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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 외국인 선수 지명, '뜻밖 횡재'에 웃은 두 감독

서남원, 간절했던 알레나 지명... 이정철, '생각도 못한' 어나이 낙점

등록|2018.05.08 10:52 수정|2018.05.08 10:52

▲ 어나이(23세·188cm)와 알레나(29세·190cm)... 2018~2019시즌 V리그 트라이아웃에서 각각 IBK기업은행과 KGC인삼공사에 지명된 선수들이다. ⓒ KOVO


'과연 기회가 올까.' 추첨기에 구슬이 들어간 순간부터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더 활짝 웃을 수 있었다. 지난 6일 새벽(한국시간) 프로배구 두 감독은 그랬다. 서남원 KGC인삼공사 감독과 이정철 IBK기업은행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이날 한국배구연맹(KOVO)은 이탈리아 몬차에서 2018~2019시즌 V리그 여자배구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공개 선발 드래프트)을 실시했다. 방식은 확률 추첨이다. 총 120개 구슬을 2017~2018시즌 V리그 최종 순위의 역순에 따라 6개 구단에 차등 배분한다. 그리고 추첨기를 통해 구슬이 나오는 순서대로 선수를 지명한다.

챔피언결정전 우승 팀인 한국도로공사가 10개로 가장 적은 구슬을 받았고, 준우승 팀 IBK기업은행(14개), 3위 현대건설(18개), 4위 GS칼텍스(22개), 5위 KGC인삼공사(26개), 6위 흥국생명(30개) 순으로 구슬이 배분됐다. 확률상으로는 흥국생명부터 역순으로 상위 순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서남원 감독은 1순위가 나오면 무조건 알레나(29세·190cm)를 뽑기로 공언한 상태였다. 문제는 과연 그럴 기회가 올 수 있을지였다. 구슬 수가 많은 흥국생명이 1순위 지명권을 획득할 경우 사실상 물 건너 가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구단이 '1순위가 되면 알레나를 지명할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회자된 상태였다.

서 감독은 알레나를 뽑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다른 제2, 제3의 후보군에 더 집중해서 관찰했다. 그러나 추첨 결과 인삼공사의 구슬이 가장 먼저 나왔다. 서 감독은 주저 없이 알레나를 지명했다. 최상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된 것이다.

'최상의 결과' 서남원·알레나 "기쁘고 행복하다"

▲ "이렇게 좋을 수가"... 알레나 선수와 서남원 감독 ⓒ KOVO


이로써 알레나는 3시즌 연속 인삼공사에서 뛰게 됐다. 트라이아웃에서 2년 연속 낙방의 불운을 겪은 알레나는 2016~2017시즌을 앞두고 대체 외국인 선수로 천신만고 끝에 V리그에 입성했다.

그러나 알레나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흙 속의 진주'였다. 2016~2017, 2017~2018시즌 2년 연속 V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맹활약했다. 메디(IBK기업은행)와 함께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등극했다. 2년 연속 최하위였던 인삼공사가 2016~2017시즌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중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알레나의 존재가 절대적이었다. 팀을 위해 헌신하는 인성까지 높은 평가를 받았다. 보는 이들을 늘 웃게 만드는 알레나는 배구팬들에게도 인기 만점이었다.

특히 인삼공사가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데 알레나의 합류는 '절실함' 자체였다. 오는 5월 10일 마감되는 여자배구 FA 1차 계약을 앞두고, 주전 센터인 한수지의 이적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FA 최대어 이소영을 영입하기로 방침을 정했지만, 이소영이 조기에 GS칼텍스 잔류를 선택하면서 일찌감치 무산됐다. 전력 약화가 크게 우려되는 상황에서 알레나 재합류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다름없다.

알레나를 지명한 뒤, 서 감독은 마치 큰 산을 넘은 것처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알레나도 언론 인터뷰에서 "인삼공사에서 또 뛰게 돼 행복하다. 대전은 제2의 고향이라서 기쁘다"고 환하게 웃었다. 그는 "서남원 감독님이 나를 지명했을 때 정말 울 정도로 기뻤다"며 "인삼공사가 1순위로 나왔는데도 나를 안 뽑았다면 놀랐을 것 같다. 남은 시간 헝가리에 머물면서 잘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어나이·헤일리 모두 남아, '긴급 타임' 요청

▲ 어나이에게 IBK기업은행 유니폼을 입혀주는 이정철 감독 ⓒ KOVO


이정철 IBK기업은행 감독도 예상치 못한 수확을 거두었다. 이 감독도 막판까지 마음을 졸였다. 구슬 추첨 확률상 맨 꼴찌 순위(6순위)가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드래프트 직전 기자와 한 SNS 인터뷰에서 "톰시아, 어나이, 헤일리가 가장 좋아 보인다"며 "문제는 우리가 후 순위가 될 가능성이 높아서 3명 중 한 명도 못 뽑을 수 있다. 그래서 그 다음 순번으로 누구를 지명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밝혔다. 그는 "톰시아와 어나이는 거의 앞 순위에서 뽑힐 것 같고, 헤일리는 팀 사정에 따라 반반"이라고 전망했다.

