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가봤으면서, 조선 사람이 어떻게 아프리카를 그렸지?
[지도와 인간사]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강리도가 실린 까닭
▲ 스미소니안 책자강리도 혼코지本光寺 본 ⓒ 김선흥
안녕하세요. 오래된 질문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서양보다 훨씬 먼저 아프리카를 지도에 그리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 아프리카 지도는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이번 호의 탐험 과제입니다.
먼저 책 한 권을 소개한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 HISTORY of the WORLD in 1,000 OBJECTS강리도 수록 ⓒ 김선흥
2014년에 스미소니언이 출간한 <1000 개의 사물로 보는 역사> (Smithsonian HISTORY of the WORLD in 1000 OBJECTS)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기원전 2만 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기념비적인 문물 1000개를 통해 인류의 발자취를 시각적으로 살펴보는 기획물입니다. 인류의 창의성과 성취에 대한 시각적 축제(visual celebration of human ingenuity and achievement)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사물 중에서도 일부 '특대'의 대접을 받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각각 양면의 지면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문헌으로서는 로제타 석, 마그나카르타 헌장, 미국 최초 헌법 문서 등입니다.
우리나라의 문물 중에서는 조선 초 제작된 세계지도 강리도(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일본 혼코지 소장본)가 유일하게 '특대'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첫 번째 사진). 조선시대에 총 4쪽을 할애하고 있는데 그 중 절반인 두 페이지가 강리도에 대한 내용입니다.
강리도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유
이 책은 강리도를 포함하여 총 4장의 지도를 수록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비중 높게 다루어 지고 있는 지도는 강리도와 16세기 터키의 해군제독 피리 레이스(Piri Reis)가 만든 지도(아래 사진, 1929년 이스탄불 황궁에서 발견됨)입니다.
▲ 피리 레이스Piri Reis 지도16세기 터키의 세계지도 ⓒ 김선흥
강리도가 여기에서 이처럼 부각되어 있는 것은 우연도 아니고 예외도 아닙니다. 서양에서 유사한 저서나 글들은 일일이 예거하기 힘들 정도로 허다합니다. 근래에 나온 책으로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영국의 저명한 지리학자 제리 브로톤(Jerry Brotton)이 펴낸 <열두개의 지도로 본 세계 역사>(A History of the World in Twelve Maps, 2012)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고대로부터 현대 구글 지도에 이르기까지 가장 의미심장한 지도 12개를 수록하고 있는데 강리도가 그 중의 하나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원저 114-145쪽).
이 책은 강리도에 대해 그 동안 학계에서 축적된 연구 성과를 종합적이고 균형있게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 셀러로 선정된 이 책은 11개의 외국어로 번역되었으며(국내에서는 <욕망하는 지도>라는 이름으로 번역본이 나옴), 오스트리아에서는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강리도의 가치와 성가가 이를 통해 재확인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왜 강리도에 대한 인식이 국내외에서 이처럼 큰 괴리를 보이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다시금 갖게 됩니다. 국내 유일의 국사 사전 <새국사사전>(교학사)에는 강리도가 등재조차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예전에 지적한 바와 같습니다. 아무튼 필자가 연재하는 '지도와 인간사'가 이러한 괴리를 조금이나마 좁힐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제 아프리카에 주의를 집중해 보겟습니다. 프랑스어 서적 <아프리카 역사의 이해 Connaissances de l'histoire africaine>(Mahawa Kande, 2009)는 첫 머리에서 강리도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 <Connaissances de l'histoire africaine>24-25쪽 ⓒ <Connaissances de l'histo
"강리도는 1402년 한국에서 김사형, 이무, 이회에 의하여 제작되었다. 지도에는 상대적 위치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중국 제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서쪽으로는 아라비아 반도,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도 그려져 있는데 중국에 비해서 실제보다 작게 나타나 있다.
