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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잔 건 아닌데, 잔 것도 아닌 잠은?

서단님의 <육아시집>을 읽었습니다

등록|2018.05.02 15:14 수정|2018.05.02 15:14
재미있는 시집이 있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일상을 솔직하게 적은 시집입니다. 육아는 분명 힘든 일이고 책 내용을 봐도 어려운 일인데 시집을 읽다보면 왠지 모를 웃음이 계속 나옵니다.

저는 남자고 아빱니다. 저도 아이를 키울 때 아내와 싸운 적이 있습니다. 아내를 원망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와서 힘든 데, 집에서 조차 뭐라고 하니 짜증났을 때도 있었습니다. 이 시집을 읽고 나선 아내가 위대해 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집은 아빠들이 읽어야 하는 시집입니다.

▲ 책표지/서단/띠앗/2017.8.10/7,000원 ⓒ 김용만


"와 진짜 완전 웃긴다. 정말 이래요. 속이 다 시원하네. 나도 이때, 진짜 이랬어. 이 책 누가 쓴 거예요?"

시집을 직장 동료 분들에게 읽어보라고 줬습니다. 보시는 분들의 반응입니다. 어떤 분은 웃는다고 일을 못하겠다고 하시더군요. 사무실 한 켠에선 키득키득 하는 웃음소리가 계속 들립니다. 무슨 일인지 가봤다니 이 책을 읽고 계셨습니다.

"진짜 그리 재밌어요? 공감돼요?"
"진짜 공감 100%예요. 나도 애가 좀 컸는데, 딱 이 마음이었어요. 정말 재밌네요. 다른 분들께 사서 선물하고 싶어요."
"이 책을 읽으니 처음엔 웃는다고 눈물이 났다가 뒤에는 우리 엄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네요.  정말 이 책을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의 즉석 평들입니다. 한결같이 왕추천이라고 하시더군요. 서단님은 이 책이 첫 번째 책이라고 하십니다. 첫 아이를 키우며 생긴 일을 시로 표현했습니다. 서단 시인은 특별한 분이 아닙니다. 이웃집의 흔한 엄마입니다. 시인의 말입니다.

아이는 참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육아는 정말 힘들 때가 많지요.
아이는 환희와 좌절을 동시에 안겨주는 존재 같아요.

외롭고 지칠 때
육아시가
작은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시를 읽다
웃음이 나와
웃는 얼굴로
아이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를 읽다
가슴이 뭉클해서
따뜻한 눈빛으로
아이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육아시집>은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아기는 보살님, 2부 엄마의 마음으로, 3부 남편이라는 자, 4부 친정 가는 길에서, 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정말 재밌습니다. 읽다보면 공감이 되며 웃음이 터집니다. 평범한 일상을 이렇게 재미있게 쓸 수 있구나 싶습니다.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이게 맞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리고 <육아시집>은 구성이 특별합니다. 시가 있고 제일 아랫줄에 제목이 있습니다. 시와 제목의 조화가 또 한번 웃음을 줍니다. 몇 작품을 소개합니다.

요즘
우리 집을 평정하는
한마디
<응애>
집착할수록
동굴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아기 코딱지>
안아 올리자마자
끅 트림이 나오고

울다가
톡 왕코딱지가 빠지고

손가락 물고
스르르 잠이 들고
<운수 좋은 날>
안 잔 건 아닌데
잔 것도 아니다.
<아기 엄마의 잠>
아기 낳기 전에는
감이 안 오고
아기 낳고는
볼 시간이 없다.
<육아서>


시 한 편 한 편이 너무 재미있고 유쾌합니다. 속이 시원한 부분도 있고 눈물이 나는 부분도 있습니다. '어찌 보면 피곤하고 힘든 일을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풀어 쓸 수 있구나. 이게 바로 시인이구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솔직한 마음 같아서는 시집 전체 내용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접어두겠습니다. 도서출판 띠앗의 <육아시집>, 직접 사서 읽어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 나요미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서단님 ⓒ 김용만


서단님과 연락이 되었습니다. 궁금했던 점들에 대해 여쭈었습니다.

