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버킷리스트는 '강원국 글쓰기 학교'
[강원국의 글쓰기 18] 글쓰기 동기 부여법
글쓰기 강의하고 들은 평가 중 가장 기분 좋은 말은 "강의 듣고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다. 이는 내가 강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의로 글쓰기를 가르칠 수는 없다. 책도 마찬가지다. 다만 글 쓸 용기와 자신감, 쓰고 싶은 의욕을 불러일으켜 줄 뿐이다.
나는 쉽게 중독되는 편이다. 가장 최근에 경험한 중독은 블로그에 글 쓰는 것이었다. 거의 집착에 가까웠다. 하루라도 포스팅하지 않으면 초조하고 불안했다. 심리적 의존과 남용이 대표적 중독 증상이라고 하는데, 내가 딱 그랬다. 그러나 내게 블로그 포스팅은 매일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이기도 했다. 계기, 동기, 환경이란 세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블로그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매일 글을 쓰게 된 계기였다. 중독은 삶의 균형을 깨뜨린다고 하는데, 블로그 포스팅은 오히려 매일 글을 쓰게 하는 동기 부여 장치가 됐다. 블로그 이웃에게 내 글을 보여주는 것이 강력한 동기가 됐고, 이것은 다시 글을 쓸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작용했다.
글을 쓰려면 잘 쓰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계기가 필요하다. 글쓰기 책을 읽고 강연을 듣거나, 좋은 글을 읽다 보면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혹은 사랑하는 연인이 생겨 절절한 구애 편지를 써야 한다든가, 꼭 들어가고 싶은 직장에 제출하는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는 경우도 계기가 된다. 글을 잘 쓰고 싶은 동기를 부여받은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런 의도, 의욕, 욕구를 갖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지 차이다.
자본주의 경전이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도 두 가지가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다. 그 하나는 여행과 친교라는 계기다. 애덤 스미스는 공작 자제의 가정교사가 돼 유럽 각지를 여행하는 기회를 얻었다. 3년 동안 세상 곳곳을 돌아보며 견문을 넓혔다. 또 중농주의로 유명한 프랑수아 케네를 비롯해 당대 지식인들과도 교류했다. 이 여행이 국부론을 쓰는 계기가 됐다.
다른 하나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배려다. 스미스는 부자 편이 아니었다. 국가의 부와 모든 가치는 노동에 의해 생산된다고 주장했고, 부자의 탐욕은 사회가 허용하는 규범과 도덕의 한계 안에서만 용인했다. 부자들의 이기적 욕망으로 인해 가격이 무제한 오르지 못하도록 보이지 않는 손이 제어해줄 것으로 믿었고, 자유무역 역시 약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봤다. 이러한 계기와 동기가 <국부론>을 집필하게 했다.
글쓰기 동기에는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가 있다. 내적 동기는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외적 동기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것이다. 내적 동기가 바람직하지만, 내공이 있지 않고는 이를 갖추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외적 동기라도 꾸준히 자극해야 한다. 방법은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보여주는 것을 즐겨야 한다. 보여주기 위해 더 잘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
인지심리학에서 말하는 접근동기와 회피동기란 개념도 있다. 접근동기는 좋은 상황을 상상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회피동기는 나쁜 상황을 예상하고 이를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칭찬받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접근동기에서 비롯된 행위이고, 혼나지 않기 위해 쓰는 것은 회피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접근동기로 쓰는 사람은 '이것을 왜 써야 하는지' 목적과 이유를 생각한다. 회피동기로 쓰는 사람은 '여기에서 어떻게 벗어날까'를 생각한다. 접근동기의 경우 성취에 이르렀을 때 행복감을 느끼고 실패하면 슬픔을 느낀다. 반면 회피동기는 성취했을 때 안도하고 실패하면 불안을 느낀다.
청와대나 기업에서 글을 쓸 때 회피동기에서 썼다. 못 쓰면 대형사고이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기 위해 밤새도록 두려움 속에서 썼다. 무난하게 넘어가면 안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접근동기에서 쓰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글을 쓰지 못했던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 회피동기나마 있었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글에는 쓰고 싶은 글과 써야 하는 글이 있다. 쓰고 싶은 글을 쓰는 데에는 접근동기가 필요하다. 즉 칭찬이 동기 부여를 한다. 쓰기 싫은데 써야 하는 글은 회피동기가 필요하다. 지적받지 않겠다는 생각이 동기를 부여한다. 책 집필과 같이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글은 접근동기로 써야 한다. 독자에게 호평 받는 상황을 그리면서 쓰는 것이다. 급하게 써야 하는 글은 회피동기로 써야 한다. 쓰지 못했을 때 듣게 될 꾸중을 겁내면서 쓰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뇌가 위기감을 갖고 집중한다. 이 밖에도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글은 접근동기, 몰입을 통해 해결책을 찾는 글은 회피동기를 자극하는 것이 좋다.
