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검을 과연 '비파형동검'이라 하는 게 알맞을까?
[차근차근 한국미술사 2] 비파형동검과 깃털동검과 불꽃동검
▲ 경북 영덕시 장륙사 대웅전 벽화주악천녀(奏樂天女)가 당비파를 연주하고 있다. 당비파는 넉 줄 현에 목이 뒤로 굽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늘 여자가 왼손(이 천녀는 왼손잡이다)에 달목(撥木 튀길발·나무목)을 쥐고 연주하고 있다. 발목은 술대인데, 상아나 물소뿔로 만든다. 발목은 원래 이렇게 쥐지 않는데 그것을 잘 보이게 하려고 일부러 이런 모습으로 그린 것 같다. 얼굴은 여자이지만 허리가 잘록하지 않고, 몸이 남성 느낌이 난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요령식동검'에서 '비파형동검'으로
비파형동검은 중국 동북 지역 랴오닝성(遼寧省)과 지린성(吉林省), 우리나라에서 나오고 있고 지금까지 한 60점 남짓 나왔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나오지 않고 주로 중국 랴오닝성에서 많이 나왔다. 그래서 일본 고고학자들은 '요령식(遼寧式)동검'이라 이름을 붙였다. 물론 지금도 이렇게 일컫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일컬으면 이 동검이 마치 중국의 청동 기술로 만든 검 같은 느낌을 준다. 더구나 청동기 시대 랴오닝 지방은 고조선 땅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청동기 유물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주로 '비파형동검'이라 하고 있다.
▲ 청동기 시대 무덤에서 나온 껴묻거리충남 부여 초촌면 송국리 유적에서 나옴. 맨 왼쪽에 있는 것이 비파형동검이고 그 오른쪽에 돌화살촉과 돌검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아래는 ‘굽은옥’(용의 원시 형상)과 옥으로 만든 원통 모양 치레거리다. 이 치레거레를 줄에 꿰면 목걸이가 된다. ⓒ 국립중앙박물관
▲ 중국식 동검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상림리에서 나옴. ‘도씨검(桃氏劍)’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중국의 고대 과학책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 편에 있는 구절 ‘도씨위검(桃氏爲劍)’에서 왔다. 이 검은 춘춘 시대 전기(기원전 6세기 후반)부터 후한 때까지 쓴 검으로, 칼 몸과 손잡이가 하나로 되어 있어 한 손으로 쥐고 싸우기에 아주 편하게 되어 있다. 이런 중국식 검은 중국에서 들어온 것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비슷하게 만든 것도 있다. ⓒ 국립전주박물관
초등학생들에게 비파형동검 사진을 보여주고, 만약 자신이 역사학자라면 이 동검 이름을 무엇으로 짓고 싶은지 써 보라 했다. 김민서(광주 일곡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역사학자라면 '깃털동검'이라 이름을 지을 것이다. 이유는,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새를 '신의 사자'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니 새의 깃털 모양을 본떠 이 동검을 만들지 않았을까, 나는 생각한다."
민서의 의견은 일리가 있다. 청동기 시대 유물에는 새 문양이 많고, 그것은 이 유물의 주인이 신의 대리인이라는 것을 뜻한다. 더구나 세형동검 슴베 바로 위에 새 문양이 새겨져 있다.
▲ 세형동검의 날아가는 새슴베 바로 위를 보면 날개를 살짝 접고 쏜살같이 날아가는 새를 볼 수 있다. 새 문양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검의 주인은 틀림없이 신의 사자인 제사장이었을 것이다. ⓒ 김찬곤
또 한 어린이는 '물방울동검'이라 했다. 물방울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느린 화면으로 보면 이렇게 보인다고 한다. 맨눈으로는 볼 수 없다고 하니, 청동기인 가운데 눈이 아주 밝은 사람도 있을 것 아니냐고 한다. 이 어린이 주장도 일리가 있다. 아마 당시 눈이 아주 밝은 청동기인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양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비파형동검보다는 '불꽃동검'이나 '새싹동검'이라 하면 좋겠다고 했다. 깃털동검, 물방울동검, 불꽃동검, 새싹동검은 비파형동검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또 당시 청동기인의 마음에 더 가까이 가 있는 이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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