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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테이 개편한 공공지원주택, "8년 뒤엔 나 몰라라"

주변 시세와 큰 차이 없고, 8년 뒤 분양가나 임대료 급등 규제 못해

등록|2018.05.31 15:09 수정|2018.05.31 18:15

▲ 지난해 12월 경기도 성남시 여수지구에서 열린 '주거복지 행복플랫폼 출범식'에서 박상우 LH 사장(왼쪽부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조정식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이 희망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기존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를 개편한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을 내놨지만, 서민 주거 안정을 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기존 '뉴스테이'와 달리 초기임대료를 제한했지만 유명무실한데다, 의무임대기간(8년)이 지나면 임대료와 분양가를 규제할 수단도 전무하다.

초기임대료 규제, 입주자격 제한 등 일부 개편한 공공지원주택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아래 공공지원주택)의 뿌리는 박근혜 정부의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정책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택지와 기금 지원 등을 해주고, 민간 사업자(건설사 등)가 사업을 시행하는 방식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의 뉴스테이는 초기 임대료 규제도 없는 데다, 건설사 등에 막대한 특혜를 준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뉴스테이는 공공성 강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정부는 지난 4월 뉴스테이를 '공공지원주택'으로 개편하는 내용의 민간임대주택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공공성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총 20만 호의 공공지원주택을 공급한다는 청사진도 세웠다.

공공성을 강화했다는 정부의 설명대로 공공지원주택은 몇 가지 규제를 추가했다. 먼저 뉴스테이에는 없었던 초기 임대료 규제를 새로 도입했다. 일반 공급은 주변 시세의 90~95%, 특별공급(청년, 신혼부부, 고령자)은 70~85% 이하로 공급하도록 했다.

아울러 청년과 신혼부부, 고령자 대상 주택은 총 공급량의 20% 이상 공급해야 한다.

무주택자 우선 공급 원칙도 확정했다. 이 역시 기존 뉴스테이에는 없던 것이다. 주택이 있는 사람이 입주하려면, 준공 3개월이 지난 뒤에도 임차인을 구할 수 없는 경우 등으로 한정했다.

임차인에게 최대 8년간 거주 기간(의무 임대 기간)을 보장하고, 임대료 인상 상한선을 연 5%로 제한한 것은 그대로 유지한다. 이런 내용을 담은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은 오는 7월 17일 시행된다.

주변 시세보다 크게 저렴하지 않고, 시세 책정 기준도 추상적

▲ 청년임대주택 촉구 피켓 퍼포먼스 ⓒ 박세미


언뜻 보면 기존 뉴스테이보다 '공공성'이 강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허점이 드러난다. 우선 임대료 규제는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평가까지 듣고 있다.

공공지원주택의 일반 공급분 아파트 임대료는 주변 시세의 최대 95%로 제한한다. 시세가 월 100만 원이라면 공공지원주택은 95만 원이라는 얘긴데, 부담이 크게 줄었다고 보기 어렵다.

주변 시세를 결정하는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 현재 입법 예고된 민간임대주택특별법 시행규칙을 들여다 봐도, 주변 시세를 결정하는 기준은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시행규칙에 따르면 주변 임대 시세의 지역 범위와 조사 대상을 '해당 임대주택과 같거나 인접한 지자체(시군구)에 소재한 주택 중 규모와 생활 여건 등이 비슷한 대표성을 가진 주택'이라고만 규정돼 있다.

주변 시세 관련한 명확한 기준 없어 논란 소지

거리(단지 반경 00m)와 주택 연한(준공 후 00년), 규모(00세대 이상) 등 구체적인 수치는 찾아볼 수 없다. 임대시세는 임대사업자의 의뢰를 받은 지자체장이 평가하는데, 구체적인 기준이 없으면 논란이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1월 서울시의 역세권청년주택 사업을 둘러싼 임대료 논란이다. 서울시는 당시 용산구 삼각지 인근 청년주택(19㎡) 임대료가 월세 38만 원, 보증금 3950만 원 이라며 주변 시세의 86%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역세권 임대료 시세 전수조사와 국토교통부 및 통계청 자료 등을 검토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서울시의 발표 직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반박 자료를 냈다. 삼각지 청년 주택의 3.3㎡당 임대료가 최대 2300만 원인데, 용산구 평균인 1880만 원보다 훨씬 높다는 주장이다.

