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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 10만원 받겠다고, 밥솥 32개를 팔았건만

[책과 나 사이에 있는 것들 4]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

등록|2018.06.14 08:04 수정|2018.06.14 08:04
나의 아르바이트의 서막을 열어준 첫 직종은 백화점 판매직이었다. 나는 전자제품 코너에서 전기밥솥 파는 일을 맡았다. 매장을 오픈하기 전 점장은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세일 기간에 밥통을 30개 이상 팔면 마감일 날 10만 원의 보너스를 준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백화점 판매직원은 손님이 없어도 절대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손님 없는 텅 빈 매장을 지키는 것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모든 신경은 발바닥 아래로 집중되었다. 다리 통증을 잊을 방법은 물건을 팔면서 창고와 계산대를 분주히 걸어 다니는 거였다. 그러다보면 보너스의 주인공이 되지 말란 법도 없었다. 나는 고객을 찾아가 먼저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예상 외로 고객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주문이 떨어질 때마다 내 두 다리는 빠르게 움직였다. 주위의 직원들도 신기한 듯 나를 쳐다봤다. 왜 이렇게 열심히냐는 질문들이 날아왔다. 보너스 때문이라고는 밝히지 못했다. 백화점 마네킹처럼 서 있는 건 못하겠다는 딴소리만 읊어댔다.

손님의 연령과 취향을 고려해 제품을 선별하는 나의 안목도 나날이 향상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 나는 32개의 밥솥을 팔았다. 보너스가 담긴 하얀 봉투를 기대하면서 사무실을 찾아갔다. 점장의 표정은 싸늘했다. 판매실적에 대한 칭찬은커녕 보너스를 준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일당 제대로 챙겨주는 곳 드물다면서 운 좋은 줄 알라고 생색까지 냈다.

점장의 대응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논리정연한 반박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나의 목소리는 격앙됐고, 말끝은 흐려졌으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없이 서 있었다. 냉랭한 공기 사이로 그만 나가달라는 점장의 말이 떨어졌다. 나는 순순히 사무실을 나섰다.

약속이란 간단하게 묵살해도 괜찮은 것인가. 사회 초년생이라는 딱지에는 만만하게 부려도 될 사람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일까. 이럴 때 어떤 매뉴얼을 따라 대처해야할지 알지 못했다. 그 순간 당했다, 라는 말이 방망이질 치는 가슴 속에서 떠올랐다.

"난처하다고 굴복할 수는 없다. 솔직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세상에 정직한 것 외에 다른 어떤 것이 이길 수 있나 생각해보라. 오늘 밤 내로 이기지 못하면, 내일 이긴다. 내일이 아니면 모레다. 모레도 이기지 못하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이길 때까지 여기에 있을 것이다." (83-84쪽)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 글귀를 만났을 때, 내 마음에 빨간 불씨가 지펴졌다. 도시락 싸들고 그 사무실을 지켰더라면 내 입장과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었을까. 기숙사 학생들의 장난을 엄벌하겠다는 비장한 의지로 깜깜한 새벽 학교 복도에 꼿꼿이 앉아 있는 초임 선생님의 모습 위로 씁쓸한 웃음이 지나갔다.

< 도련님> 나쓰메 소세키/ 육후연 옮김 ⓒ 인디북


도련님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이 소설 속 주인공은 중학교에서 수학 선생님으로 사회생활의 첫 단추를 열었다. 초짜 선생님을 학생들이 몰라볼 리 없다. "발바닥이 가려울 정도"로 긴장되는 첫 수업을 마쳤지만, 계속되는 학생들의 장난에 무방비 상태로 내몰리는 상황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싸울 상대가 난무하는 적지를 향해가는 듯한 출근길의 무거운 발걸음과 첫 출근 이후로 팍삭 늙어버린 낯빛. 자신을 도련님이라고 따뜻하게 불러줄 기요 같은 목소리는 더 이상 듣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 학교 내부에서 벌어지는 편 가르기와 보이지 않는 권력 다툼까지. 이 모든 것은 사회 초년생인 그가 겪어야할 통과의례였다.

그러나 누구나 겪게 되는 이 혼란 앞에 그는 결코 타협하지 않았다. 불타는 정의감으로 학교 전체를 뒤흔들었다. 솔직함과 단순함으로 세상을 향한 신랄한 비판을 퍼부었다.

