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의 '귀로' 모작한 김진열, 이건 더 강렬하다
[한반도 정중앙에 있다는 양구 이야기 ③] 제2회 박수근미술관 수상작가전
파빌리온에서 김진열 작품 만나기
박수근 파빌리온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생생활활'로 이름 붙여진 생명포스터다. 모두 10점이 걸려 있다. 사소하고 개인적인 생명과 사물의 가치에 주목하고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삶을 위한 예술'이다.
죽고 죽이는, 먹고 먹히는, 상대가 안 되는,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는, 비교 불가능한 두 대상을 통해 공존의 가능성을 찾으려고 한다. 투우와 투우사, 늑대와 양, 토끼와 거북, 여우와 두루미, 체조 요정과 기린을 대비시켜 기존의 생각을 깨뜨리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두 번째 공간에서 만나는 것이 나무, 한지, 철판 등 재료를 혼합하고 아크릴 칼라로 색칠을 한 작품들이다. '논(갑천에서)', '풀밭', '생각하는 사람', '감나무 아래 서 있는 사람' 등이 대표적이다. 이것 역시 생명존중을 보여준다. 왜냐 하면 작품이 사람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을 표현하는 색깔이 어둡고 강렬하다. 민중미술적인 경향을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금수 평론가는 작품 속의 사람들이 80년대 역사의 주인공 즉 민중이라고 말한다. 김진열도 세상과 사람을 보듬으며 새로운 시도를 추구한다. 관습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평을 열려는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진보는 경험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 해안에 버려진 물건들을 이용해 만든 일종의 정크 아트다. 화가는 정크아트라는 용어 대신 형상미술이라는 용어를 선택한다.
"나는 작품 재료들을 연도에서 구했습니다. 연도는 여수에서 배를 타고 두 시간을 나가면 만나는 외딴 섬입니다. 그 섬의 해안에는 버려진 물건들이 먼 바다로부터 밀려와 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녹슨 금속판들을 채집합니다. 특별히 주문하여 생산한 합지와 녹슨 금속판들을 자르고 붙이는 과정을 거치며 안료를 사용하여 나의 형상미술이 완성됩니다."
2000년대 혼합재료로 만든 작품들도 인상적이다. 2003년에 만든 '나비야'는 한지에 아크릴 채색을 해 만들었다. 오랜만에 색깔이 밝다. 2005년에 만든 '나들이 1, 2'는 혼합재료로 만들었다. 그런데 작품 속의 두 인물은 무슨 말을 할까? 2012년에 혼합재료로 만든 '외출'은 치장한 여인이 밝게 웃는 모습이다. 그리고 '중년'은 뭔가 고민을 담고 있는 얼굴이다. 2012년에 만든 또 다른 작품 '지난 봄' '본의 아니게' '후회'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다음 전시실에는 김진열의 '드로잉+사진'이 있다. 이들 역시 2012년에 그려진 것으로, 왼쪽에 사진을 배치하고 오른쪽에 드로잉을 그려넣었다. 사진은 흑백으로 황량함, 버려짐, 소외 등을 표현했다. 드로잉은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다양한 자세와 표정이다. 그러나 사진과 드로잉의 관계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이들 작품은 무려 30점이 넘는다. 그래서 작품도 번호를 매겨 표시한다.
다음 공간에는 박수근과 김진열의 생애와 예술을 설명한 자료와 책자들이 있다. 김진열 화가는 정말 전시회를 많이 열었다. 1981년부터 2016년까지 개인전을 무려 27번이나 열었다. 초대전에는 48번이나 참가했다. 단체전도 중요한 것만 24회가 넘는다.
그는 또 2000년대 들어 드로잉전도 열었다. 드로잉전은 그가 작품 활동을 하는 원주지방에서 주로 열었다. 그런데 드로잉전의 제목이 독특하다. 야단법석, 막춤, 거침없이 막가파, 막춤처럼 가볍고 진솔한 그림 파티. 생생조각, 생생활활이다.
현대미술관에서 또 한 번 김진열을 만나다
현대미술관에 들어가면서 처음 보이는 설명판에, 박수근미술상 수상작가로 김진열을 선정된 이유가 적혀 있다. 박수근미술상 운영위원회 이름으로 발표한 글이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대목이, 소외된 보통사람을 통해 동시대를 그려내고, 그를 통해 아래로부터의 미학을 구현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그 아래로부터의 미학이 무엇인지,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제2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작가로 원주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김진열 작가가 선정되었습니다. 박수근 선생이 불운한 시대와 운명을 묵묵히 견뎌내는 서민들의 일상과 초상을 그렸던 것처럼, 김진열 작가 역시 우리 시대의 풍경과 소외된 인간상을 그리며, 존재의 진정성을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양구와 서울에서 동시에 개최하는 수상기념 전시에서는 1980년대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상을 초연하게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삶의 무게와 두께를 체험적 질료로 표현하는 김진열 작가의 '아래로부터의 미학'을 시각적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전시실은 크게 둘로 나눠진다. 하나는 드로잉으로 가득한 전시실이고, 다른 하나는 혼합재료로 만들어진 작품 전시실이다. 드로잉은 '들숨과 날숨'이고, '유년의 기억'이고, '디아스포라'고 '모심의 숲'이다. 여기서 디아스포라는 난민, 유민, 이주, 피난으로 대변된 현대사의 한 단면이다. 모심(母心)은 어머니 자연(Mutter Natur)을 말하는 것으로, 그 모심을 통해 생명존중과 평화공존이 가능해진다.
