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만난 권총강도... 그놈이 외쳤다 "고마워"
2000년, 2008년 그리고 이틀 전... 멕시코에서 18년, 5번 만난 권총강도들
▲ 멕시코에서 만난 권총강도들. ⓒ sxc
[사건 ①] 2000년 10월 2일 8PM
어느 정도 시차가 적응되어 갈 무렵 아직 길도 잘 알지 못하는 나를 두고 친구이자 직장동료가 먼저 창고로 이동했고, 나는 당시로는 따끈따끈한 삼성 폴더폰을 하나 계약해서 쓰다듬으며 차를 몰고 반 시간 정도 후 회사 창고로 향했다.
대로에서 벗어나 창고로 들어가려고 우회전을 해 직진한 후 2, 3분이 지났을까(왕복 4차로의 도로는 텅 비었고 반대편에 작은마을 버스가 정차하고 있었다) 저 앞에 한 남자가 무단횡단을 시작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먼저 지나가라고 수신호를 보내자 갑자기 권총을 꺼내 들었다. 순간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가만히 있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강도는 침착하게 총구로 전면유리를 툭툭 치며 차 문을 열라고 종용한다.
저 총이 진짜일까 가짜일까, 액셀을 밟아서 지나가 버릴까, 옆에 미니버스도 있는데 도와주지 않을까... 등등의 벌어진 상황과 이성적인 판단이 뒤섞여 있을 때 다시 한번 총구로 앞 유리를 침과 동시에 양 옆으로 두 명의 공범이 달라붙었다. 운전석과 조수석의 손잡이를 끊임없이 달그락거린다. 문을 열자마자 가방, 지갑, 휴대폰, 탈·부착식 카오디오까지 가져가 버렸다. 아직 첫 통화도 못해본 휴대폰이었는데...
한참을 지나서 친구 부인이 출퇴근하던 길에서 무언가 찾았다며 가져왔다. 그날 잃어버렸던 지갑과 한국 돈, 가방을 길에 놓고 팔길래 헐값에 사왔다 했다. 물론 휴대폰과 멕시코 돈은 없었다.
[사건 ②] 2008년 토요일 오후
8년 후 토요일 오후였다. 마무리할 시간이 다 되어서 누군가 창고 문을 두들겼다. 내다보니 모르는 현지인이 지인의 소개로 왔다며 물건을 구매하러 왔다고 했다. 자주있는 일이라 별 의심없이 육중한 철문을 여는 순간 주위에 숨어있던 일당들과 같이 순식건에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바닥에 납작 엎드림을 당한 후 한 명이 '없어 없어(노 아이, 노 아이 나다)'라고 연신 외쳐댄다. 뒷목에 서늘한 총구가 한층 더 위협적으로 내리 눌러댄다. 정확하게 돈의 위치를 알고 들어온 공범들이었다. 로센도(얼마 전에 공금 횡령으로 잘린 놈이다)! 다행히 현금뭉치는 없었고 디카, 휴대폰, 약간의 돈을 가지고 달아났다. 회사를 그만둔 후에도 누군가가 창고에 같은 수법으로 들어왔고 사장 부인은 혼절할 정도까지 맞았으며 상당한 양의 물건을 탈취해갔다고 들었다.
[사건 ③] 2009년 어느날
1년 뒤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2003년 지인을 통해 인수한 빵집으로 인생의 바닥까지 내려가본 기억 때문에 사업에 대한 두려움이 어마어마했고, 커가는 아이들과 반비례하게 월급은 늘 마이너스였다. 빵집 인수를 통한 고통은 6년째 지속되고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신용불량, 가족들의 연계고통 등을 타개하기 위한 새로운 돌파구였다.