"생각해보면,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옳지 못한 일을 장려하고 있는 듯하다. 악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인식이 박힌 듯하다. 가끔 솔직하고 순진한 사람을 보면, '샌님'이라는 둥 '어린 녀석'이라는 둥 하면서 트집을 잡고 경멸한다.
그렇다면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윤리 선생이 거짓말하지 말라고 정직하라고 가르치지 않는 편이 오히려 낫지 않은가. 이왕이면 큰 맘 먹고 학교에서 '거짓말하는 비법'이라든가, '사람을 믿지 않은 술법'이라든가, '사람을 이용하는 술책' 등을 학과목으로 정하여 가르치는 것이 이 세상을 위하고 당사자를 위하는 길이 될 것이다." (102쪽)


이 소설은 1906년도에 일본에서 발표됐다. 백여 년의 시간이 훌쩍 지난 이 소설의 풍자가 아직도 유효한 걸 보면, 사람 사는 모양새는 잘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도련님이 바라본 세상의 물정이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발바닥이 가려울 정도'로 떨리는 그 처음이 직장에서만은 유독 환영받지를 못했다. 오히려 결점으로 작용했다. 새 일자리를 구할 때마다 면접관의 질문은 같았다. "잘 할 수 있겠습니까." 해보지 않고서는 업무능력이 가늠될 리 없었지만, 면접을 통과하려면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보여야 했다. 면접관의 상투적인 그 질문은 직장에 대한 충성심을 요구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직장에 대한 과도한 충성심은 여러 부작용을 일으켰다. 상사의 지시에 무조건적인 순응을 강요했다. 새 프로젝트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는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다. 대부분 상사의 뜻대로 결정됐다. 지나친 사업 확장의 기세에 눌려 나의 개인적인 건강 상태는 업무량과는 별개의 것으로 치부됐다.

직장 내 소통의 문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소통하기가 얼마나 어려우면 백 년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식어가 거짓말 앞에 붙게 됐을까. 착한 거짓말. 적당한 거짓말. 그렇다면 백화점 점장은 적당한 거짓말을 한 것인가. 세일기간의 판매량 증진을 위한 악의 없는 거짓말에 이십대 청춘의 위상을 내걸고 죽자 살자 덤벼든 나는 눈치 없는 종자인가.

그 후로도 거짓말로 사람을 이용하고, 거짓말로 위급한 상황을 모면했던 점장 같은 사람들을 직장 내에서 마주쳤다. 생각해보면, 점장만이 거짓말 한 것은 아니었다. 나도 사람들 앞에서 보너스에 관심 없는 척 위선을 떨었다. 젊은 애가 돈을 밝힌다는 수근거림은 듣고 싶지 않아서였다. 보너스를 받고 싶은 게 비난받을 일도 아닌데, 지나친 편견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고객의 지갑이 열릴 때마다 상승 곡선을 그리는 판매 실적을 확인하면서, 손님들에게 좀 더 그럴 듯한 말을 하려고 노력했다. 나의 설명이 먹혀들자 장사를 잘 한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어쩌면 손님들은 나의 설명보다 밥통을 팔겠다는 젊은이의 버둥거림에 응원을 해줬던 것인데 말이다.

돌이켜보면 직장엔 나를 속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를 응원해준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먼저 선입견을 갖고 남을 속이기도 했지만, 그런 나의 속내를 눈감아주며 나의 모자람을 채워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도련님처럼 솔직해지고 싶지만, 나의 솔직함을 홀대하는 사람들을 만날까봐 두려워, 나는 거리를 두려고 애를 써왔다. 거짓말을 해도 가책 받지 않을 거리. 나의 부족함을 들키지 않을 거리. 그런데 요사이 며칠 이 팔팔한 도련님과 동행하면서 이렇게 늙어가도 괜찮은 것인가 하는 질문이 찾아왔다. 

거짓의 편리함에 기대지 않으며 사람을 신뢰하는 삶의 태도. 조금은 거칠고 투박해도 솔직한 마음을 보여주며 사는 게 좋지 아니한가. 이제는 보너스를 받지 못했던 억울함과 작별할 수 있다. 아마도 일 그램 정도의 솔직함이 내 곁으로 찾아온 것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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