김진열은 그 드로잉의 대상을 자신의 삶의 공간인 원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찾고 있다. 1994년부터 이곳을 거쳐 가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스케치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이번 전시의 중요한 장르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이동하는, 서성이는,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찾아내보여 주고, 그 배후에 존재하는 권력과 착취의 이데올로기를 인식케 하는 것이 전시의 목적이다.
마지막 전시실에서 나는 혼합재료로 이루어진 작품들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본다. 1994년부터 이루어진 드로잉을 토대로 혼합재료를 이용, 입체감을 부여한 작품들이다. 1995년의 '터미널 사람' 연작, 1994년에 처음 만들고 2014년에 개작한 '원주 시외버스터미널 사람' 연작,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만든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 2015/2016년에 만든 '나무' 시리즈 등이 유사한 주제로 분류될 수 있다.
이에 속하지 않는 독자적인 작품이 2015년에 만든 '박수근 귀로 (모작)'이다. 그것은 박수근 화백의 '귀로'에 나오는 한 여인을 혼합재료로 오마주한 것이다. 그런데 김진열의 '귀로'가 던져주는 메시지가 박수근의 것보다 더 강렬하다. 그것은 색깔과 입체감 때문일 것이다. 또 팔, 다리, 몸뚱이, 머리 위에 인 함지를 개별적으로 갖다 붙임으로써, 분열적이고 고통스러운 현대사회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4년에 만들고 2018년에 개작한 '별이 흐르는 동해'도 독자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아마도 작가 자신의 고향 옥계 바다를 표현했을 것이다. 바다 색깔이 밝고 희망적이다. 그런데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이 우울하다. 그리고 몸은 인간인데, 머리는 말로 보인다. 한자말로 표현하면 수인(獸人)이다.
에밀 졸라의 소설에 나오는 수인(La Bête humaine)처럼 폭력적이고 파괴적이지 않고, 사회로부터 소외된 방관자 또는 아웃사이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를 보고 미술관을 나오는 마음이 무겁다. 현대예술가들은 왜 이처럼 비관적일까?
▲ 생명포스터 ⓒ 이상기
박수근 파빌리온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생생활활'로 이름 붙여진 생명포스터다. 모두 10점이 걸려 있다. 사소하고 개인적인 생명과 사물의 가치에 주목하고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삶을 위한 예술'이다.
두 번째 공간에서 만나는 것이 나무, 한지, 철판 등 재료를 혼합하고 아크릴 칼라로 색칠을 한 작품들이다. '논(갑천에서)', '풀밭', '생각하는 사람', '감나무 아래 서 있는 사람' 등이 대표적이다. 이것 역시 생명존중을 보여준다. 왜냐 하면 작품이 사람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을 표현하는 색깔이 어둡고 강렬하다. 민중미술적인 경향을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 논(갑천에서) ⓒ 이상기
최금수 평론가는 작품 속의 사람들이 80년대 역사의 주인공 즉 민중이라고 말한다. 김진열도 세상과 사람을 보듬으며 새로운 시도를 추구한다. 관습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평을 열려는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진보는 경험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 해안에 버려진 물건들을 이용해 만든 일종의 정크 아트다. 화가는 정크아트라는 용어 대신 형상미술이라는 용어를 선택한다.
"나는 작품 재료들을 연도에서 구했습니다. 연도는 여수에서 배를 타고 두 시간을 나가면 만나는 외딴 섬입니다. 그 섬의 해안에는 버려진 물건들이 먼 바다로부터 밀려와 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녹슨 금속판들을 채집합니다. 특별히 주문하여 생산한 합지와 녹슨 금속판들을 자르고 붙이는 과정을 거치며 안료를 사용하여 나의 형상미술이 완성됩니다."
▲ 형상미술 ⓒ 이상기
2000년대 혼합재료로 만든 작품들도 인상적이다. 2003년에 만든 '나비야'는 한지에 아크릴 채색을 해 만들었다. 오랜만에 색깔이 밝다. 2005년에 만든 '나들이 1, 2'는 혼합재료로 만들었다. 그런데 작품 속의 두 인물은 무슨 말을 할까? 2012년에 혼합재료로 만든 '외출'은 치장한 여인이 밝게 웃는 모습이다. 그리고 '중년'은 뭔가 고민을 담고 있는 얼굴이다. 2012년에 만든 또 다른 작품 '지난 봄' '본의 아니게' '후회'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다음 전시실에는 김진열의 '드로잉+사진'이 있다. 이들 역시 2012년에 그려진 것으로, 왼쪽에 사진을 배치하고 오른쪽에 드로잉을 그려넣었다. 사진은 흑백으로 황량함, 버려짐, 소외 등을 표현했다. 드로잉은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다양한 자세와 표정이다. 그러나 사진과 드로잉의 관계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이들 작품은 무려 30점이 넘는다. 그래서 작품도 번호를 매겨 표시한다.
