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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전 8기, 괌에서 '사람의 힘'으로 다시 찾은 인생

재활용 사업으로 괌·사이판에서 활약하는 차재윤 FSM 사장

등록|2018.06.05 16:30 수정|2018.06.05 16:59
"베풀지 못하던 삶이 가장 후회스러웠습니다."

사이판의 한 리조트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가 한창이다. 모인 사람은 지역에서 여행업을 하는 한인들과 가족들. 이들의 중심에 괌과 사이판에서 재활용 사업을 하는 차재윤 FSM 사장이 있다. '형님' '동생' 하는 호칭이 오가며 쉴 새 없이 고기가 구워져 나오고 웃음꽃이 핀다.

차 사장은 재활용 사업으로 괌과 사이판에서 '성공한 한국인'으로 꼽힌다. 이 사업은 그가 일곱 번의 실패를 딛고 쌓아온 보물이다.

▲ 차재윤 FSM 사장. 7전 8기 정신으로 괌과 사이판에서 성공한 한인으로 꼽힌다. ⓒ 김상현


실패 주저앉지 않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

17년 동안 무려 일곱 번의 부도. 보통 사람이라면 견디기 힘들었을 삶이다. 차재윤 사장은 개인 사정으로 일찌감치 사업을 시작했다. 서비스, 유통, 제조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하지만 사업은 만만치 않았고 장애물에 자꾸 걸려 넘어졌다. 처음 부도를 맞았을 때는 죽음까지 생각했다.

"낚시터에서 소주 3병을 마시고 긴 끈을 하나 구해 산으로 올라갔다. 그러다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주섬주섬 앉아 생각하니 갑자기 죽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 사장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을 다잡고 산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정말 다시 시작했다. 그러자 오히려 채권자들이 도움을 많이 줬다고 한다. 그럼에도 차 사장은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그러다 마침내 재활용 사업에 눈을 떴다.

"일곱 번의 부도를 맞으면서 다음에는 썩지 않는 제품으로 남들 일할 때 같이 일할 수 있고 외상없는 사업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했다. 고민하던 결과 생각해 낸 것이 '고철업'이었다. 차 사장은 다만 고철업이라도 단순 고철 장사가 아닌 기업형의 운영을 꾀했다. 앞으로 고철 사업에는 장비 운영이 필수라는 생각에 무작정 배우러 달려갔다.

장비를 배우며 깨달은 인생

17년간 '사장' 칭호만 들었던 차 사장이 장비를 배우기 위해 간 곳에서 처음 들은 말은 '차 기사'였다. "당시에는 자존심 때문에 뒤통수가 뜨끔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이내 그러한 감정들은 행복감으로 바뀌었다.

▲ FSM의 장비들. 차 사장은 고철 사업을 시작하기 전 장비 운용부터 배웠다. ⓒ 김상현


"난 거기서 인생을 배웠다. 내가 하찮게 봤던 노인이 장비 부분에서는 나보다 더 뛰어나더라. 거기서 나는 단순한 초보자일 뿐이었다. 점점 지적을 받는 것이 즐거웠다. 난 그들보다 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7개월 만에 장비를 다 배우고 재기를 꿈꿨다. 자금이 문제였다. 하지만 돈 문제도 결국 사람이 해결해 줬다. 장비 수업이 마무리될 때쯤 길에서 우연히 예전 거래처 차장을 만났다. 같이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도와줄 일은 없나"라는 말을 들었다.

차 사장은 "5000만 원만 있으면 재기할 수 있다"라고 했다. 결국, 그 차장은 다음날 동업 조건을 내걸고 돈을 가져왔다. 그 돈으로 지게차를 사고 고철을 쌓아둘 땅을 구했다. 땅 역시 예전에 사업을 하면서 땅과 관련해 도움을 줬던 사람에게 쉽게 구했다. 결국, 사람의 힘으로 1년 만에 재기에 성공했다.

이국땅에서 또 한 번 좌절, 하지만

재기에 성공하며 재활용에 관해서는 안 되는 일 없이 다 할 수 있다고 소문이 났다. 그러다 괌에 태풍이 불어 고철이 많이 나왔는데 처리할 능력이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2003년 무작정 괌으로 날아왔다. 하지만 쉽게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

같이 일을 하기로 한 사람과 뜻이 맞지 않아 투자받은 금액을 다 날렸다. 괌으로 들어오면서 투자해준 친구와 후배에게 면목이 없었다. 그러다 당진에 있던 또 다른 후배의 도움으로 1억 원을 다시 확보했다. 그 돈으로 다시 시작했다. 5~6개월 만에 고철 4000톤을 모았다. 70만 달러가 다시 모였다. 빌린 돈은 모두 갚았다.

차 시장은 이후 괌 지역 시장들을 모두 만나 폐차 처리 허가를 받았다. 당시 괌 정부는 폐차를 처리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됐다. 무료로 처리해주겠다니 모두 쉽게 허가를 내줬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차 사장 혼자 동네를 헤집고 다니며 수천 대를 모았다. 재활용 사업도 기업형으로 시스템화해서 원가를 최대한 낮췄다. 다른 업체에서 전부 적자를 봐도 차 사장은 항상 흑자였다. 그렇게 괌에서 사업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고 사이판까지 사업을 늘릴 수 있었다. 연매출은 20억~30억 원가량이라고.

▲ 사이판에 있는 FSM의 고철 창고 ⓒ 김상현


사람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업

차 사장은 젊은 시절 가장 후회하는 것이 베풀지 못한 삶이라고 했다. 그는 "돈이 있을 때 식구, 친구에게 너무 못 해줬다"라며 "당시에는 그럴 머리도, 마음도 부족했다"라고 후회했다. 그것을 깨닫고는 베푸는 삶을 살아왔다. "내가 힘들어도 베풀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베풀자"라는 철학으로 지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니 여기저기 사람들이 도와주기 시작했다. 어려운 일 없이 모든 것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 사업 성공비결을 묻자 차 사장은 "남의 것 빼앗지 않고, 내가 노력해 신의를 지킨 것밖에 한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직원에게도 마찬가지다. 차 사장은 월급은 물론이고 개인적으로도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도와줬다. 그런 노력의 결과 직원들은 "내가 차 사장님을 도와주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회사 직원에게도 신뢰를 얻었다는 증거다.

차 사장은 현재 사이판 근방에 있는 티니안섬을 오가는 보급선 사업도 겸하고 있다. 티니안섬에는 한국인 교포 3·4세가 살고 있다. "보급선 사업은 티니안 사람의 도움으로 돈을 버는 것이다. 이 사업을 통해 최대한 교포들에게 쌀 한 포대씩이라도 나눠주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 내에서도 성공하는 사업가가 되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해외에서 사업을 하려면 그 어려움이 몇 배는 더할 것이다. 차재윤 대표의 성공 철학을 간단명료하다. 항상 사람을 우선하고 관계를 소중히 하는 자세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사람이 우선입니다. 교포들과 더불어 잘사는 것이 저의 작은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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