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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이슈라면 '3중 카더라'도 불사하겠다는 TV조선

민언련 종편 시민 제보체크

등록|2018.05.21 17:56 수정|2018.05.23 14:43
6월 12일로 북미 정상회담이 확정된 상황에서 북미 양국 간 신경전이 이어지며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16일, 북한은 한미연합 공중훈련 '맥스선더'에 "판문점 선언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이며 좋게 발전하는 조선반도 정세 흐름에 역행하는 고의적인 군사적 도발"이라 반발하며 이날 예정되어 있던 남북 고위급회담을 무기한 연기시켰습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리비아식 핵폐기 모델", "선 핵폐기 후 보상" 등 발언에 대해서도 "미국이 일방적인 핵포기만 강요할 경우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엄포를 놓았습니다.

북한이 '북미회담 재고'까지 언급하면서 우려가 커졌으나 협상력 강화를 위한 포석이므로 회담 성사에 문제가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그 근거로는 △북한의 담화가 우리의 차관급에 해당하는 김계관 외무성부상 명의로 나왔다는 점, △스스로 '핵 개발 완성국'임을 강조한 점, △23일~25일로 예정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일정은 따로 거론하지 않은 점 등이 꼽힙니다. 미국도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북한이 비핵화한다면 김정은 위원장의 안전을 보장할 것이며, 이는 리비아 식 해법과는 다른 것"이라며 '리비아 모델'을 부인하는 등 '달래기'에 나섰습니다. 우리 정부 역시 "여러 채널로 북미 간 입장 조율 중"이라며 중재 역할에 나섰습니다.

북미 회담을 앞둔 정세가 긴박한 만큼, 언론의 역할은 더욱 중요합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짚어주고 한반도 정세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해야 하며, 결론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가능성이 무르익은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의 경로를 예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종편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 상황에서도 TV조선은 북한 관련 카더라, 특히 '탈북자'에 집착하며 '비정상적인 북한'을 과장하는 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김정은 방북' 다루다 갑자기 나온 '북 간부 도주'

5월 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중 소식을 전하던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5/8)은 갑자기 급격하게 주제를 바꿨습니다. 먼저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던 마오쩌둥 손자가 공개석상에 등장했다"고 언급하더니 곧바로 '북한 고위급 간부의 망명 소식'을 전했습니다. TV조선이 집중하고자 했던 주제는 바로 마지막에 나온 '북 고위급 간부 망명'입니다.

문승진 기자가 "영국 일간지가 현지 시각 3일에 보도한 건데요. 북한 전문 매체를 인용해서 '중국 동부지역에서 방첩 업무를 총 지휘하던 국가 보위성 해외반탐국의 강 모 대좌가 영국 또는 유럽으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보도를 한 겁니다. 한국군으로 치면 대령급으로 해당이 되는 건데요. 50대 후반의 강 모 대좌는 북한 김일성의 모친인 강반석과 인척 관계인 것으로 알려져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라며 운을 띄웠습니다.

▲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5/8) 화면 갈무리 ⓒ 민주언론시민연합


'카더라의 카더라의 카더라'?

TV조선은 5분 간 바로 이 '북 고위 간부 도주' 소식을 다루면서 여러 부적절한 태도를 보였으나 일단 이 사안을 거론하는 방식 자체가 기본적 보도윤리에 어긋났습니다.

TV조선이 인용한 '영국 일간지'는 영국의 텔레그래프(The Telegraph)입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5월 3일 <북한 고위급 정보요원, '탈북 후 영국 도주 가능성'>(https://bit.ly/2k6ZyjR) 제하의 리포트에서 "지난 2월 말 대간첩 활동을 하던 상급 간부가 사라졌고 영국으로 망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습니다. TV조선은 "영 텔레그래프"를 인용했다며 이 내용을 자막과 함께 그래픽 화면으로 구성했습니다.

텔레그래프는 보도의 소스가 "중국과 북한의 취재원이 서울 소재 북한 전문 매체인 <데일리NK>에 밝힌 내용"이라고 언론사명까지 명시했습니다. 실제 '북한 국가보위성 간부 강 모 씨의 도주'는 텔레그래프에 앞서 4월 23일, '데일리NK'가 처음 보도한 내용입니다. 데일리NK <"北해외 반탐 中 총책 2월 탈북…당국, 추적·살해 지시">(4/23 https://bit.ly/2IQ2YFD)는 "중국 칠보산호텔(현 중푸국제호텔)에 주둔하면서 중국과 러시아, 동남아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반탐국 성원들을 총지휘한 강 모 씨가 지난 2월 25일 돌연 자취를 감췄다", "도주 당시 달러를 찍는 활자판과 상당량의 외화를 소지한 것으로 알고 있다", "(북한은) 사건 발생 즉시 살해 임무에 특화된 요원 7명을 급파했고, 이들이 빈손으로 돌아오자 바로 3명을 또 다시 보냈다"고 보도했습니다. 보도의 근거는 "북한 사정에 밝은 대북 소식통", '익명의 대북소식통' 전언이 전부입니다.

