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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제야 좀 알겠네

[서평]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록|2018.04.18 14:16 수정|2018.04.18 14:16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 민음사


여기 1968년 프라하를 살고 있는 주인공들이 있다. 체코 태생인 작가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통해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배경으로 인물들의 고민과 혼란을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작품은 총 7부로 나뉜다. 토마시의 삶을 보여주는 1부와 5부, 그의 연인 테레자의 삶을 보여주는 2부와 4부, 두 사람의 마지막을 그리는 7부가 한 축을 이루고, 또 다른 연인 사비나와 프란츠의 삶을 그리는 2부와 6부가 다른 축을 이룬다. 개개의 삶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듯 작가는 네 주인공의 상황과 의식을 고르게 보여준다.

사람마다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명제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이 명제는 특정한 계기로 만들어져 우리를 따라다니다가 선택의 순간 혹은 후회의 순간에 삶의 기준이 되어 우리 삶을 이끌고 가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지만 대개는 그 사람이 사는 시대와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그러하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갈등

체코의 의사인 토마시는 프라하에 살고 있다. 우연히 간 보헤미아 술집에서 알게 된 테레자에게 명함을 건네고, 곧 프라하로 찾아온 그녀와 평생을 함께 한다. 토마시의 삶을 지배하는 명제는 '가벼움'이었다.

니체의 말대로 우리의 삶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일 것이다. 하지만 삶이란 한 번 뿐인 덧없는 것이기에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고 토마시는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래야만 하는' 사회적 관습도 부정한다. 이혼 후 일정 부분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아들을 보지 않으며, 이를 비난하는 부모와도 인연을 끊는다.

"물리 실험 시간에 중학생은 과학적 과정의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오직 한 번 밖에 살지 못하므로 체험으로 가정을 확인해 볼 길이 없고, 따라서 자기 감정에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p.61).

이런 토마시에게 테레자가 나타난다. 그녀는 그가 다른 여자들과는 할 수 없었던 동반 수면을 가능하게 한다. 그녀에게 사랑 이상의 동정을 느끼는 그는 마치 그녀의 신경에 자신의 뇌가 연결된 듯 그녀의 아픔을 함께 아파한다.

그럼에도 여자들과의 섹스는 축구경기관람처럼 포기할 수 없는 일이며 그저 에로틱한 우정일 뿐이라 여기며 테레자를 괴롭히지만 그에게 동정심보다 무거운 것은 없다. 가벼움을 향하던 그의 삶이었지만 동정심이라는 무거움을 벗어날 수 없다. 결국 그의 모든 것은 테레자가 결정하게 된다(p.53).

작가가 토마시를 통해 보여주는 '가벼움과 무거움'의 갈등은 역사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공산 체제 아래에서 자유를 갈망하던 시대를 살며 작가는 역사의 의미를 고민했으리라. 여러 죽음과 고통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념이라는 것이 과연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끊임없이 사유했으리라.

결과적으로는 사회주의 이념이 가진 모순들로 소련은 붕괴되었지만 그 시대가 옳은지 그른지는 심판할 수 없다고 작가는 생각하는 듯하다. 우리의 삶이 한 번뿐이듯 역사도 한 번이기에.

토마시의 연인 테레자는 보헤미아 술집 종업원이다. 어머니로 상징되는 '서로 비슷비슷한 육체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이 갇혀 있는 뻔뻔스러운 세계'를 살던 그녀는 홀로 끊임없이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려 한다.

그녀 삶의 명제는 '영혼'이다. 우연히 만난 프라하의 의사 토마시를 통해 아무 만족도 주지 못하는 삶에서 벗어나 더 높은 세계로 올라가고자 하지만 토마시의 끊임없는 바람기로 삶의 대부분을 질투심에 사로잡혀 산다. 어머니의 세계로 추락하고픈 욕구가 일기도 하지만 결국 삶에 대한 그녀의 모든 갈망은 토마시로 귀결된다. 그녀는 약자이기에 강자이다. 상처를 줄 수 없을 만큼 약하기에 토마시는 테레자에게 이끌릴 수밖에 없다.

"그녀는 그가 자기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고 속으로 항상 그를 비난했다. 그에 대한 그녀의 사랑에는 조금도 흠잡을 데가 없지만 그녀에 대한 그의 사랑은 단순한 자만심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제 그녀는 자기가 얼마나 부당했는지 깨달았다. (중략) 그녀는 얼마나 교활했던가! 그녀는 그를 시련에 빠뜨렸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자기를 따라오라고 불렀고 결국 그를 이곳까지 불러들인 셈이다"(p.501).

작품의 말미에서 두 사람이 기르던 개 '카레닌'의 의미가 부각된다. 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자발적 사랑, 카레닌에 대한 테레자의 사랑이 그러했다. 이는 토마시에 대한 사랑과 엄연히 달랐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작가는 주인공들만큼 우리 역시 고민하게 만든다.

또 다른 연인 사비나와 프란츠가 있다. 사비나는 토마시의 옛 애인이다. 프라하에서 살던 그녀는 스위스 제네바로 망명한다. 제네바에서 만난 프란츠는 아내가 있는 남자이다. 그는 외국의 강연 초청을 핑계로 사비나와 동행하여 사랑을 나눈다.

두 사람의 삶은 상반된다. 공산주의 세계에서 이념을 강요받으며 자란 사비나와 너무나도 평화로워 권태롭기까지 한 삶을 살아 혁명을 동경하는 프란츠. 이들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두 사람은 대화했지만 논리적 의미만 주고받을 뿐 그 말 사이를 흘러가는 의미론적 강물의 속삭임은 서로 듣지 못한다(p.151).

아버지가 떠나고 혼자 남게 된 어머니 밑에서 자란 프란츠는 '정조'를 으뜸으로 여기지만 사회주의 아래에서 살아온 사비나는 '배신'을 꿈꾼다. 그녀에게 배신이란 억압된 세계에서 벗어나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다.

두 사람에게 '음악'은 다른 의미이다. 프란츠에게 음악이 해방이지만 사비나에게는 야만적인 소음일 뿐이다. 그에게 '행렬'이란 답답한 삶에서 벗어나는 행복한 일탈이지만, 이를 강요받았던 그녀에게는 혐오의 대상일 뿐이다. 결국 사비나는 그를 떠난다. 하지만 프란츠는 뜻밖의 해방감을 느끼며 그녀를 따라오지 않는다.

그녀의 삶은 가볍다. 토마시처럼 그래야만 하는 무거움으로 자신을 쫒아오는 이가 없는 가벼운 삶이다. 사비나는 토마시의 아들을 통해 토마시와 테레자가 오래도록 함께였으며 함께 죽음을 맞이했음을 알게 되고 프란츠가 그리워진다. 함께 더 오래 있었다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자신의 가벼운 삶이, 가벼운 존재가 그녀는 참을 수 없게 짓누른다.

많은 이들이 고전이라 칭하는 작품이지만 그 의미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스토리의 전개가 빠르고, 누구 하나 배제하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어 개운함이 느껴진다.

여러 번 곱씹어가며 읽으니 이전에 눈치 채지 못했던 의미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 고전은 여러 번 읽어야 진가를 알 수 있다는 말이 공감 가는 작품이다. 용기 있는 당신, 도전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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