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를 의심케하는 삼성바이오의 '어이없는 실수'
[주장] 실수가 반복되면 고의를 의심하는 것이 상식
▲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를 심의하는 감리위원회 3차 회의가 열린 31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 회의실에 김학수 감리위원장이 입장하고 있다. 2018.5.31 ⓒ 연합뉴스
이제 공은 증선위(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로 넘어갔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는 7일부터 진행될 증선위에서 가려질 예정인데,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수차례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마지막 고비가 남은 셈이다.
감리위원회가 비공개로 진행된 탓에 무슨 근거가 제출되고 어떤 주장이 펼쳐졌는지 정확히 확인할 길이 없지만, 감리위 과정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경영진이 공개적으로 발언한 내용과 언론 보도 내용을 근거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장을 검토해 볼 수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의 핵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의 가치평가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관계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에피스의 가치평가는 2015년 8월 말을 기준으로 안진회계법인이 수행했다. 가치평가를 의뢰한 곳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아니고, 합병회계처리가 필요했던 삼성물산이었다. 이 때 에피스의 총 가치가 5.3조 원(91.2%를 보유한 지분가치는 4.8조 원)으로 평가되었다. 이 평가결과를 2015년 결산과정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활용한 것이다.
이에 대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해명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2015년 12월 말을 기준으로 에피스의 가치평가를 하려 했으나, 4대 회계법인이 모두 거부했기 때문에 대안이 없었다. 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는 2015년 8월 말을 기준으로는 어디에서도 판매승인을 득하지 못하였으나, 2015년 9월과 12월에 연달아 국내에서 판매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2015년 12월말 기준 에피스 평가액은 8월말 평가액 5.3조 원보다 높을 것이 자명했다. 보수적인 관점에서 2015년 8월 말 평가액을 활용한 것뿐이지 분식을 할 의도는 없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해명이 적절한지 다음의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에피스에 대한 안진회계법인의 가치평가 결과가 장부에 반영할 만큼의 신뢰도를 가지고 있었느냐의 측면이다. 두 번째는 2015년 8월 말 기준 안진회계법인의 평가결과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지배력 상실이 2015년에서야 이루어졌다는 판단이 적절하느냐의 측면이다.
절차적인 측면에서 안진회계법인의 평가결과는 활용될 수 없어
▲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5월 2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긴급 기자회견에서 김동중 삼성바이오로직스 전무(가운데)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심병화 상무, 김 전무, 윤호열 상무. 2018.5.2 ⓒ 연합뉴스
<이투데이> 등의 보도(삼성바이오, 안진회계법인 '에피스' 평가자료 무단사용 논란)에 따르면, 안진회계법인의 보고서에는 '삼성물산의 결산목적으로만 쓸 수 있고, 다른 목적으로는 활용할 수 없다'라는 단서조항이 있었다고 한다. 회계법인들이 일반적으로 이러한 유형의 단서조항을 다는 이유는, 어떤 가정을 쓰느냐에 따라 가치평가결과가 매우 크게 변하기 때문에 가치평가 활용에 대한 제약을 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가치평가 작업은, 특히 DCF(현금흐름할인법)에 의한 가치평가 작업은 매우 주관적인 과정이다. 미래의 매출액, 원가, 할인율을 어떻게 가정하느냐에 따라 최종 결과는 매우 크게 변화한다. 실제 회사의 상태와 상관없이 낙관적인 매출증가와 원가절감을 예상하면 기업가치 평가결과가 높게 나오고, 비관적인 매출증가와 원가상승을 예상하면 기업가치 평가결과가 낮게 나온다.
현재까지 매출액이 거의 증가하지 못했고 원가율도 80%를 넘는 회사의 경영진이 앞으로는 매출액이 매년 50% 증가하고 원가율도 60% 이하로 내려갈 것으로 예측하는 미래 손익계산서를 제시하고 이 경우의 기업가치는 얼마가 되느냐고 회계법인에 물었다고 가정해 보자.
상식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작업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그리고 회계법인이 평가업무를 거절할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우리나라의 회계업계 관행상 회계법인이 그러한 가정은 성립하지 않으니 기업가치 평가가 불가능하다고 답하지 않는다.
