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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마련' 위해 성실하게 일했는데... 살인자 된 이정현

[인간적으로 봐야 할 영화] 사회에 대한 외침,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등록|2018.05.29 16:37 수정|2018.05.29 16:54

▲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포스터. ⓒ CGV아트하우스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무서운 영화를 보면서 두려운 마음이 드는 이유는 감정이입 때문이다. 우리는 영화를 볼 때 감독이 정한 인물의 시점에 따라 스토리를 본다. 보통 그 주체는 주인공이다. 주인공의 입장에서 스토리를 따라가며 갖은 갈등과 고난을 우리도 같이 겪는다. 감독이 만든 세계를 간접적으로 체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막연하거나 비약적인 스토리의 영화는 외면 받기 쉽다. 관객에게 공포를 주입시키기 위해 외계 생물체든, 실제로는 보기 힘든 미친 살인마가 나오든 간에 나름의 현실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조금 다르다. 비현실적인 괴물 대신 차가운 현실이 공포의 대상이다. 그저 우리가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을 다룰 뿐인데도 웬만한 공포영화보다 무섭다. 이는 현실이 허구보다 더 무서울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영화의 주인공 수남(이정현)을 살펴보자.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수남에게 닥친 시련

▲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수남 역을 맡은 이정현 ⓒ CGV아트하우스


수남은 학창시절, 선생님이 추천하는 주산 등의 자격증을 모조리 취득할 만큼 성실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컴퓨터의 등장으로 모든 자격증은 무용지물이 된다. 그리하여 결국 작은 공장에 취직하여 구박을 받으며 지내던 중,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결심한다. 행복을 꿈꾸던 것도 잠시, 원래도 좋지 않았던 남편의 귀가 아예 안 들리게 된다. 최신식 보청기를 끼면서 다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지만 내 집 마련과 신혼여행의 꿈은 저 멀리 날아갔다. 남은 건 2000만 원이라는 빚뿐이다.

그 후로도 그녀의 고난은 계속된다. 공장에서 일하던 남편은 보청기에서 나는 삐 소리에 잠시 정신이 팔려 손가락 세 개를 잃는다. 그로 인해 남편은 삶에 대한 의지마저 잘려 나갔다. 수남은 남편의 소망이었던 집을 사기 위해 잠도 아껴가며 그의 몫까지 뼈 빠지게 일했다. 집념의 그녀는 마침내 집을 살 수 있게 됐지만 대출한 금액이 모은 돈 보다 많다. 후에 자살 시도로 식물인간이 된 남편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고심하던 중, 수남의 동네가 재개발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수남은 재개발 반대 세력을 일일이 찾아가 서명을 받으려 고군분투한다.

주목해야할 점은 이 과정에서 그녀가 살인자가 된다는 점이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순수하던 그녀를 누가 살인범으로 만들었을까. 식물인간이 된 남편일까 아니면 그녀에게 고문, 감금을 일삼는 재개발 반대 단체일까. 혹시 너무 순수하고 성실하기만 했던 그녀 자신의 문제일까. 만약 그렇다면 순수와 성실이 어쩌다 잘못으로 의심받게 됐을까. 이 덕목들은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요구하던 것들 아니었던가.

특히, 성실은 언제, 어디서든 모두가 꼭 필요하다고 역설하던 덕목이다. 열심히 해야 취직한다, 열심히 해야 승진 한다 등 먹고 살려면 열심히 해야만 했다. 이렇듯 사회는 성공을 이야기할 때 환경이나 제도보다도 개인의 노력에 초점을 맞춰서 해왔다. 다수의 기성세대들은 취업난, 잦은 이직 등을 청년들의 불성실을 주된 이유로 삼으며 몰아붙여왔다. 하지만 수남의 꼴이 어떤가. 취미생활은커녕 잠도 못 자고 일만 해도 그녀의 인생은 도무지 빛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과연 영화라는 허구라서 보다 심각하게 표현된 걸까.

유쾌하게 표현했지만 씁쓸한 현실 담았다

▲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경숙 역을 맡은 서영화, 수남 역을 맡은 이정현. ⓒ CGV아트하우스


분명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영화 매체의 특성상 극적으로 표현됐다. 현실에서 그녀와 같은 상황에 놓인 이는 흔치 않다. 그러나 그녀에게 닥친 불행을 나눠서 보면 재개발 계획으로 인한 충돌, 가족 부양 등을 각각 겪는 이들은 주변에서 충분히 볼 수 있다. 잠을 줄이며 일하는 노동자는 너무 많아 사회 문제가 될 정도다.

게다가 영화는 인물들의 표정과 대사를 다소 익살스럽게 표현한다. 마치 총을 장전하고 적을 처치하는 특수요원처럼 청소, 신문배달 일을 하는 수남의 모습은 오히려 암울한 상황을 덜 비극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공포로 다가온다. 결국 영화라서가 아닌 애초에 현실 자체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안국진 감독의 역량이 돋보인다. 가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다루면서도 희극적 분위기를 가미해 사회적 메시지와 영화적 재미, 둘 다 잡았다. 그로 인해 수남에게 감정이입하게 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즉, 뒷맛이 강하게 남는 연출을 보여줬다. 또한 이정현, 서영화, 명계남, 이준혁 등 배우들이 각자의 개성을 마음껏 뽐내며 영화의 메시지와 재미를 배가시켰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청년에게 노력을 강요하면서도, 그만큼 기회나 환경은 제공하지 못하는 사회에게 보내는 외침이다. 마치 "성실하게만 살면 된다며!"라고 외치는 듯하다. 영화를 보면 다들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정말 노력하기만 하면 인생이 살만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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