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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맞고 일하다 강제 결혼까지... "박정희 정권의 음모"

[인터뷰] 다큐멘터리 영화 <서산개척단> 이조훈 감독

등록|2018.05.17 16:26 수정|2018.05.17 16:28

▲ <서산개척단> 이조훈 감독 ⓒ 신영근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사람부터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곳, 돈 벌 수 있는 곳이라는 꼬임에 넘어가 매를 맞아가며 죽도록 일만 한 것도 모자라 강제로 결혼을 당하는 등 젊은 시절 인권유린의 한복판에서 신음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곧 개봉(5월 24일)을 앞두고 있다.

한 독립영화 감독은 5년 전 우연히 서산이 고향인 한 대학 후배로부터 '서산개척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직접 생존자를 찾아 나섰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큰 충격에 빠졌다. 이후 감독은 '서산개척단'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이제는 고령이 된 생존자들의 진심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영화 제작을 결심했다. 그가 바로 <서산개척단>의 이조훈 감독이다. 이 감독은 5년 동안 서산개척단에 대한 심층 취재에 돌입했다.

서산개척단사건은 5.16구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국가재건'이란 미명 하에 1961년부터 국토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간척사업에 청소년들을 강제 동원한 일이다. 지난 14일 <서산개척단> 시사회가 열린 서산에서 이조훈 감독을 만났다.

"애초부터 '서산개척단'은 박정희 정권이 기획해 청년들을 이용한 사건이다. 어르신들은 57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더 이상 묻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폭로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의 문제는 단순히 피해자를 위로하는 것에서 끝나선 안 된다. 그 배후에 박정희 정권의 음모와 기획, 대국민 사기극이 자리 잡고 있고 그게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알려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수많은 피해자들이 숨을 죽이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서 이 감독은 "이 영화를 보는 많은 관객들이 미투운동·갑질 폭로처럼 '위드유' 해주길 바란다"면서 "(관객들이) 한국근현대사 진실을 파헤치고 역사에 기록하는 데 동참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영화를 제작하면서 겪은 어려움은 없는지 묻자 이 감독은 "처음 영화로 만들겠다고 했을 때 (어르신들은) 그동안 주류언론들이 외면해 왔는데 과연 되겠느냐며 반신반의했다"면서 "생존 단원들이 그동안 숨겨왔던 이야기를 꺼내야 했는데, 그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제일 힘들었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진심으로 다가가는 이 감독의 모습에 생존 단원들이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한 할머니는 취재를 시작한 지 4년 만에 감독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취재를 거듭할 수록 인권유린과 토지 무상분배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음이 드러났고 이 감독 또한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 감독은 "개척단 중간관리자 중 한 명은 이 일로 돌아가신 분이 없다고 부정하다가 갑자기 흐느끼기도 했다. 결국 그 분이 '돌아가신 개척단원이 생각나서 그랬다'고 말해 굉장히 놀랐다"라며 "국가의 지시로 인해 관리를 해야 하는 사람으로 굉장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 감정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것 같았다"라고 취재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았다.

"인권유린과 아픈 역사를 모르는 국민이 너무 많다"

▲ 지난 14일 서산에서 열린 <서산개척단> 시사회가 끝난 후, 이 영화를 제작한 이조훈 감독이 무대인사와 함께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 신영근


개봉을 앞두고 서산에서 특별하게 시사회를 하게 된 배경에 대해 이 감독은 "개봉에 앞서 제일 먼저 서산에서 시사회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라며 "'서산개척단'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출발은 당연히 서산이 되어야 하고, 그뿐만 아니라 서산시, 충남도에서도 관심을 갖기 바라는 마음이다"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 감독은 <서산개척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영화를 통해 슬픔과 분노를 함께 공감하고 공분하게 될 것이다. 역사에 묻혔던 진실을 파헤쳐 내야만 하고 그것이 전 국민에게 알려져야 한다. 13년간 부랑아라는 명분으로 납치되고, 개척단 사업을 포함한 국토개발사업에 동원했던 피해자들이 아직도 이 땅 어디선가 숨죽여 살고 있을 것이다. 그 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도 피해자라고 나섰으면 좋겠다. 자녀와 젊은 분들이 위드유 운동을 전개해서 다시는 그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이 분들은 국가의 진정한 사과도 받아야 하고 젊은 청춘을 바쳤던 것에 대해서도 올바른 보상도 받아야 한다.

'서산개척단'의 충격적인 인권유린과 아픈 역사를 모르는 국민이 너무 많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이 문제를 널리 알리는 디딤돌이 되었으면 한다. 국민들의 관심으로 진실을 밝히고 진정한 사과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동참해 달라."

한편, <서산개척단>의 생존 단원과 이 감독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물론 정부로부터 사과와 보상을 받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할 예정이다. 그 첫 번째로 당시 미국의 원조사업으로 진행된 개척단사업이 국제법에 따라 부정행위가 없었는지 미국 변호사와 상담을 진행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오는 18일 민변과 함께 이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큐멘터리 <서산개척단>은 오는 18일 서울에서 한 차례 더 시사회를 열고, 24일 전국 상영관에서 개봉한다.

▲ 생존 개척 단원들이 <서산개척단> 시사회장을 찾았다(사진 오른쪽 첫 번째가 이조훈 감독). ⓒ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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