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김치, 며느리 갖다 줘, 말어?
어느 시어머니의 고민... 아들네가 달라고 하면 줘야지
▲ 열무와 얼갈이 배추로 만든 햇김치... ⓒ 정현순
"웬걸 이렇게 많이 사세요?"
"딸도 주고 ....(며느리도 주고 혼자말로 들리는 둥 마는 둥)"
"그러시구나~~"
채소가게 여주인이 내가 김칫거리를 잔뜩 사니 하는 말이다. '딸도 주고'의 뒷말은 '며느리도 주고 싶어서'인데 그 말이 자신 있게 나오지 않았다. 며칠 전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다.
얼갈이와 열무는 소금에 절이면 생각만큼 많지가 않기도 하고 생각 같아서는 딸도 주고 며느리도 주고 싶은 마음에 넉넉히 산 것이 사실이다.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나면서도 많이 샀던 이유는 그래도 며느리도 주고 싶은 마음이 커서다.
하지만 며칠 전 친구가 했던 말이 김치를 다하도록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친구의 말에 의하면, 김치찌개가 아주 맛있게 되었다고 한다. 마침 저녁을 먹을 무렵이고 맛있게 된 김치찌개를 보니 아들 생각이 나더란다. 그의 말에 나도 100%, 아니 그 이상 공감한다. 맛있게 된 음식을 보면 자식들이 생각나는 것은 세상 어떤 부모도 똑같을 것이다.
그 친구는 아들과 한 아파트 단지에서 동만 다르게 산다. 그래서 며느리한테 전화를 했단다. "김치찌개 맛있게 되어서 너희들 생각나는데 좀 갖다 주고 싶다"했더니 며느리가 처음 반응이 시원치 않다고 했다. 그래도 친구는 "내가 김치찌개만 주고 금세 나올 거야"해서 갖다 주었다고 한다. 그는 김치찌개만 건네주고 정말 5분도 안 있다가 나왔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씁쓸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맛있게 잘 먹을 아들며느리를 생각하니 좋은 마음도 들었다고 한다.
그 말에도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만큼 고개가 끄덕여진다.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한 가지가 또 생각났다. 아들집에 반찬을 갖다 주고 싶으면 경비실에 맡기고 가는 시어머니를 좋아한다고. 그 외에도 이런 저런 떠도는 말은 많다. 내가 시어머니가 되어 보니 그런 말들이 아주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반찬 정도는 망설임 없이 갖다 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다.
딸아이네는 같은 단지에 살고 아들은 한 단지에는 살지는 않지만 담 하나를 두고 5분 거리에 살고 있다. 자식들이 가까이 사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렇다고 자주 가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우린 우리 대로 사생활이 있으니 말이다. 그것은 그 친구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어느새 김치가 다 버무려졌다. 딸아이네 줄 것과 우리 것을 따로 담아 놨다. 며느리는 어떻게 할까? 그런대로 맛있게 되었으니 우리만 먹는 것보다 주고 싶은 마음은 더 간절했다. '햇김치가 맛있게 되었는데 어떻게 할까?' 하고 카카오톡에 올려볼까? 아님 내가 갖다 줄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결정을 내렸다. 내 마음은 서운하지만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니 아무것도 하지 말자. 다음에 그 애들이 우리 집에 와서 김치를 먹어보고 맛있으니 조금 달라고 하면 그때 나누어주자 했다.
저녁에 남편이 저녁을 먹으면서 "김치 맛있다. 애들 좀 갖다 주지"한다. "걱정 마. 내가 알아서 할게"하곤 말았다. 입맛에 맞는 김치를 보니 남편도 아들 생각이 났나 보다. 그런 마음은 아버지나 엄마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새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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