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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문명화 될수록 폭력은 줄었다

[서평] 점점 더 평화로워지는 세계를 예견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등록|2018.05.31 11:22 수정|2018.05.31 11:22
한때 '악의 축'으로 지명되면서 세계 평화를 이루는데 영 골칫거리였던 북한이 요즘은 여러모로 '해빙(解氷, thaw) 모드'를 선보이는 중이다. 한해에 한번 이뤄지기도 힘든 남북정상회담이 2018년 5월 26을 기준으로 이미 두 번이나 성사된 상태다.

그 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회담을 취소하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미국 측에서 금세 회담을 재개하려는 제스처를 취해준 덕분에 북한은 일단 그들의 해빙 프로젝트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통일주가 급등하고 방산 주가는 하락세를 보이는 등 북한의 전례 없던 친화력에 나름 기대를 보이고 있다.

과연 세계는 점차 평화로워지고 있는 것일까? 또 현대 사회는 끝없이 문명화되면서도 동시에 그 위험한 힘을 제어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

문명과 폭력의 반비례 관계를 논한 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책 표지 ⓒ 사이언스북스


여기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책이 한 권 있다. 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문명과 폭력의 상관관계를 밝힌 현대판 고전이다. 2014년에 발간됐으므로 현대판이지만, 지식인이라면 한 번쯤 읽어봐야 할 필독서로 이미 널리 알려졌다는 점에서 고전(classic)이다.

저자 스티븐 핑커는 인간의 삶이 문명화되어 갈수록 오히려 폭력이 줄어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인류 역사상 가장 문명화된 21c가 인류의 유사 이래 가장 평화로운 시기라는 것이다. 오히려 근‧현대 국가가 합법적인 권위체로서 형벌권을 독점하기 전까지, 상고시대부터 중세 직후까지만 하더라도 인간의 삶은 시쳇말로 툭하면 싸우고 욱해서 죽이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테러리즘이 판치고, 나라끼리 핵으로 위협을 일삼고, 사이코패스가 미디어의 단골손님인 바로 이 21c가 역설적으로 인류 역사상 제일 '덜' 폭력적인 시대라니 조금 의아하기는 하다. 그러나 핑커 교수는 방대한 사례와 통계 자료들을 통해 자기 주장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차근히 입증한다.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학문의 이론들을 곁들이기도 한다. 그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찾기 위해 장장 1408쪽에 이르는 여정을 우리에게 펼쳐 보인다. 이 망망대해 속에서 독자들이 길을 잃지 않고 원만히 여행을 끝마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핵심개념들을 지표로 삼아서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세 개의 핵심 키워드, '악마성, 천사성, 환경'

첫째, 인간의 '악마성'이다. 저자는 인간의 악한 성향이 결코 우발적이고 충동적으로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 맞춰 본인에게 이익이 될 때 발현하는 일종의 전략이라고 본다.

따라서 증오와 분노로 인한 폭력은 사적인 영역에서 무척 제한적으로 일어나는 일일뿐, 실제 인간 사회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규모 폭력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에는 "①이익 갈취, ②권위와 권력 확보, ③복수를 통한 공정성‧정당성 추구, ④가학적인 쾌락, ⑤이데올로기 수호 등"이 있다.

둘째로 인간의 '천사성'이다. 인간은 악마성을 발휘할 수 있는 반면에 한편으로는 선한 본성도 있다. 저자가 생각하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네 가지다. "①타자에 공감하여 감정을 이입하는 능력 ②충동적으로 행동할 때 발생할 수 있을 결과를 예상하고 손익을 따져본 뒤 충동성을 조율‧통제하는 능력 ③관습‧도덕‧윤리처럼 반(半, half)강제적인 규율이나 규범 등 일련의 규칙을 설계하는 능력 ④과거의 모순‧부조리 등을 개선하여 생존 확률을 높이려는 반성기제로서의 이성능력"이다.

