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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000달러 세관 적발시 파면... 총수는요?"

[입 열기 시작한 대한항공 직원들 ①] 그들은 '돈 안 줘도 다닌다'던 회사에 왜 등 돌렸나

등록|2018.04.23 17:02 수정|2018.05.02 17:27
대한항공 직원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 이른바 땅콩회항 사태와 2018년 물세례 갑질 사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내부 직원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몇차례에 걸쳐 그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편집자말]

▲ 조현민 대한항공 광고담당 전무의 이른바 '물벼락 갑질'을 수사하는 경찰이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19일 오후 대한항공 직원들이 본가건물에 출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정도 일 줄은 몰랐어요."

지난 20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대한항공 현직 승무원 2명은 최근 터져나오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관세 탈루(밀수) 의혹에 대해 기자가 묻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직원들에게는 '주간 중점 강조사항'으로 "세관 규정 준수"를 외치던 회사였다. 이들이 건네준 대한항공의 '승무원 해외 출입국 시 물품 구매 한도 및 처벌규정'이란 대한항공 내부 문건에는 미화로 1000달러 이상 초과 구매 적발 시에는 가차 없이 파면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10년차 이상된 스튜어디스다. 대한항공 스튜어디스 - 선망의 직장이다. 처음 유니폼을 입고 출근하게 된 날을 A씨는 "너무 애사심이 넘쳐서 돈 안 줘도 다닌다고 들어왔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고 한다. 총수 일가의 입에 들어갈 복숭아랑 망고 정도를 실어 나른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닭도 아닌데 달걀을 품고 비행을 했다는 동료도 있다고 했다. 총수 일가가 먹을 달걀인데 깨지면 안 되니까 그랬단다.

수도권의 한 도시에서 만난 승무원들은 언론에 나서기까지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한명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두명 모두 신변 비공개를 신신당부했다. 이렇게 해서라도 나서야 하는 이유를 그들은 "이렇게 안 하면 안 바뀔 거 같아서"라고 답했다.

승무원 자살까지 불러온 '쇼트'

승무원들은 '쇼트' 이야기를 꺼냈다. 일반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 쇼트는 부족분을 뜻하는 영어 '쇼티지(Shortage)'에서 따온 말이다. 기내에서 면세품을 판매한 뒤 정산 과정에서 판매액수와 실제 금액이 다를 때 발생하는 부족분을 뜻하는 말이다.

문제는 10번 비행하면 3~4번꼴로는 난다는 쇼트를 승무원들이 주머니를 털어서 메워 넣어야 한다는 데 있다.

그게 몇 달러 수준일 수도 있지만, 많으면 몇백 달러 수준일 수도 있다. 이걸 개인이 오롯이 부담할 때도 있고, 몫을 나누어 공동으로 부담하기도 한다고 했다. 특히 승무원들끼리 돌아가며 면세품 판매 책임을 맡는 '세일즈 듀티'에게는 더 큰 부담이 된다.

CCTV가 없는 기내에서는 승무원의 증언이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하는 사실상의 유일한 증거다. 이의 신청서를 내는 방법이 있지만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B씨는 "쇼트가 나면 받는 심적 부담이 크다"라고 말했다. 지난 2012년에는 새내기 대한항공 승무원이 쇼트에 대한 부담감을 호소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직원들에게는 '자비 없음' 강조했던 조양호 회장

어쩌면 회사 내부에서 해결 가능한 일로 보일 수 있는 이 문제를 언론에 들고 나오겠다고 결심한 배경은 회사의 분위기와도 관련 있었다. B씨는 "저희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면서 "오픈 플라자(사내 익명 게시판)에 힘들다고 올려도 사측은 반영해주는 거 같지 않다"고 말했다.

만성이 된 인력 부족을 호소해도, 무리한 비행 스케줄을 하소연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데 이들은 지쳐가고 있었다. 승무원들은 과도한 업무에 가장 중요한 임무인 기내 안전이 뒤로 밀린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승무원인 동시에 기내의 안전을 책임지는 특별사법경찰관이기도 하다.

이들은 그나마 여론의 관심이 쏠려있는 지금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B씨는 "이렇게까지 했는데 똑같으면 못 버틸 거 같다"라고 말했다.

직원들은 이번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어쩌면 조양호 회장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직원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조 회장이 내부 게시판에 강조한 건 'NO MERCY(자비 없음)'였다고 한다.

한편 대한항공 측은 내부직원들의 쇼트 관련 문제제기에 대해 "승무원이 잘못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으면 회사가 부담한다"면서 "무조건 승무원에게 부담을 지우는 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입 열기 시작한 대한항공 직원들 ②] 대한항공 직원 "내부게시판 여론조작 지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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