▲ 화가 김진열 전시자료 ⓒ 이상기
다음 공간에는 박수근과 김진열의 생애와 예술을 설명한 자료와 책자들이 있다. 김진열 화가는 정말 전시회를 많이 열었다. 1981년부터 2016년까지 개인전을 무려 27번이나 열었다. 초대전에는 48번이나 참가했다. 단체전도 중요한 것만 24회가 넘는다.
그는 또 2000년대 들어 드로잉전도 열었다. 드로잉전은 그가 작품 활동을 하는 원주지방에서 주로 열었다. 그런데 드로잉전의 제목이 독특하다. 야단법석, 막춤, 거침없이 막가파, 막춤처럼 가볍고 진솔한 그림 파티. 생생조각, 생생활활이다.
현대미술관에서 또 한 번 김진열을 만나다
▲ 김진열 전시 걸개그림 ⓒ 이상기
현대미술관에 들어가면서 처음 보이는 설명판에, 박수근미술상 수상작가로 김진열을 선정된 이유가 적혀 있다. 박수근미술상 운영위원회 이름으로 발표한 글이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대목이, 소외된 보통사람을 통해 동시대를 그려내고, 그를 통해 아래로부터의 미학을 구현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그 아래로부터의 미학이 무엇인지,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제2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작가로 원주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김진열 작가가 선정되었습니다. 박수근 선생이 불운한 시대와 운명을 묵묵히 견뎌내는 서민들의 일상과 초상을 그렸던 것처럼, 김진열 작가 역시 우리 시대의 풍경과 소외된 인간상을 그리며, 존재의 진정성을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양구와 서울에서 동시에 개최하는 수상기념 전시에서는 1980년대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상을 초연하게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삶의 무게와 두께를 체험적 질료로 표현하는 김진열 작가의 '아래로부터의 미학'을 시각적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드로잉 전시 ⓒ 이상기
전시실은 크게 둘로 나눠진다. 하나는 드로잉으로 가득한 전시실이고, 다른 하나는 혼합재료로 만들어진 작품 전시실이다. 드로잉은 '들숨과 날숨'이고, '유년의 기억'이고, '디아스포라'고 '모심의 숲'이다. 여기서 디아스포라는 난민, 유민, 이주, 피난으로 대변된 현대사의 한 단면이다. 모심(母心)은 어머니 자연(Mutter Natur)을 말하는 것으로, 그 모심을 통해 생명존중과 평화공존이 가능해진다.
김진열은 그 드로잉의 대상을 자신의 삶의 공간인 원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찾고 있다. 1994년부터 이곳을 거쳐 가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스케치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이번 전시의 중요한 장르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이동하는, 서성이는,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찾아내보여 주고, 그 배후에 존재하는 권력과 착취의 이데올로기를 인식케 하는 것이 전시의 목적이다.
▲ 박수근 귀로 (모작) ⓒ 이상기
마지막 전시실에서 나는 혼합재료로 이루어진 작품들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본다. 1994년부터 이루어진 드로잉을 토대로 혼합재료를 이용, 입체감을 부여한 작품들이다. 1995년의 '터미널 사람' 연작, 1994년에 처음 만들고 2014년에 개작한 '원주 시외버스터미널 사람' 연작,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만든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 2015/2016년에 만든 '나무' 시리즈 등이 유사한 주제로 분류될 수 있다.
이에 속하지 않는 독자적인 작품이 2015년에 만든 '박수근 귀로 (모작)'이다. 그것은 박수근 화백의 '귀로'에 나오는 한 여인을 혼합재료로 오마주한 것이다. 그런데 김진열의 '귀로'가 던져주는 메시지가 박수근의 것보다 더 강렬하다. 그것은 색깔과 입체감 때문일 것이다. 또 팔, 다리, 몸뚱이, 머리 위에 인 함지를 개별적으로 갖다 붙임으로써, 분열적이고 고통스러운 현대사회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 별이 흐르는 동해 ⓒ 이상기
그리고 2014년에 만들고 2018년에 개작한 '별이 흐르는 동해'도 독자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아마도 작가 자신의 고향 옥계 바다를 표현했을 것이다. 바다 색깔이 밝고 희망적이다. 그런데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이 우울하다. 그리고 몸은 인간인데, 머리는 말로 보인다. 한자말로 표현하면 수인(獸人)이다.
에밀 졸라의 소설에 나오는 수인(La Bête humaine)처럼 폭력적이고 파괴적이지 않고, 사회로부터 소외된 방관자 또는 아웃사이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를 보고 미술관을 나오는 마음이 무겁다. 현대예술가들은 왜 이처럼 비관적일까?
덧붙이는 글
박수근미술상 수상작가 김진열전이 양구 박수근미술관과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박수근미술관에서는 5월4일부터 10월14일까지, DDP에서는 5월4일부터 5월27일까지. 김진열의 미술세계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양구 박수근미술관으로 가는 게 좋다. 전시작품의 양과 질 그리고 디스플레이에서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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