마지막으로 외부 조건, 즉 '환경'이다. 이 책은 비록 제목에 '본성'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그것만이 인류가 평화 사회를 구축할 수 있게 된 절대 유일한 요인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인간의 생물학적 요인인 본성도 중요하지만, 그와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는 환경 요인에도 주목한다. 악한 심성을 억제하고 선량함을 야기하는 제도나 역사적 상황들이다.

구체적으로, "① '부족→소국→왕국' 그리고 현대 주권 국가에 이르면서 점차 지배력이 강화된 리바이어던(단순하게 말하면 '정부'를 은유) ②경제적 이익을 교환함으로써 무력 충돌의 가능성을 줄여준 상업 문화 ③여성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그를 존중하려는 여성화 추세 ④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더 많은 이들이 타인의 감정에 이입하고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게 된 세계화 ⑤야만적인 사고나 행동보다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을 장려하는 시대정신"이다.

'문명'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불식시키다

세계 평화문명 시대의 화합 ⓒ Pixabay


우리는 대개 문명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취한다. 문명은 역사상으로 제국주의를 탄생시킨 원흉인데다, 서구 선진국 문화를 찬양하는 문화 우월주의․절대주의를 야기했고, 인간적 가치보다 물질 가치를 우선시하는 인간소외 현상도 유발하며, 진보와 발전에 대한 강박과 환경오염 등 인류․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바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그러한 견해를 갖도록 어느 정도 교육이나 미디어에 의해 세뇌된 측면도 있다. 우리는 으레 문명화 이전의 시대를 동경하고는 한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자연과 일체를 이뤘고, 인간적 가치를 존중하며, 강대국 및 초국가적 기업 위주의 세계질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시대를 말이다.

그러나 핑커 교수는 도리어 그것이 착각이고 심리적 편향일 뿐이라고 일갈한다. 미디어를 통해 국내외 곳곳의 사건사고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현대의 인프라 때문에 우리는 문명 세계가 참혹한 공간이고, 반대로 문명 이전의 시대는 낭만적인 세계로 여기는 경향을 보인다는 얘기이다. 듣고 보니 틀린 얘기는 아닌 듯하다.

일례로 우리는 미국에서 동물 권리에 관한 새 법규가 생겼다는 소식보다 파리에서 발생한 무슬림 테러 소식에 훨씬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로써 세계가 무척 '불안하다'고 단정 짓는다. 또 우리는 친환경 연료나 기술이 개발되었다는 소식보다 OPEC이 또 유가를 빌미로 횡포를 부리고 있다는 소식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역시 국가 간에 자원 전쟁이 만연하다고 '불안'해한다. 당연하다. 인간은 원래 부정적인 스토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존재다. 인류는 그러한 심리적 편향을 갖도록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인류 역사에서 요즘만큼 인간과 동물의 권익, 약자·소수자에 대한 배려, 친환경의 중요성 등 이처럼 정치적으로 올바른 주장들을 드높였던 적이 있었던가. 따지고 보면 지금 인류는 문명화를 이루지 못했던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 "이성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정치적으로 옳은 주장들을 이뤄내려 노력 중이다.

링컨이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을 언급한 이래로 우리는 '천사 같은 문명 세계'를 꾸역꾸역 기특하게도 잘 조립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문명의 가치를 폄훼하고는 한다. 또 그렇게 배우기도 한다.

이 책은 그간 근․현대 사람들에게 마치 질병처럼 취급받던 '문명'을 변호하기 위해서 등판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문명의 긍정적인 측면들을 적극적으로 조명한다. 저자 스티븐 핑커가 일궈낸 이 역작을 다 읽고 나면 그동안 우리가 문명에 대해 오해나 편견을 일삼은 나머지, 현대 사회를 심하다 싶을 만큼 평가 절하한 것이 아닌가하고 반성을 하게 된다.

백과사전 급의 이론과 사례로 무장한 이 책은 그만큼 설득력이 강하다. 문명은 그저 세상에 물질적인 편의만 제공하지 않았다. 사람 간, 국가 간에 다툼과 분쟁을 현저히 줄여주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끝내 밝히고 싶어 했던 문명의 숨은 공로이고, 저자가 이토록 두꺼운 책을 쓴 까닭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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