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거룩한 몸한테 밥 한 그릇을 바칩니다

[숲책 읽기] 카노 유미코 <채소의 신>

등록|2018.05.31 08:49 수정|2018.05.31 08:49

▲ 겉그림 ⓒ 그책


"요리는 채소의 생명을 빌려 완성하는 거예요!" 나는 요리교실에서 이런 말을 자주 한다. 그러면 학생들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33쪽)
직접 만든 균형 잡힌 식사를 하면 성격도 생활도 변화하고 생각도 긍정적으로 변한다. (51쪽)


우리 몸은 늘 바뀝니다. 어제하고 오늘은 어제하고 오늘 사이에 먹은 밥에 따라 바뀐다고 해요. 여기에 어제하고 오늘 마신 물하고 바람에 따라 바뀐다고 합니다. 어제하고 오늘 어떤 생각을 했느냐에 따라, 또 어떤 몸짓으로 살았느냐에 따라 바뀐다고 합니다.

<채소의 신>(카노 유미코/임윤정 옮김, 그책, 2015)은 밥짓기를 다루는 책이면서, 밥에 얽힌 몸하고 삶하고 넋을 함께 들려주는 책입니다. 고기밥을 먹을 적에만 다른 목숨을 먹지 않고, 풀밥을 먹을 적에도 다른 목숨을 먹는다고 찬찬히 밝힙니다. 그리고 풀이든 고기이든 우리는 늘 다른 목숨을 밥이라는 모습으로 받아들이니, 기쁘게 맞아들이고 고맙게 받아들이자고 이야기해요.

레시피를 기록하는 일은 가능하지만, 요리 자체를 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 이 지구에는 형태를 남기지 않은 예술이나 문명이 분명 더 많았으리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역사로 인식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DNA에 새겨지고 후세에 전해져 지구의 기억으로써 확실하게 남아 있다. (88쪽)


▲ 속그림 ⓒ 그책


생각해 보면 책이름에 적힌 "채소의 신"이란, 우리한테 밥이 되어 주는 모든 목숨은 하느님이란 뜻이지 싶습니다. 우리가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먹는다면, 우리 몸은 '닥치는 대로 들어온 목숨'에 따라서 닥치는 대로 사는 몸짓이 되기 쉽다고 해요. 우리가 먹는 밥을 '안 좋은 것'으로 여긴다면 우리 몸도 안 좋은 쪽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채소의 신>을 엮은 분은 손수 밭에서 기른 남새를 손수 손질해서 손수 밥을 지을 적에 가장 맛날 뿐 아니라, 몸도 이러한 밥을 가장 반긴다고 이야기해요. 손수 기른 남새를 쓸 수 없을 때에는, 또 남이 기른 남새 가운데 농약이나 비료를 잔뜩 친 남새를 써야 할 때에는, 손수 기른 남새보다 더 마음을 쏟고 사랑을 담아서 밥을 지으려고 한다고 말합니다.

가끔은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친 채소를 사용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무농약 채소보다 더 사랑을 담아 요리를 하려고 신경을 쓴다. (181쪽)
요리를 마무리할 때는 양념을 넣어 간을 맞춘 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로 아름다운 빛과 함께 사랑의 향신료를 듬뿍 뿌려줄 것을 권한다. 사랑은 채소의 영양이나 맛처럼 사람이 정해 놓은 지식이나 감각을 넘어선 곳에서 마법을 부린다. (183쪽)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옛말이 있어요. 미워 보이는 아이한테 더 사랑스레 다가선다는 뜻이에요. 미워 보이는 아이일수록 사랑을 덜 받은 아이인 만큼, 우리가 더 사랑스레 다가서고 아낄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손수 지은 남새가 아닌, 비료하고 농약에 찌든 남새라면 더 사랑을 담아 밥을 지을 적에 우리 몸이 반기리라 느껴요. 이를테면 라면을 먹거나 햄버거를 먹을 적에도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 우리 몸에 다르게 스며들겠지요. 손수 지어서 살뜰히 차린 밥상이라지만, 즐겁지 않거나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이라면 우리 몸은 이 밥을 반기기 어려울 테고요.

▲ 속그림 ⓒ 그책


"채소 하나하나, 저마다 갖고 있는 매력은 말로는 다 설명하지 못할 만큼 차고 넘칩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매력을 아직 다 알지 못할 거예요." (143쪽)
초등학생 시절, 눈길 닿는 곳마다 논밭이 펼쳐지는 풍경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었다. 봄이 되면 분홍색의 연꽃 밭이 펼쳐졌고 여름이면 초록색 융단처럼 변했다가 가을에는 이삭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새해가 되면 수확한 쌀로 떡을 만들고 짚은 새끼줄로 엮어서 대문에 걸어두었다. (173쪽)


남새 하나를 고이 여겨 살뜰히 다루어 밥 한 그릇을 짓고자 하는 분은 우리한테 더 나은 밥차림이나 더 멋진 밥차림이나 더 좋은 밥차림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 책 <채소의 신>에는 밥차림 사진이나 그림이 하나도 없어요. 오직 글로만 밥차림을 이야기합니다.

덧붙여 밥짓기를 배우기 앞서 '밥을 왜 짓는가', '밥을 왜 먹는가', '밥을 누구하고 먹는가', '밥을 먹고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하려는가', '밥이 되어 주는 풀이나 고기란 무엇인가', '밥을 짓는 사람을 어떻게 마주하는가' 같은 대목에 더 마음을 기울여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채소님'을 먹는 우리 누구나 '사람님'이 될 수 있기를, 풀님을 먹든 고기님을 먹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람님이 되기를 바라는구나 싶어요.

사람의 몸은 본래 신전 같은 것이 아닐까. 모든 사람의 영혼은 신성해서 우주의 근원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 우리들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신성한 신전에 공물을 바치는 것과 같다. (189쪽)


▲ 마당에서 돌나물을 훑어서 거룩한 몸에 밥 한 그릇 바치는 아침저녁입니다. ⓒ 최종규


밥을 지어 밥상을 차린 다음 아이들하고 둘러앉습니다. 아이들한테 말을 겁니다.

"우리가 숟가락을 쥐어 뜨는 이 한 술은 우리 몸이 된단다. 웃으며 먹는 밥은 우리한테 웃음이 되고, 노래하는 마음으로 먹는 밥은 우리한테 노래가 된단다. 우리는 오늘 어떤 밥을 먹을까? 우리는 오늘 어떤 밥을 먹으면서 우리 몸을 어떻게 새로 바꾸는 하루를 누릴까?"

<채소의 신>을 쓴 분이 책끝에 적은 말을 되새깁니다. 우리가 밥을 먹는 몸짓이란, 거룩한 하느님인 우리 몸한테 사랑을 바치는 일이라고 말이지요.
덧붙이는 글 <채소의 신>(카노 유미코 / 임윤정 옮김 / 그책 / 2015.4.13.)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