대신, 회계법인은 장황한 단서가 붙어 있는 보고서를 준다. 실현 불가능하지만 회사가 제시한 모든 가정이 성립한다는 전제하에서만 이 평가결과는 유효하고, 그 전제를 모두 알고 있는 상황에서만 이 보고서를 이용해야 한다고 명시하는 것이다.
그러한 예는 다음과 같다.
"기업가치 평가에 활용된 미래의 매출액과 원가는 회사 경영진이 제시한 자료를 어떠한 형태의 검증절차도 수행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가치평가 결과는 회사 내부 목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하고 제3자가 활용하면 안 됩니다"
"이 가치평가가 도출된 각종 가정과 전제를 확인하지 않은 어떠한 형태의 보고서의 이용결과에 대해 회계법인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회계법인 조차도 그 평가결과를 보장할 수 없으니 조심하라는 의미의 문구들이다. 다시 말해, 장황한 단서가 달려 있는 기업가치 평가보고서는 그 결과의 활용에 매우 유의해야 함을 의미한다.
위에서 언급된 이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안진회계법인의 보고서에도 이러한 취지의 문구가 수차례 반복되어 언급되어 있었다. 그러한 단서가 있다면, 에피스의 기업가치가 5.3조 원에 해당한다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수치가 도출된 과정이 객관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었다면, 그래서 그 평가결과의 활용에 제한이 있었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그 평가결과를 활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실질적인 측면에서도 안진회계법인의 가치평가 결과는 신뢰할 수 없어
절차적인 측면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 평가 내용이 에피스의 경제적 실질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았다는 문제도 존재한다.
삼성물산이 의뢰한 특정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가치평가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자신의 장부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매우 엄격한 검증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미래의 매출액 증가가 합리적인 가정에 근거하고 있는지, 비용구조가 회사의 과거의 추세 또는 협력회사와의 약정과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객관적인 사실에만 근거해 볼 때에도 안진회계법인의 가치평가는 기본적인 요건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바이오젠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에피스의 바이오 시밀러에 대한 판매수수료는 50%나 된다. 매출에서 관련 비용을 뺀 이익의 50%는 바이오젠 몫인 것이다. 생산도 바이오젠이 하기 때문에, 일정한 생산마진도 바이오젠이 가져가게 된다. 그 밖에 기술료도 지급되도록 되어 있다. 바이오젠이 보유한 원천기술을 활용하기 때문에 상당한 규모의 기술료가 지급되어야 한다.
이러한 원가구조를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반영한다면 에피스가 상당한 매출 실적을 달성해도 영업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추정을 할 수밖에 없다. 2017년 에피스의 손익계산서가 그 상황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에피스는 2017년에 첫 번째 바이오시밀러인 베네팔리의 판매호조에 힘입어 매출액이 3천억 원을 돌파했다. 오리지널 약인 엔브렐의 시장점유율을 20% 이상 잠식할 만큼 판매측면에서 매우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영업적자규모는 2016년 보다 증가한 천억 원이었다.
사업초기 막대한 규모의 연구개발비가 투입되는 바이오기업의 특성상 연구개발비를 자산화하지 않고 모두 비용처리한다면, 장부상 영업적자 규모가 클 수도 있다. 그런데, 에피스의 2017년 무형자산 규모는 5440억 원으로 총 자산의 46%를 차지하고 있다. 연구개발비의 상당부분을 자산으로 처리했음에도 대규모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에피스의 경영진이 가장 잘 예측하고 있었다. 에피스의 경영진은 설립이래로 현재까지 한번도 이월결손금에 대한 이연법인세자산을 인식한 적이 없었다. 10년 이내에 이익이 발생하여 이월결손금에 대한 세법상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면, 이월결손금에 대한 이연법인세자산을 인식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도 한번도 그렇게 회계처리한 적이 없었다.
이렇듯 안진회계법인의 추정은 바이오젠의 사업보고서와도, 에피스의 이월결손금에 대한 회계처리와도 일치하지 않는 매우 부실한 추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부실한 추정이었음은 2017년 에피스의 결산실적에 의해 여실히 입증되고 있다. 실질의 관점에서도 안진회계법인의 보고서는 신뢰할 수 없는 부실한 추정결과였다.