구슬 추첨 결과 IBK기업은행은 우려대로 맨 꼴찌 순번이 됐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IBK기업은행보다 앞 순위인 팀들이 예상 밖의 선수를 지명한 것이다.

2순위 흥국생명은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톰시아(31세·188cm)를 지명했다. 그러나 3순위 GS칼텍스는 거의 거론되지 않았던 알리오나 마르티니우크(28세·186cm)를 깜짝 지명했다. 4순위 한국도로공사는 지난 시즌 도로공사에서 뛴 이바나(31세·191cm)와 재계약했다. 그리고 5순위 현대건설도 베키 페리(31세·190cm)를 지명했다.

결국 맨 마지막 IBK기업은행의 차례에 이 감독이 뽑고 싶었던 어도라 어나이(188cm·레프트)와 헤일리(199cm·라이트)가 동시에 남은 것이다. 이 감독은 즉시 진행 측에게 타임을 요청했다. 두 선수가 모두 남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이 감독은 어나이를 최종 낙점했다.

이 감독은 드래프트 종료 직후 기자에게 "붙박이 라이트인 헤일리로 가느냐, 레프트 비중이 큰 어나이로 가느냐를 가지고 고민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 감독의 선택은 사실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팀에 김희진이라는 국가대표 라이트 공격수가 있기 때문이다. 장신 공격수를 선호하는 이 감독도 헤일리를 선택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만약 헤일리만 남았다면, 헤일리가 다음 시즌 IBK기업은행 유니폼을 입었을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국내 배구팬들에게 인기가 높은 헤일리에게는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그렇게 또다시 V리그 복귀가 무산됐다.

'막판 탈락' 불운 헤일리... '제2의 메디' 기대주 어나이

▲ 미국 유망주 어나이(23세·IBK기업은행)... '제2의 메디'가 될 수 있을까. ⓒ KOVO


이 감독의 선택을 받은 어나이는 2018~2019 V리그 외국인 선수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유망주이다. 1996년생인 그는 레프트 공격수로서 신장(188cm)도 크다. 지난 시즌 메디는 184cm였다.

어나이는 V리그가 생애 첫 프로 무대 진출이다. 지난해까지 미국 대학 리그 강호인 유타(Utah) 대학의 주 공격수로 맹활약했다. 유타대 시절 3년 연속 500득점 이상을 기록했고, 지난해는 미국 대학 랭킹 1위에 올랐다.

몸의 균형이 잘 잡혀 있고, 공격력이 좋고 스윙 스피드가 빠른 게 특징이다. 서브 리시브 등 수비력도 갖추고 있다. 트라이아웃 신청자 중 레프트 포지션에서 가장 기량이 좋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 받기도 했다. V리그 6개 구단 감독들이 사전에 매긴 선호도에서도 2위를 차지했다.

어나이는 언론 인터뷰에서 "(IBK기업은행이) 훈련량이 정말 많은 팀인데, 나는 이미 준비가 돼 있다"며 "첫 프로 데뷔 무대라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이어 "감독님이 나의 향수병 걱정을 하셨는데, 새로운 환경과 기업은행 팀 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다"며 의지를 보였다.

이 감독은 "어나이를 붙박이 레프트로 기용할 예정"이라며 "잘 훈련하면 기량이 좋아질 수 있다. 만족할 수 있도록 준비를 잘 하겠다"고 화답했다.

외국인 성공, '지명 순위'와 무관... 경쟁은 시작됐다

이정철 감독의 선택이 주목을 끈 이유는 또 있다. 외국인 선수 부분에서 실패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장신 선수 발굴과 활용 면에서는 높은 안목을 자랑한다. 알레시아(196cm), 카리나(192cm), 데스티니(195cm), 맥마혼(198cm), 그리고 메디(184cm). 이 감독이 선택한 외국인 선수는 모두 뛰어난 활약을 했다. IBK기업은행이 6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오른 배경이기도 하다.

어나이가 이 감독의 조련 속에 어느 정도 성장하고 위력적인 모습을 보일지, 이 감독의 외국인 성공 시대가 계속 이어질지는 올 시즌 V리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지난 3시즌의 결과를 보면, 트라이아웃 지명 순위와 V리그에서 성공 여부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선수의 실제 기량과 팀 기여도가 감독들의 사전 선호도는 물론, 지명 순위와도 별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반대의 경우도 많았다. 낙방생이 다른 해외 리그에서 펄펄 난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이는 남녀 모두 동일했다. 결국 최종 평가는 V리그 경기에서 증명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외국인 선수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기량을 최대로 발휘하게 하는 데는 감독의 능력과 구단 프런트의 지원도 매우 중요하다. 과연 올 시즌 최고의 외국인 선수는 누가 될까. 경쟁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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