- <육아시집>을 쓰신 계기가 있다면요?
"육아 카페와 SNS에 육아 시를 써서 올렸는데 호응이 좋았어요. 다들 육아 시가 재미있고 감동적이라고 해 주셔서 신나서 쓰다 보니 꽤 많이 썼더라고요. 책 내라는 분들도 계셨고요. 육아일기를 책으로 내고 싶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는데 <육아시집>을 통해서 꿈을 이룬 셈이네요.

제 이름으로 된 책을 꼭 내고 싶었어요. 아이에게는 엄마, 아빠가 너를 이렇게 아끼고 사랑했었다, 너를 이렇게 키웠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책은 딸아이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해요. 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함께 보며 웃고 위로받을 수 있으면 더 좋겠다 싶어서 <육아시집>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 서평을 찾아보니 같이 울고, 같이 웃었다며 엄마들의 평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시 자체도 상당히 읽고 이해하기 쉽습니다. 의도한 것인가요?
"의도했다기 보다는 아이를 키우면서 관찰한 것, 생각한 것, 느낀 것들을 그때 그때 메모해서 시를 쓰다보니 아이 키우는 분들이 많이 공감하시는 것 같아요.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고 생각했던 일이니까요. 육아의 보편성이랄까요?"

- 시집이라고 하면 왠지 모를 우아함, 아름다운 문장을 써야 한다는 느낌이 있는데 이 시집은 우아함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진짜 일상을 여과 없이 옮긴 것 같은데요. 영향을 받은 게 있다면요?
"삶이 드러난 시, 나만이 쓸 수 있는 시, 쉬운 말로 쓴 시, 누구에게나 공감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었어요. 그런 시가 좋은 시라고 이오덕 선생님과 그 제자분들의 책에서 배웠어요."

- 육아시집 이후 다음 책 출간 계획은 있으신가요?
"딸과의 마주 이야기(마주보며 나눴던 이야기), 엄마의 마음 일기를 꾸준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이 둘을 잘 버무려서 책을 내고 싶네요."

- 육아생활을 하고 있을 엄마, 아빠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다들 아이 키우느라 고생이 많으시죠? 저는 애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든지 정말 몰랐어요. 물론 행복한 날이 훨씬 많았지만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은 날도 있었어요. 아이에게 화를 내고는 나한테 더 화가 나고 좌절할 때도 종종 있었고요. 엄마, 아빠란 말이 참 무겁지만, 우리 함께 아이들을 잘 키워보아요. 아이 키우는 모든 분을 응원합니다. 화이팅!"

- 독자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아이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어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믿을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저도 나요미를 위해,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기 위해 열심히 살 겁니다."

이 시집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누구를 위해 내셨는지 궁금했습니다. 의문은 마지막 시를 읽으며 해결되었습니다.

위대한 여신들!
<엄마>


서단님은, 시는 본인을 위해 쓰셨고 시집은 엄마들을 위해 내신 것 같습니다.

▲ 좋은 날, 나요미 업고 동네 산책하는 서단님 ⓒ 김용만


저절로 자라는 아이는 없다고 하지만 그냥 엄마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분은 말씀하십니다. '육아를 힘들다고 생각하는 순간, 분란이 시작된다. 육아는 힘든 것이 아니고 당연한 것이다.' 저는 이 말에는 공감하지만 육아를 엄마들만 해야 할 일이라고 하면 동의하기 힘듭니다. 육아는 엄마들만의 일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일입니다. 저는 이 시집을 읽으며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내에게 존경의 마음이 생겼습니다.

엄마들은 이 책을 읽으며 공감받는 여유를 느낄 것이고, 아빠들은 이 책을 보며 아내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저희 어머님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르는 엄마들의 마음을 잘 표현한 시집입니다.

육아는 힘든 일일 수도 있지만 감동스러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육아가 궁금하신가요? 서단님의 <육아시집>을 추천합니다.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지만, 엄마의 마음도 알아야 하는 귀한 일입니다.
덧붙이는 글 개인블로그(김용만의 함께 사는 세상)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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