안진회계법인의 그대로 쓴다고 해도 지배력 상실은 2014년 이전에 발생했어야
▲ 인천시 연수구 삼성 바이오로직스. ⓒ 연합뉴스
한발 더 물러나 보자. 2015년 8월 말 기준 안진회계법인의 평가는 절차의 측면에서 사용할 수 없는 보고서였을 뿐만 아니라 실질의 측면에서 신뢰할 수 없는 보고서였다. 그럼에도 이 평가결과를 기초로 장부를 작성한다고 생각해 보자.
안진회계법인의 평가 결과를 기초로 장부를 작성한다고 해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했던 것과 같은 결론이 나오기는 매우 힘들다. 2015년 말 시점에서 지배력 상실이라는 판단에 따른 효과가 매우 컸다. 잘 알려진 대로 지배력 상실이라는 판단 하나 때문에 당기순손실 2천억 원인 기업이 당기순이익 1조 9천억 원인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자기자본 규모가 6천억 원 수준이 될 상황이었는데, 그 규모가 2조 7천억 원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기업에서 장부를 책임지는 CFO(최고재무책임자)나 결산책임자, 그리고 회계법인은 이렇게 큰 변동이 발생하면 필수적으로 과거부터 소급해서 처리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를 점검해 본다. 이러한 변화가 정말 올해에 발생한 것인지, 과거 이전에 이미 이러한 사실관계가 있었으나 놓치고 있던 것은 아닌지 검토해 보는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밝힌 대로 2015년 8월 말 평가는 판매승인이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의 평가였다. 신약이나 바이오 복제약(시밀러)을 개발하는 기업의 가치는 허가단계가 진행됨에 따라 변동한다는 것은 바이오산업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에게는 상식이다. 2015년 8월 말과 2014년 12월 말의 허가단계에서 차이가 거의 없다면, 2015년 8월 말과 2014년 12월 말의 기업가치 역시 큰 차이를 보일 수가 없다.
2015년 8월 말 시점의 에피스의 총 가치 5.3조 원을 주당가치로 환산하면 주당 40만 원이 넘는 수치이다. 그 시점의 콜옵션 행사단가는 6만 원 초반이기 때문에, 주당가치가 콜옵션 행사단가의 6~7배 수준이었던 셈이다. 2014년 12월 말의 기업가치가 2015년 8월 말과 큰 차이가 없다면, 2014년 12월 말의 주당가치와 콜옵션 행사단가의 관계가 2015년 8월 말과 반대였을 리가 없다.
회계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만 있더라도 지배력 상실이 2015년에 와서야 발생한 것이 아니라 최소 2014년에도 지배력 상실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밖에 없다. 시점을 거슬러 올라가 2013년, 2012년 또는 설립시점까지 주당가치와 콜옵션 행사단가를 비교해 보면 지배력 상실시점이 더 빨라질 수도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주장하는 대로 "주당가치 > 콜옵션 행사단가"의 상황에서 콜옵션이 실질적이라고 판단한다면, 그러한 상황은 2015년 뿐만 아니라 2014년, 2013년 그리고 2012년에도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누구나 품을 수밖에 없다.
삼성바이오로직스도 그러한 문제를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 보도(삼바 의혹, 바이오젠 공동경영 거부 입증이 열쇠 )에 따르면, 금감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4년 말 시점의 콜옵션의 가치 평가를 2015년 말에 와서야 급조했다는 증거를 제출했다고 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추후에 이 부분이 문제가 될 것을 염려했기에 2014년 말 시점에서의 평가결과를 사후에 조작하려 했다는 의미가 된다.
어이없는 실수가 반복되면 고의를 의심할 수밖에
안진회계법인의 평가결과는 절차적인 측면과 실질적인 측면을 모두 고려했을 때 사용할 수 없는 숫자였다. 그리고, 그 숫자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지배력 상실은 2015년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2014년 이전에 발생한 것이 아닌지 의심해 보는 것은 회계 초보자도 생각할 수 있는 문제였다.
이 모든 것이 실수였을까? 절차의 측면에서 안진회계법인의 보고서의 사용여부에 대한 판단, 그 보고서의 세부내용이 실질의 관점에서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 그 수치를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지배력 상실시점이 2014년 이전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모두 실수로 틀린 것일까? 금감원의 고의분식 판단 근거는 알 수 없지만, 어이없는 실수가 반복되면 고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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