MAPS>
"초승달이 빛을 뿌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이슬람권을 벗어나 기독교권으로 이동합니다. 서양 기독교권은15세기에 들어 와서야 잠에서 깨어납니다. 다음 지도는 이태리인(Francesco Berlinghieri)이 1480~1481년에 프톨레미의 <지오그라피>에 기초하여 그린 세계지도입니다. 이 지도가 만들어진 시기는 강리도 원본(1402)이 최초로 모사된(일본 류코쿠대 본) 시기와 일치합니다. 유심히 감상해 봅니다.
▲ 프톨레미 지도나일강 ⓒ <MEDIEVAL ISLAMIC MAPS>
매우 혁신적이고 아름다운 지도입니다. 경도 및 위도를 표시하는 수학적인 선분이 교차하고 있고 투영도법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지도의 세계상을 살펴 보면, 아프리카는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 않고 동방의 육지로 이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인도양은 땅에 갇힌 내해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제 여기에서 나일강을 찾아 봅니다. 맨 아래 쪽을 보면 '달의 산'에서 네 개의 물줄기가 흘러나와 두 개의 호수를 이루고 그 호수에서 흘러나온 물이 나일강을 이루어 북상하다가 지중해로 들어갑니다. 나일강의 원천 부분을 주목해 보면, 앞서 본 이슬람 지도에서처럼 '달의 산'과 호수가 그려져 있지만 한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제 3의 호수(이슬람 지도에서 '나일강의 눈')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래 지도도 마찬가지입니다. 16세기 독일인 Münster, Sebastian(1489~1552)가 그린 아프리카 전도입니다.
▲ 아프리카 지도뮌스터 지도(Basel, 1554) ⓒ worldhistoryfacts.com
우리는 이렇게 중세 이슬람 지도와 르네상스기의 서양 지도에서 나일강을 살펴 보았습니다. 지도마다 나일강의 묘사에 차이가 있지만, '달의 산'에서 물줄기가 발원하여 호수를 이루고 거기에서 나일강이 흘러 나가는 기본 구도는 동일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달의 산'이 나일강의 원천이라는 소식은 원래 어디에서 유래된 것일까요?
2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지리학자 클로디우스 프톨레미(Claudius Ptolemy)의 <지오그라피>가 그 발신처입니다. 프톨레미는 아프리카에 대한 지리정보를 그리스의 선구적 지리학자 마리누스(Marinus of Tire, 70~130)의 글에 기초로 작성하였습니다. 여기에 '달의 산' 정보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마리누스가 원천 정보의 주인인 셈인데 그의 글은 전해 오지 않기 때문에 프톨레미의 <지오그리피>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 요지인 즉 이렇다 합니다.
"기원전 50년경 그리스의 무역상 디오게네스Diogenes라는 사람이 라프타Raphta(오늘날 탄자니아의 해안 도시)로부터 25일간 내륙을 향해 여행하다가 우연히 두 개의 호수와 '달의 산'이라 불리우는 눈 덮인 산을 만나게 되었다. 거기에서 나일강이 발원한다."
지리학의 바이블 격인 프톨레미의 <지오그라피>에 서술된 '달의 산'은 그 후 장구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과 모험심을 사로잡았습니다. '달의 산'이 실제로 발견된 것은 1889년 스탠리에 의해서였습니다. 오늘날 우간다와 민주 콩고의 국경지대에 있는 1509m의 루웬조리(Rwenzori)산(달의 산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음)이 그것입니다. 최근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K. 롤링은 그곳 '달의 산'에 와가두(Uagadou)라는 마법 학교를 가상으로 세웠다고 발표하기도 하였지요.
한편 최근 '달의 산'(공식 명칭은 루웬조리산) 등반에 성공한 영국의 여행작가 Mark Stratton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리학의 아버지 프톨레미는 루웬조리 산맥을 달의 산맥이라 불렀다. 그가 이름을 잘 붙였다고 여겨진다. 우리는 우간다의 서쪽 국경 부근의 산중에 캠프를 쳤는데 주위에 펼쳐진 빙하위에 별빛이 은은히 비추고 있었다. 마치 초승달이 빛을 뿌리고 있는 것 같았다." - 2018년 1월 8일자 <가디언>
▲ ‘달의 산’루웬조리산 ⓒ mountainprofessor.com
물론 오늘날에는 '달의 산이 나일강의 원천이다'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달의 산', 즉 루웬조리 산의 빙하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나일강의 일부를 이룰 뿐이니까요.
강리도에서 나일강의 원천 찾기
우리는 이렇게 머나먼 '달의 산' 탐험 여정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 하나를 남겨 두고 있습니다. 2세기의 <지오그라피>에 서술되었고 21세기의 롤링 작가가 마법학교를 세운 '달의 산'과 인근의 호수들이 과연 15세기 조선의 선비들이 붓으로 그린 강리도에 묘사되어 있겠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중요한 항목입니다. 왜냐면 만일 '달의 산'이 강리도에 나타나 있다면 세계지도로서의 면목이 재확인될 것이기 때문이지요. 반대로 나일강이 만일 우리의 강리도에 표사되어 있지 않다면 세계지도로서의 면목을 잃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나일강 전체를 다루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큰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번에는 '달의 산'과 호수에만 주목해 봅니다.
