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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반대한다', 정치적 의사 표현이면 상관없다고?

[평등UP ②] 반동성애·반이슬람, '정치적 표현' 가장한 혐오와 차별

등록|2018.05.29 18:29 수정|2018.05.29 18:29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혐오선동세력이 다시 분주하다. 예비후보들에게 혐오를 다짐받는 질의서를 보내고 있으며, 스스로 후보로 나서 혐오선동을 하는 이들도 눈에 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지방선거와 혐오에 대한 평등UP 연속기고를 한다. 혐오를 직접 마주하는 현장 활동가의 고민을 통해 민주주의 사회에서 혐오는 용납될 수 없음을 전하고, 해외 사례 등을 통해 실천적인 방안도 모색하고자 한다. -기자말

6·13 선거를 앞두고 지방선거 후보자들의 사무실에는 '성적지향 차별금지' 조항이 포함된 학생인권조례 또는 지방자치조례 찬성 여부, 동성애와 에이즈 관련성에 대한 홍보 지지 여부 등에 대한 내용을 담은 설문이 '정책질의서'라는 이름으로 도착하였다. 이 설문지를 보낸 '건강한○○만들기시민연대'는 설문지 상단에 자신들은 각 설문항목과 관련해 일관되게 반동성애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는 점을 밝힘으로써, 후보자들에게도 동성애 반대 입장을 표명할 것을 간접적으로 요구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기독자유당 명의로 곳곳에 붙은 포스터와 집으로 배송된 선거 공보물에 동성애, 차별금지법, 이슬람을 반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작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때는 대선 후보자들에게 동성애, 차별금지법, 이슬람 반대 입장을 표명하라는 요구들이 있었고, TV 토론에서 한 후보가 '동성애 반대하냐'고 묻고, 다른 후보가 '반대한다'고 답하는 장면이 생방송으로 보여졌다.

정치적 의견의 형식을 띤 혐오표현의 문제

▲ 반동성애, 반이슬람적 주장들은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의 중요한 토대인 민주주의적 가치를 훼손할 뿐 아니라 부정한다. ⓒ pixabay


이러한 내용들이 정책 질의 혹은 정책적 의견의 형식을 띠고 있는 것은 우리들의 사고에 일정한 교란을 일으킨다. 내용은 몹시 위협적이고 동의할 수 없지만, 욕설이나 비방은 아니므로 선거 때 표출되는 다양한 정치적 의사표현의 하나로 봐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한다면, 이른바 '정치적 의견'이라는 형식에 현혹된 착시현상 때문일 것이고, 아마도 그러한 형식은 영리하게 고안되고 선택된 결과일 것이다. 특히 정치적 또는 공적 사안에 관한 표현의 경우 '사상의 자유 시장' 원칙이 더 철저히 관철되어야 한다는 사고가 상당히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가 특히 더 두텁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논변은 민주주의적 가치와 원리 차원에서 정당성을 찾는다. 즉, 자유로운 공적 토론과 합의의 과정이 민주적 정당성의 기초라는 점, 정부와 공직자들을 견제하고 책무성을 갖게 하려면 정부 정책에 대해 자유로이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소통이 개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키우는 데 핵심적이라는 점 등이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를 더 폭넓게 보장해야 하는 근거들로 제시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성애를 반대한다', '이슬람을 반대한다'는 등의 내용은 정책 질의나 의견의 형식을 띠고 전파되기 때문에 정치적 의사표현의 일부로서 용인되어야 하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이 질문은 표현의 형식을 넘어, 이러한 내용의 효과에 대해 주목함으로써 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먼저 특정 성적 지향 또는 특정 종교를 자신의 중요한 정체성의 일부로 하는 사람들을 배제할 것을 선동하는 반동성애, 반이슬람적 주장들은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의 중요한 토대인 민주주의적 가치를 훼손할 뿐 아니라 부정한다. 민주주의는 한 사회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평등하며, 정치과정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또한 그러한 주장들은 당사자인 사회적 소수자들의 존재 양식을 부정하거나 찬반의 대상이 되게 함으로써, 이들의 존엄성을 공격하고 평등권을 침해한다. 혐오주의자들은 '특정 행위나 양태에 대해 부정적일뿐,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심지어는 '사랑해서 그러는 거'라는 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장애를 반대한다'는 말이 부조리하고 폭력적이듯, 소수자의 성적지향이나 종교를 '반대한다'는 말 역시 그러하다.

