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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가 아직 살아있는 공간인 이유

처음 가본 세계문화유산 종묘... 아직도 1년에 2차례 제사 지내

등록|2018.05.04 14:22 수정|2018.05.04 14:23
경복궁은 널따란 광화문 광장을 앞에 두고 자리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이 궁궐을 호위하듯 서 있고, 그 뒤로는 세종대왕 동상이 궁궐의 위엄을 알리듯 의자에 앉아 있다. 이렇게 두 동상을 지나면 나타나는 문화재가 경복궁이다. 그 일대의 땅이 경복궁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종묘는 조금 다르다.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와 근대 역사의 산물인 세운상가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그리고 그 일대에는 서민들이 사랑하여 자주 찾는 광장시장이 있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 데다가 버스에서 내리더라도 종묘 입구까지 걸어가려면 그 거리가 상당하다. 마음먹고 가지 않는 이상 쉽게 눈에 띄지 않는 문화재이다.

서울에서 3년 이상을 살면서 한 번도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못하던 필자도 며칠 전에야 종묘를 방문했다. 큰 기대 없이 방문한 그 공간은 기대 이상이었다. 일단 다른 문화재와 달리 무조건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이동해야 한다는 점이 신의 한수였다. 사람들이 종묘에 무관심한 이유는 종묘의 의미와 그에 얽힌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인데, 해설사의 자세한 설명이 이를 불식시킨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종묘' 하면 가로로 긴 건물 한 채만 떠올린다. 그게 아니다. 궁궐처럼 넓은 부지에 각종 건물이 모여 있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 건물은 정전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종묘의 중심 건물이다. 건물마다 제사 준비, 왕의 대기 장소 등 그 역할도 다르다.

입장권을 끊고 종묘에 들어가면 바로 길 하나가 보인다. 흙길 위에 돌길이 있는데, 세 개의 길 중에 가운데 부분만 높이가 약간 올라와 있다. 해설사는 그 길이 신로라고 했다. 조상들의 영혼이 그 신로를 따라 다닌다고 여겨서 관람할 때 최대한 신로는 걷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신로의 존재가 종묘의 공간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어준다.

종묘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나면 종묘가 나타난다. 자세한 높이는 모르지만 허리춤을 넘을 정도로 돌을 쌓아올려 땅의 높이를 높였다. 종묘는 높이를 올린 그 땅 위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종묘를 편하게 바라보는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올려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 왕들의 신주를 모신 공간인 만큼 입구에서부터 건물의 위용이 느껴진다.

▲ 정전의 모습 ⓒ 서예원


게다가 정전은 실제로 보면 사진으로 보던 이미지와 딴판이다. 사진으로 봤을 때 왜 그렇게 소박하고 단출해 보였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건물의 가로 길이가 너무나 길다. 건물의 왼쪽에서 오른쪽까지 몇 초 만에 단 번에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정전이 가로로 끝없이 길어진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증축했기 때문인데, 종묘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한다. 가까이서 보지 않는 한 절대로 증축한 티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크기만 웅장한 게 아니라 건물 자체가 주는 위엄도 대단하다. 그 모든 게 사진 한 장에 담기지 않는다.

설명에 의하면 우리가 외우고 있는 조선 왕들이 모두 그 공간에 모셔져 있는 건 아니고, 후손들에 의해 업적이 인정받은 왕들만 정전에 신주를 모셨다고 한다. 업적을 인정받지 못한 왕들은 정전 옆에 있는 영녕전 건물에 모셨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업적을 인정받은 왕들에게는 존경하다는 말을, 인정받지 못한 왕들에게는 그래도 감사하다는 말을 조용히 마음속으로 표현했다.

신기했던 점도 있다. 사도세자의 신주도 모시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도세자는 후손들에 의해 장조로 추존되어 그 안에 신주를 모셨으며, 정전의 마지막 칸에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영친왕을 모셨다고 했다. 설명을 들으니 문화재를 보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헛말이 아니었다.

많은 설명을 들었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아 곱씹어보는 설명이 있다.

"궁궐은 빈 공간이지만, 종묘는 아직도 제사를 지내고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공간이다."

깊이 공감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종묘 건물인 정전은 최대한 멀리서 찍거나 대각선으로 사진을 찍다 보니 건물의 위용이 온전히 사진 한 장에 담기지 않는다. 정전의 실제 위용을 보고 싶다면 꼭 직접 방문하길 권한다. 사진 이상의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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