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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선생이었던 제 첫 제자들, 36년 만에 찾았습니다

'진짜' 선생이 되어 만나는 아이들, 이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등록|2018.05.17 19:35 수정|2018.05.17 19:35
오전 1시, 잠자리에 들었는데 질문 하나가 불쑥 솟아올랐습니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 오늘 누구를 만나고 싶은가?"

예비고사 세대인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었습니다. 대학도 안 가고 집에서 놀자니 부모님 눈치가 보였지요. 어느 날, 저희 집에 세 들어 살던 교육청 직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출산휴가 들어간 학교 선생님을 대신해 두 달 동안 초등학생 아이들을 가르쳐보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교사 자격증도 없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다니. 그 전화는 제게 걸어온 인생 최대의 '농담'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를 위해 준비된 완벽한 농담이었지요. 그로부터 2년 동안 여러 학교를 다니면서 두 달짜리 강사 노릇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핸드볼을 가르치러 다른 학교에 파견 근무를 하게 된 선생님 때문에 6개월짜리 강사가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 학교는 버스라고 중고등학생들 등하교 시간 무렵에만 겨우 드나드는 곳이었지요. 관사에서 6개월을 지내야 했습니다.

한 학년에 한 반, 6년 차 같은 교실에서 지내는 6학년 교실로 갔습니다. 아이들은 순박하기 그지없고 수줍음이 많았으나 저를 무척 따랐습니다. 저는 진짜 선생이었고 아이들도 저를 진짜 선생처럼 존중하고 따랐지요.

어느 때는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보시기에 방금 찐 감자가 놓여 있기도 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가짜 선생이란 걸 깜빡 잊고 지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6개월이 지났습니다. 떠나오기 전날 교무실에서 송별 인사를 나누고 교실로 왔습니다. 문을 여는 순간,

"오랫동안 사귀던 정든 내 친구여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언제 나 몰래 연습을 했지 싶어 순간 목젖이 뜨거워지며 진짜 선생이 되고 싶었습니다.

▲ 첫 제자들의 졸업 사진 ⓒ 임경희


다음 날, 새벽부터 장대비가 내렸습니다. 이제는 정말 헤어져야 할 시간,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니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아이들이 비료 포대를 잘라 만든 우비를 뒤집어쓴 채 처마 아래 줄지어 서서 울고 있는 겁니다.

그제야 비로소 하고 싶은 게 생겼습니다. 곧장 강사로 번 돈 40만 원으로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4년 후, 저는 서울에 있는 교육대학에 입학했고 진짜 선생이 되었습니다. 옛 추억을 돌아보니 '내일 죽는다면 오늘 누구를 만나고 싶은지' 답이 나왔습니다.

"첫 제자들을 만나야 해."

6개월 근무한 그 학교, 나의 첫 제자들과 정들었던 그 학교 이름을 검색했습니다. 이게 웬일인가요? 전에 없던 그 학교 이름의 새 카페를 발견했습니다. 댓글로 제자를 찾는 사연을 올려놨지요. 잠을 설친 새벽 6시, 밴드에 댓글이 달렸습니다. 

"선생님, 저 선생님 제자 **이에요. 우리도 만날 때마다 선생님이 보고 싶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아이들과 연락이 됐습니다.

"저희가 먼저 찾아야 하는데 정말 죄송해요."
"제가 선생님 엄청 사랑했어요. 그때  그 나이에..."

그렇게 다가오는 27일, 가짜 선생이었던 저는 꿈에 그리던 첫 제자들을 만납니다. 오십 문턱을 밟고 서서 생의 전환기를 맞을 준비를 하는 제자들의 손을 잡아보고, 또 꼭 안아주고 싶습니다. 함께 둘러앉아 '석별의 정'을 듣고 마종기 시인의 시 한 편 들려주렵니다.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저는 이제 또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이제 나의 첫 제자들과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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