캐나다 연방대법원은 평등권과 민주적 가치의 옹호라는 관점에서 혐오표현에 관한 법리를 정교하게 발전시켜 왔는데, 정치적 의사표현의 형식을 띤 혐오표현의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2013년에 내려진 Saskatchewan (H.R.C.) v. Whatcott 판결에서 다루었다. 위 사건에서 문제가 된 유인물들은 공교육의 교육과정이나 대학에서 열리는 학술회의의 주제로 동성애를 다양한 성적지향의 일부로서 다루는 것을 반대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었다. 사스케츠완 주(州)인권재판소(Human Rights Tribunal)는 주(州)인권법상 혐오표현 규제 조항에 근거해, 해당 유인물의 배포 중지와 이 유인물로 인한 피해에 대한 금전배상을 명령했다.

연방대법원은 이러한 주(州)인권재판소의 결정이 헌법인 '캐나다 권리와 자유헌장'에 부합하는지를 심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심사에서는 '유인물이 사회정책에 관한 의견이므로 표현의 자유의 핵심적 보호 범위에 속하는 정치적 표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유인물 배포 단체(Christian Truth Activists)의 주장도 검토의 대상이 되었다. 캐나다 연방대법원은 "어떠한 표현이 정치적 표현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서, 그 표현이 혐오표현인지 아닌지에 대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못박았다.

연방대법원은 역사상 심각한 해악을 끼쳤던 혐오의 레토릭들 중에는 '정치적' 또는 '공적 정책' 담론의 일부로 나타났던 것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상기하였다. 혐오표현이 그 표적이 되는 소수자집단의 공론장 참여를 제약하는 효과를 낸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정치적 토론 상황이라고 해서 혐오표현에 대한 기준을 완화하는 것은 오히려 표현의 자유의 가치를 더 훼손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설명은 이러하다. "정치적 표현은 각기 다른 견해의 교환을 독려함으로써 민주주의에 기여한다. 혐오표현은 취약집단의 일원이 응답하는 것을 어렵게 하거나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대화에 빗장을 걸고 담론을 억압한다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가 추구하는) 목적과는 상반된다." 즉, 정치적 표현의 외관을 띠었다 하더라도 해악이 있는지 여부를 살펴야 하고, 소수자를 배제하고 소수자의 공적과정에의 참여를 차단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표현은 민주주의의 증진이라는 표현의 자유의 목적에 비추어서도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캐나다 연방대법원의 입장이었다. 

법·정치철학자인 사라 소리알 (Sarah Sorial, 'Hate Speech and Distorted Communication: Rethinking the Limits of Incitement', Law and Philosophy, 2015: 299-324)은 특정 집단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효과를 갖는 주장들을 하나의 정당한 정치적 견해, 마치 응답해 줄 가치가 있는 견해로 '정상화'하는 것이야말로 문제라는 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표현들은 정책 의견의 외관을 띠고 정치적 표현의 자유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동등하게 인정받고 정치적 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리에 정면으로 반한다.

사라 소리알은 이러한 표현을 '체계적으로 왜곡된 의사소통'이란 하버마스의 이론적 개념을 통해 설명하며, 의사소통에 있어 체계적인 왜곡을 낳는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권력 관계를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정치적 표현의 외관을 띤 혐오표현의 경우, 정당성을 갖는 하나의 정치적 견해라는 위치를 부여하지 말아야 하며, 그것의 진정한 의미와 효과를 분명히 직시하고 밝혀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혐오와 차별이 더 이상 공론장에 발 못 붙이게 해야

▲ '정치적 표현' 가장한 혐오와 차별, 대처가 필요하다 ⓒ pixabay


만약 제도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이 덜하고, 민주적 참여가 평등하게 보장되고, 다양한 계급과 정체성들이 정치 과정에 잘 대표되고 있는 사회라면 어떨까? 만약 그렇다면,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 배제하는 목소리는 극단적 소수에 불과할 것이며, 그냥 두어도 별다른 사회적 영향력이 없거나, 혹여 어떠한 영향이 있다 하여도 법과 제도, 문화 속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은 자신의 존엄과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자원들을 적절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혐오의 발화자들이 극단적 소수가 아니라 우리 사회 기득권층에 뿌리 내리고 있고, 사회적 소수자들의 평등권을 굳건하게 옹호할 법제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기는커녕, 입법자, 정책입안자들이 혐오와 차별에 편승하거나 아니면 포위되어 있는 상황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정치적 표현'을 가장하여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활동이 공론장에 발 디디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기본일 것이다. 혐오와 차별 조장에 응하지 말고 대항하는 것, 혐오와 차별 조장이 사회적 소수자들에, 그리고 우리 모두의 민주주의 발전에 미치는 해악을 밝히는 것이 그러한 과정 속에 필요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다른 정치를 만들어야 한다.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대표하고, 차별철폐와 실질적 평등을 '나중'이 아닌 우선적 정책과제로 만들어가는 그런 정치.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평등과 민주주의적 가치를 옹호하는 우리들의 힘이 더욱 커져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이주영님은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전문위원입니다. 평등UP 기고글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홈페이지 equalityact.kr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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