즉, TV조선의 보도는 무려 세 번이나 인용된 '전언'에 불과한 셈입니다. △'익명의 북한 소식통'의 주장을 △'데일리NK'가 받아 보도했고, △'데일리NK'가 보도한 것을 다시 영국 텔래그래프가 받아썼으며, △영국 텔레그래프 보도를 TV조선이 또 받아 방송한 겁니다. 한국 발 대북 카더라 뉴스가 외신에 인용된 뒤, 한국 언론이 그 외신을 역으로 다시 인용하여 공신력이 있는 뉴스인양 소비되는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요. 이번 TV조선 사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히 '세 번에 걸친 카더라', '트리플 카더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TV조선은 이렇게 수차례 퍼진 '소문' 수준의 소식을 인용 보도하면서 최초 보도나 취재원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고 오로지 자신들이 본 텔레그래프만 언급했습니다. TV조선이 얼마나 검증 없이, 최소한의 취재도 없이 '북한 소식'을 보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사례입니다.

확인되지도 않은 '도주 간부'의 '가계도'까지 파헤친 TV조선

이렇듯 '세 번에 걸친 카더라'를 조명한 TV조선은 자신들이 밝히지도 않은 '데일리NK' 보도를 화면과 함께 장황하게 풀어놨습니다. 먼저 TV조선이 주목한 것은 도주했다고 전해진 북한 고위 간부의 가계도입니다.

▲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5/8) 화면 갈무리 ⓒ 민주언론시민연합


'데일리NK'는 북한 간부 강 모 씨를 "일제강점기 당시 반일부녀회를 조직하는 등 항일운동에 앞장섰다고 북한이 주장하는 강반석의 아버지 강돈욱의 후손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인물로 묘사했습니다. TV조선 <보도본부핫라인>(5/8)은 이를 가계도 그림과 함께 똑같이 보도했습니다. 엄성섭 앵커는 흥분한 목소리로 "(강 모 대좌가)계급은 대령이니까 별보다는 낮으니까 그런데 김일성 일가하고 지금 관련돼 있다는 거 아니겠어요. 강반석이라는 사람이 북한에서 엄청나게 칭송하고 있는 대상 아니에요?"라고 외쳤고, 윤우리 기자는 "강반석 같은 경우에는 김형직과 결혼을 해서 대동강 하류 망명대에서 1912년에 김일성을 낳았는데 북한은 강반석이 일제강점기에 반일 부녀회를 조직하는 등 항일운동에 앞장섰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때 지난 4월 조선중앙TV의 '강반석 칭송 방송'까지 보여줬습니다.

TV조선이 타 매체, 심지어는 세 번에 걸쳐 전달된 전언을 보도하고자 했다면 북한 간부 강 모 씨의 도주가 사실인지 먼저 검증부터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TV조선은 스스로 밝히지도 않은 최초 보도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쓰면서 확인되지도 않은 '북한 도주자'의 가계도를 부각했습니다. 시청자에 대한 기만이자 굉장히 선정적인 보도 태도입니다.

'카더라'에서 '카더라'를 뽑아내는 TV조선의 '마법'

TV조선의 이러한 '북한 카더라'는 결국 허위사실, 명예훼손에 가까운 주장으로 이어졌습니다. '데일리NK'는 강 모 대좌가 "달러를 찍는 활자판과 상당한 외화를 소지한 채" 도주했다고 보도했는데요. TV조선은 이 대목에도 집중하면서 갑자기 노무현 전 대통령을 거론했습니다. 결론은 '노무현 정부 정보기관이 북한의 슈퍼노트(정밀 위조지폐) 존재를 알고도 노 전 대통령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TV조선이 여기서 언급한 슈퍼노트 자체가 또 다른 '카더라'라는 점도 문제입니다.

강 모 대좌의 '가계도'에 천착했던 TV조선은 곧바로 '데일리NK'가 보도한 '위조달러 찍는 활자판 소지 도주'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윤우리 기자는 "강 대좌가 도주 당시에 달러를 찍는 활자판과 상당량의 외화를 소지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보도 내용을 전하자 엄성섭 앵커는 재차 흥분하며 "달러 찍는 활자판이라면 지금 위조지폐, 슈퍼노트 만드는 거? 100달러짜리"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자 윤 기자는 "예. 맞습니다. 그것까지 들고, 도주를 했다는 것"이라 확인했는데요. 놀랍게도 TV조선이 인용한 텔레그래프, 텔레그래프가 인용한 데일리NK 보도 어디에도 강 모 대좌가 '슈퍼노트'를 들고 도주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다만 '위조지폐 활자판'을 들고 도주했다는 것인데, 단순한 '위조지폐 활자판'과 '슈퍼노트'는 엄연히 다릅니다. 슈퍼노트의 경우 비용만 수 천 억원이 소요되는 조폐 공사급 제작 라인을 구비해야 제작이 가능한 '초정밀 위조지폐'로서, 일반적인 위조지폐 범죄조직은 만들기 어렵습니다. TV조선이 '탈북 카더라'를 더 과장하기 위해 '슈퍼노트'라는 또 다른 '카더라'를 만든 겁니다. '카더라'에서 '카더라'를 뽑아내는 TV조선의 마법입니다.