이 지도가 보여주는 아프리카의 실제 윤곽에 대한 이해는 포르투갈 항해가 바르톨로뮤 디아스나 바스코 다 가마 보다 앞서 동양인이 그 지역을 탐험했음을 말해 준다. 아프리카 남단 부분은 대체적으로 정확한 형태를 지녔고, 오렌지 강을 찾아 볼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도 찾아 볼 수 있다. 나아가 아랍어로 이집트를 의미하는 Misr가 중국어로 표기되어 있다." (이형은 번역 참고)
도대체 서양인들은 어떻게 우리보다 먼저 강리도의 가치를 알아 보았을까요? 특히 아프리카에 주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아프리카를 알고 있었지?
명품은 숨어 있어도 결국 알아 보는 사람을 만난다고 합니다. 서양에서 강리도를 맨 처음 주목한 학자는 독일인 발터 푹스(Walter Fuch)박사였습니다. 그는 일찍이 1946년에 강리도의 독보적 가치를 소개했습니다(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설명할 생각입니다).
놀랍게도 푹스 박사는 강리도가 당시의 모든 유럽과 아랍의 지도들을 무색케 해버린다(completely overshadowing)고 평했습니다. 당시 국내에서는 강리도가 알려지지도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강리도가 주목받게 되기까지는 푹스 박사의 평가로부터 30년이 지나야 했습니다. 1970년대에 이찬 교수(서울대 지리학과)에 의해서였으니까요.
우리는 이 대목에서 한 가지 흥미로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강리도를 바라보는 관점과 가치 평가에 있어서 우리와 서양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서양학자들을 가장 놀라게 한 대목은 중국도 아니고 한국도 아닙니다. 바로 유럽과 아프리카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아프리카입니다. 우리는 그 대목의 가치를 얼른 알아 보지 못했던 것이구요.
푹스 박사의 시선이 붙잡혔던 대목도 물론 아프리였습니다. 서양과 이슬람권 보다 훨씬 먼저 어떻게 동아시아의 지도에 아프리카의 올바른 모습이 그려질 수 있었는가? 이는 한 마디로 역사를 다시 쓰게 하는 수수께끼로 다가 온 것입니다. 실제로 서양 중심의 세계사가 근래 다시 쓰여지는 데에 강리도가 사료로 자주 등장하는 까닭입니다.
푹스 박사의 강리도에 대한 통찰은 동시대의 저명한 중국학 학자 조지프 니덤(Joseph Needham, 당시 영국 캠브리지 대학 교수)에 의해 계승 발전됩니다. 니덤 박사는 일찍이 1959년 <중국의 과학과 문명>(SCIENCE AND CIVILIZATION IN CHINA) 제 3권에서 6쪽에 걸쳐(551-556) 강리도의 탄생 배경과 가치에 대하여 논술하였습니다. 세기의 명저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이 저서를 통해 강리도가 비로소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세계학계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이지요.
니덤의 강리도론은 이 지도의 의미 조명 및 가치 평가에 있어서 굳건한 토대를 놓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지를 아주 간략히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강리도 상의 지리지식은 서양보다 훨씬 앞서고 광범위하다. 이러한 지리 지식은 원나라 시절 아랍, 페르시아인 그리고 투르크 인들과의 접촉에서 얻어진 것이 분명하다.
- 강리도의 아프리카는 올바른 삼각형 형태를 띠고 있고 정확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이는 중국에서 1315년부터 그려진 아프리카가 반영된 것이다.
- 반면에 14세기 서양과 아랍의 지도에서 아프리카 남단은 언제나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이러한 오류는 15세기 중엽까지도 수정되지 않았다.
- 푹스 박사는 강리도가 당시의 모든 유럽과 아랍의 지도들을 완전히 무색케해 버린다(completely overshadowing)고 보았는데 제대로 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강리도에 그려진 아프리카 지도의 모본(밑그림)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아니, 그게 전해져 내려 온다는 말일까요? 전해져 온다면 어디에서 찾아 볼 수 있을까요? 다음 지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다음 호에서 이어가겠습니다.
▲ <광여도>초판본 복간본 ⓒ 김선흥
▲ 고대 아프리카 지도<광여도> 수록 ⓒ 김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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