예전에 설명했듯이 강리도는 1402년에 그렸다는 원본은 사라지고 없고, 네 개의 모사본(조선에서 제작)이 모두 일본에 있습니다. 그 중 류코쿠 대학본(원본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서 이 이미지가 학계에서 '1402 Kangnido'로 통용되고 있음)은 1480년대 초 경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조지형), 나머지 세 판본은 제작 시기를 알기 어렵지만 모두 1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 네 판본에서 나일강의 수원을 묘사한 부분을 옮겨 와보겠습니다.
▲ 강리도 나일강류코쿠대 본 ⓒ 류코쿠대
▲ 강리도 나일강류코쿠대 본의 현대적 재현(교토대) ⓒ 교토대
▲ 강리도 나일강本光寺本 ⓒ 本光寺本
▲ 강리도 나일강本妙寺本 ⓒ 本妙寺本
▲ 강리도 나일강天理大本 ⓒ 天理大本
어떻습니까? '달의 산'과 호수들을 묘사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호수의 형상을 보면 서양지도 보다는 이슬람 지도에 가깝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제3의 호수가 그려진 것으로 보아서 그렇습니다(서양 지도에는 나타나 있지 않음). 그러나 강리도의 호수는 이슬람 지도와도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바로 꽈리 혹은 눈동자 형상의 호수가 그것입니다. 이로 보아 강리도는 나일강의 원천에 대하여 고전적 지리정보를 반영하였지만 어느 한 범주를 따르지 않고 여러 지리 정보를 독특한 방식으로 혼합했다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의문은 과연 강리도에 '달의 산'이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류코쿠대 판본을 보면 아무 글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세 판본에는 글자들이 보입니다. 이 중에 '달의 산'에 해당하는 한자가 표기되어 있을까?
강리도의 서방 지명 연구를 개척한 스기야마에 의하면, 류코쿠대 본 이외의 세 판본에는 모두 '這不魯哈麻(중국어 발음으로 '저불루하마')가 기록되어 있습니다(스기야마 마사아끼 <대지의 초상> 58쪽). 이것이 '달의 산'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맨 처음 밝힌 것은 1960년대 일본의 다카하시 타다시(高橋正)에 의해서였다고 합니다.
강리도의 서방지역에는 수백 개의 난해한 지명이 나옵니다. 그 해독 문제가 최대의 미결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최근 카자흐스탄의 학자 눌란 켄지크메트(Nurlan Kenzheakhmet, 북경대에서 박사학위)가 강리도의 지명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는 점입니다(이곳 '지도와 인간사'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됨).
다음은 눌란 박사가 잡지 <The Silk Road>(2016)에 실은 '달의 산' 해설도입니다.
▲ 강리도Nurlan의 해설도 ⓒ <Silk Road>14(2016)
이제 눌란 박사의 설명을 들어봅니다.
"여기 강리도에 아랍의 고전적 지리학과 그걸 통한 2세기의 프톨레미 지리학의 영향이 몹시 뚜렷이 나타나 있다. 강리도는 이슬람 지도들과 마찬가지로 나일강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나일강의 원천으로서 這不魯哈麻(중국어 발음으로 '저불루하마')는 아랍어 Jabal al-Qamar(jabal은 산, qamar는 달이다 - 글쓴이)의 한음(漢音)으로 문자 그대로 '달의 산'을 가리킨다. 명나라에서 1603년 마테로 리치가 그린 지도(양의현람도, 兩儀玄覽圖)와 1644년에 나온 지도〈천하구변분야인적노정전도(天下九邊分野人跡路程全圖)에는 Jabal al-Qamar이 '月山'(mountain of the moon)으로 기록되어 있다." - 112쪽
강리도가 이처럼 나일강의 원천과 유로를 뚜렷이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까요? 이는 강리도가 시공을 가로지른 다른 문명권의 지도 및 지리정보와 연동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강리도의 세계성을 잘 드러내주는 징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지도로서의 면모가 아닐 수 없지요.
이에 비추어 보면 '강리도가 중화주의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피상적이고도 고답적인 평가는 무색해지고 맙니다.
"여기에서 강리도의 아프리카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여러 층위로 구성된 지리 지식의 복잡한 혼종성(hybridity)이다. (중략) 지도는 창의적인 한 개인의 작품일 수 없다. 특히, 세계지도는 세대를 거듭하여 지리 정보와 지식, 그리고 지조제작자의 기술이 축적되면서 만들어진 집단적인 지적 소산이다. 그렇게 때문에, 여러 사람들과 집단의 오류도 함께 지도에 첨가되기도 하고, 지식 축적 과정에서 오류가 걸러지고 교정되기도 한다. 여러 차례의 판본을 거듭하면서 제작된 조선의 강리도는 쇄신을 거듭해온 아프로-유라시아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프로-유라시아의 역사, 나아가 인류사에 대한 조선의 역동적인 기여로서의 강리도는 탈식민주의와 유럽중심주의 극복을 위한 하나의 좋은 도구이자 사고전환의 자극제라 할 수 있다." -조지형 <이화사학연구 제45집>(2012)『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의 아프리카: 비교사적 검토(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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