서울시와 경실련이 설정한 주변 시세 기준이 각각 달랐기 때문에 벌어졌던 일이다. 이런 논란을 막기 위해서는 주변 시세의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지만, 국토부는 "지역마다 상황이 다를 수 있어 명확한 기준을 설정하기 어렵다"는 입장만 밝히고 있다.

"시세 기준으로 규제하는 건 사실상 임대료 규제 안 하겠다는 것"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위원은 "시세 기준으로 규제하는 것은 사실 임대료 규제를 안 하는 것과 같다"며 "주변 시세라는 것 자체가 객관적 자료가 없고, 뉴스테이가 처음 들어설 때도, 대림동에 분양하면서 여의도 오피스텔과 비교하면서 저렴하다고 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주변 시세를 책정하는 시기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르면, 시세 산출은 임대사업자가 관할 지자체장에게 의뢰를 하고, 지자체장은 한 달 이내에 임대 시세를 산출해야 한다.

즉 임대사업자가 임대 시세 산출 시점을 정할 수 있다. 사업자는 가장 임대료가 비싼 시점을 맞추기 위해 임대 계약 시기를 미루는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사업자가 시세 보다 높게 임대료를 책정하더라도, 이를 막을 수단은 과태료(최대 1000만 원) 정도다.

청년이나 신혼부부 아닌 사람은 임대료 부담 높아져 역차별

시세보다 저렴한 임대료(70~85%)가 적용되는 특별공급 대상자는 역차별 논란이 일 수 있다. 특별공급 대상자(주거지원대상자)는 전년도 도시근로자 평균 소득의 120% 이하인 사람 가운데 청년(19~39세)과 신혼부부(혼인기간 7년 이내), 고령자(65세 이상)여야 한다.

거꾸로 보면, 전년도 도시근로자 평균 소득의 120% 이하지만 청년, 신혼부부, 고령자가 아닌 사람들은 특별공급 대상자가 될 수 없다. 이런 계층은 임대료가 시세와 별 차이가 없는 일반 공급으로 입주해야 한다.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감시팀장은 "사실 저소득층에게는 동일한 잣대로 가야 하는데, 정부가 신혼부부 등 맞춤형으로 가는 것은 올바른 접근방법이 아니다"라면서 "비슷한 소득이지만, 신혼부부는 당첨되고, 아이가 여럿 있는 가정이 탈락한다면 이는 불합리한 제도"라고 말했다.

8년 의무임대기간 끝나면 민간의 집장사 막을 수 없어

더 문제는 공공지원주택의 의무 임대 기간인 8년이 지나면, 민간의 집장사를 막을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사업자는 의무 임대기간만 채우면, 입주자를 맘대로 내보낼 수 있다. 분양 전환시 8년을 산 입주자라 하더라도 분양 우선권이 부여되지 않는다.

분양하든 임대를 계속하든 주택 가격은 모두 민간사업자가 마음대로 책정할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의무임대기간이 지난 뒤 분양 전환 등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없다"고 밝혔다.

의무 임대 기간이 끝난 뒤, 해당 단지에 사는 거주민들이 모두 쫓겨나는 극단적인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의무기간 이후 민간 사업자를 제어할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8년 뒤 문제는 뒤로 미뤄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모델"

최은영 연구위원은 "정부가 의무임대기간 이후 문제는 뒤로 미뤄놓은 것"이라며 "민간 건설사가 비싼 임대료로 이익을 얻고, 분양도 비싸게 하라는 모델, 8년 이후에는 아무 것도 제어하지 않겠다는 모델"이라고 꼬집었다.

김성달 팀장도 "8년 뒤 임대주택으로 유지되지 않는 것을 임대주택 공급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면서 "이름만 바꿨지 박근혜 정부의 뉴스테이와 현재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왜 이런 사업을 정부가 지원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최 연구위원은 "근본적인 문제는 공공 택지를 민간에 넘기는 것"이라며 "공공 택지는 정부가 공용 목적으로 사용하겠다며, 강제로 민간 땅을 수용하거나, 그린벨트를 풀어서 조성한 것인데, 이를 민간 대형건설사에 되파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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