강력한 동기가 오늘도 나를 쓰게 한다
나는 접근동기로 글을 써야 한다고 믿는다. 못 쓰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쓰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써야 한다. 그러자면 다섯 가지 접근동기가 필요하다. 먼저,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다. 이기적인 글쓰기를 해야 한다. 내가 재밌고, 나에게 유용하고, 스스로 감동해야 남에게 줄 게 생긴다. 독자를 위해서만 쓰는 글은 쉬 지친다.
내가 쓰는 글이 나에게 어떤 유익을 줄 수 있는지 따져봐라. 어떤 글을 써야 내게 도움이 되는지, 나의 미래를 밝혀줄 것인지 찾아봐라. 찾아낸 바로 그것을 써라. 그래야 신바람이 나서 쓸 수 있다. 자료도 찾고, 사람들 얘기도 듣고, 유심히 관찰한다. 내가 쓰는 글이 내 밥벌이와 연관되면 더 좋다. 그것이 가장 강력한 글쓰기 동기부여다. 그런 사람은 독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독자의 좋은 반응을 얻기 위해 자신을 들볶거나 애면글면 않는다.
두 번째는 보상이다. 나는 기고 원고를 쓰고 나면 막걸리를 한 통씩 마신다. 나의 뇌는 막걸리를 마실 수 있다는 기대로 쓴다. 고된 일을 하는 농부들이 새참을 먹는 것과 같다. 술이 아니더라도 보상할 방법은 많다. 글 쓰고 나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보상은 글이라는 결과물이다. 쓰다 보면 결과물이 나오고, 이것이 보상이 된다. 보상은 다시 쓸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
세 번째는 모방이다. 많은 사람이 글쓰기에 관해 이중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글이라는 것을 평생 써왔기 때문에 글쓰기에 관해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잘 썼다, 못 썼다 평하면서 잘 쓰는 사람을 무시하려 든다. 동시에, 글쓰기가 두려워 글을 멀리한다. 그러면서 글쓰기는 부질없는 짓이라며 폄하한다. 여우가 높은 나무에 있는 포도를 따 먹지 못하자 그 포도를 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글쓰기의 가치를 깎아내린다. 그래서는 잘 쓸 수 없다.
글을 잘 쓰려면 쓰기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글쓰기는 유익하다, 글은 많은 문제를 해결해준다, 나도 글을 잘 쓰고 싶다, 그러기 위해 잘 쓰는 사람을 닮고 싶다는 간절한 욕구가 필요하다. 그것이 글 쓰는 동기가 된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필사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베껴 쓰다 보면 그 작가처럼 쓰고 싶다는 의욕이 샘솟는다.
네 번째는 성장이다. 글을 쓰지 않고는 나의 성장을 확인할 길이 없다. 어제보다 나아진 오늘의 나를 알 수 없고, 오늘보다 나아질 내일의 나를 기대할 수 없다. 글을 써야 내 생각, 내 감정이 얼마나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그것을 앎으로써 글을 쓰고 싶고 지속적으로 쓰게 된다.
마지막 동기는 글을 잘 쓰면 멋있다는 점이다. 누구나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멋있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물론 멋진 글을 쓴 사람이 멋있다. 그러나 멋진 글을 쓰는 사람만 멋있는 것은 아니다. 글쓰기에 몰두해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보다 아름답다. 글 쓸 때 가슴이 뛴다는 사람도 멋있다. 장차 소설가를 꿈꾸며 시인을 꿈꾸며 글 쓰고 있는 사람은 아름답다. 그가 지금 어느 수준의 글을 쓰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쓰고 있는 것 자체로 이미 멋있다. 글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사람은 아름다움을 넘어 위대하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책에서 네 가지 글쓰기 동기를 얘기한다.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이 바로 그것이다. 나를 과시하기 위해서, 멋진 글을 쓰고 싶어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책무 때문에, 그리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다. 그 자신은 정치적 목적이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라고 했다.
나에게도 글쓰기 버킷리스트가 있다. 세 가지다. 첫째는 유시민 작가보다 글을 잘 쓰진 못하겠지만, 글쓰기에 관해선 그보다 더 잘 가르친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둘째는 글쓰기 관련 책을 열 권 정도 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원국'이란 이름이 붙은 상설 글쓰기 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강력한 동기가 오늘도 나를 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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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글쓰기'는 3월 26일부터 매주 월·수·금 <오마이뉴스>에 연재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