'노 전 대통령만 몰랐던 슈퍼노트'? TV조선만 모르는 '언론의 품격'

노 전 대통령과 관련된 충격적 주장은 바로 다음 장면에서 이어졌습니다. 패널로 나온 이도운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TV조선 기자들이 거론한 '슈퍼노트 소지 도주'를 사실로 전제한 채 "미국은 이미 2000년도에 한번북한 슈퍼노트 때문에 한번 홍역을 치른 일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게 나오면 아마 또 핵 문제와는 별개로 이 자체로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 진단했습니다. 확인되지도 않은 '슈퍼노트 소지 도주'를 근거로 지금 진행 중인 북미회담까지 연결한 겁니다.

이어서 이 씨는 "이 슈퍼노트를 북한이 발행해서 유통하고 있다는 것을 제일 먼저 안 게 우리나라 정부기관이고. 이거를 미국에 알려준 것도 우리나라입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거는 2005년 경주에서 한미정상회담이 열렸는데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한테 북한이 위조지폐 발행한다고 막 비판을 하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증거 있냐고 하니까 부시 대통령이 '증거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이) '어디 있냐'고 했더니 '당신들이 알려주지 않았냐'. 그 정보를 미국에는 알려줬는데 노무현 대통령한테 보고는 안 했던 거예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놀란 엄성섭 앵커가 "진짜입니까?"라고 반문하자 이 씨는 "진짜죠"라고 확언했고 이 주제 대담은 마무리됐습니다.

이 대목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일단 TV조선, 그리고 이도운 씨는 2005년 한미 정상회담 당시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나눴다는 대화에 대해 근거를 전혀 밝히지 않았습니다. 당시 관련 보도를 찾아봐도 한미 정상이 경주 회담에서 북한 위조지폐 문제를 논의했으나 결렬됐다는 소식만이 있을 뿐, 해당 대화는 찾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이도운 씨 본인이 2005년 당시 작성한 한미 정상회담 관련 보도들에도 그런 내용은 없습니다. 다만 딱 1건의 보도에서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바로 이도운 씨가 지난해 8월, 문화일보에 게재한 칼럼 <문재인 정권 내부의 敵(적)들>(2017.8.2. https://bit.ly/2Ioijhk )입니다.

이 칼럼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을 비판하고 문재인 청와대 참모들이 "학생운동 시절 민족해방(NL) 계열"이라 지적하면서 "2005년 11월 17일 경주에서 한·미 정상회담" 일화를 거론했습니다. 내용은 똑같고, 역시 어디서 그런 대화를 들었는지 출처는 없습니다. 요컨대 이도운 씨 본인이 이미 근거 없이 내놨던 주장을, 이번 북한 간부 도주 사건을 계기로 다시 꺼내든 겁니다. TV조선과 이도운 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이자 허위사실이 될 수 있는 이 주장에 대해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카더라'에서 시작해 '노무현'으로 끝맺는 보도, 불필요하고 유해하다

TV조선은 타 매체가 보도한 '북한 간부 도주'를 그대로 받아쓰면서 원래 출처를 밝히지 않았고, 원 출처인 보도 매체보다 훨씬 더 내용을 과장하며 또 다른 '카더라'를 양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소환됐고 명예훼손에 해당될 수 있는 주장까지 나왔습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확인되지 않은 '북한 카더라'를 방송한 시점과 맥락입니다. 5월 8일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두 번째 방중을 결행하면서 북미회담 및 한반도 평화체제 기류에 또 한 가지 분석지점이 발생한 시기입니다. 실제로 TV조선은 '김정은 방중'을 다루다가 갑자기 이 사안을 꺼내들었고 '카더라'로 빠져들었습니다. 이런 태도는 검증되지 않은 북한 발 선정적 이슈로 시청자를 현혹시키는 것으로서 긴박한 한반도 정세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TV조선이 늘 '대북관'으로 문제 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굳이 거론하며 이도운 씨의 일방적인 주장을 '사실'로 확인해준 부분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관계 기관의 중징계가 불가피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 민언련 종편 모니터 보고서는 패널 호칭을 처음에만 직책으로, 이후에는 ○○○ 씨로 통일했습니다. 이 기사는 시민 여러분들의 제보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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