한가한 오후. 지루하다 할 때쯤 두 명의 젊은애들이 들어왔다. '살 것 같지 않은데'라는 판단이 서기 무섭게 한 명이 카운터 쪽으로 뛰어오며 옆으로 멘 사각 가방에서 총을 꺼낸다. 다른 한 명은 입구를 막아섰다. 순식간에 내 눈 앞에 와서 '디네로, 디네로(돈 돈)'를 연신 외쳐댄다. 메고있던 돈가방을 던지듯 쥐어 주고, 휴대폰, 묶어 놓은 랩탑까지 가져가기 좋게 칼로 끊어줬다. 남자가 6명이었지만 번쩍거리는 권총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는 허탈한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두 놈은 인파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 멕시코 자전거 ⓒ 김유보
[사건 ④] 2016년 퇴근길
2년 전이다. 멕시코에 자전거 바람이 불었다. 큰 길가에 나라에서 운영하는 무인 자전거 시스템이 구석구석 들어서고 넓지도 않은 도로 용적률을 줄여가며 자전거 도로가 들어섰다. 누가 봐도 배 나온 40대인데 아직도 세월을 인정하지 못하는 나는 자전거를 구매했다. 우기가 오기 전에 열심히 타서 자전거 구매 비용은 물론이고 뱃살까지 빼서 1석 2조의 야심찬 꿈을 이루어 가던 어느 퇴근길이었다.
메트로(버스) 전용 도로로 신나게 달리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잡는 느낌에 일부러 오른쪽으로 넘어졌다. 직감적으로 2인조 오토바이 강도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뒷자리에 탄 강도가 잽싸게 내려서 내 백팩을 당겼다. 주위에 여러명의 행인이 있었고, 도로 중앙에 넘어졌지만 바로 뒤에 승객을 가득 실은 버스는 우리랑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정리되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뺏기지 않으려 살짝 저항했더니 어김없이 은빛 권총을 꺼내서 머리를 찍었다. 한 번 더 반항했더니 섬머타임으로 아직도 머리 꼭대기에 있는 햇빛에 은빛 총구가 떨리면서 발포를 준비하고 있었다. 강도가 긴장하고 있었다. 이제는 보내야 할 때다 느끼고 손을 놓았다. 권총강도가 떠난 자리엔 메트로 버스, 행인들, 자전거 그리고 정수리에서 귀 옆으로 흐르는 피를 느끼지도 못하는 나, 이렇게 남았다.
위험요인이 사라진 내 주위로 사람들이 모였다. 누군가는 119에 전화를 해주고 경찰에 신고도 했다. 나는 툭툭 털고 일어나 자전거를 탔다. '경찰이 곧 올거야, 구급차도 출발했대' 라는 개똥같은 소리를 뒤로 하고 집으로 출발했다. 영주권, 운전 면허, 한 묶음의 열쇠, 백만 원 상당의 돈 그리고 또 그놈의 휴대폰...
[사건 ⑤] 이틀 전
엊그제였다. 멕시코시티 교통체증이 갈수록 심해졌다. 좋지 않은 기억으로 자전거를 통한 살빼기는 글렀고 같이 출퇴근하던 든든한 직원도 퇴사해서, 효율적인 출퇴근 시간 이용을 위해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냈다. 출퇴근길을 걷기 시작했다.
2017년 12월 초부터 해서 6개월 째다. 여느 때와 같이 매장을 정리하고 넓은 메트로 전용 도로 옆 보행자 길로 들어섰다. 요즘들어 재미가 들린 팟캐스트 한 토막을 들으며 경계심이 느슨해질 때였다. '저 앞에 두 명이 뒤돌아서 있는 게 뭐지?' 하는 순간 한 명이 휙돌더니 내 앞으로 뛰어온다. 뒷걸음질치며 도망가기는 너무 늦었다. 옆으로 멘 작은 가방을 낚아채면서 '휴대폰 휴대폰(셀룰라르 셀룰라르)' 외친다.
뒤로 더 물러서자 상의를 올리니 허리띠 사이로 2년 전에 내 머리를 찍었던 은빛 권총이 뚜렷이 보인다. 어떻게 두 달도 안 된 내 휴대폰을 아는지... 순순히 내어줬고 그들은 삼성 노트 8을 포함한 여러 개인 소지품을 제 것인 양 가져갔다. 출발하기 전 뒷좌석에서 그놈이 던진 한 마디가 가관이다.
"그라시아스(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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