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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한나라당 아니면 깃발도..." "아유, 박근혜가 그렇게 했잖소"

[르포] 6.13 선거 앞두고 만난 최북단 강원도 고성 주민들

등록|2018.06.11 18:36 수정|2018.07.18 22:58

▲ 동해안 '최북단' 강원도 고성 해변가엔 철조망이 길게 늘어서 있다. ⓒ 김성욱


"아 그럼, 대진에서 내리는 사람은 거의 없지. 나도 손님만 아니었으면 밑에 거진에서 끝내고 여기까진 안 올라와. 여그 봐. 터미널에 아무것도 없잖어."

늦은 저녁 강원도 고성 대진시외버스터미널에 내린 승객은 혼자였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한 버스는 단 두 석만 빼고 군인으로 꽉 찼다. 모두 앞 정거장인 인제나 원통에서 우루루 하차하고 난 뒤였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는 사람은 없어. 금강산 끊기고 이까지 누가 오갔어."

신기하다고 위아래를 훑던 기사는 차고지로 가야 한다며 그만 내리라고 했다. 말이 터미널이지 버스는 물론 창구 하나 없이 휑했다. 대진터미널은 동해권 최북단 시외버스터미널이다.

시내버스도 벌써 일찍 다 끊겼을 거란 버스 기사의 말에 하는 수 없이 차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인적 드문 도로의 이름은 '금강산로'. '통일전망대 13km',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 2.7km', 'DMZ박물관 12.1km'라고 쓰인 팻말들만 드문드문 서있다. 적막 속에 몇 분이나 걸었을까.

다듬다 만 고구마줄기 몇 가닥을 손에 쥔 85세 할머니를 만났다. 통성명을 몇번 주고 받으니 금세 경계가 풀렸다.

"요즘 젊은이들 고생이 많지. 근데 여긴 더 문제가 많소. 젊은이들이 없어. 봐봐, 다 나 같은 늙은이들 뿐이지."

고성에서 처음 만난 그 할머니는 이북 출신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6.25 다음 해인 1951년, 18살 나이에 이곳으로 피란 왔다.

"여기서 고향은 걸어서 한 나절이면 들어갈 수 있어. 그짝서도 나는 고성 사람이었으니까. 이짝으론 '물도'로 해서, 그러니까 쩌그 물길 따라 동해안으로 내려왔지. 통일? 쓸데 없는 소리 마소. 이제 통일 되면 뭘 하겄소? 거기 있는 사람들 다 죽었을 텐데. 진작에 못 들어간 게 한이지, 한."

"여기는 무조건 한나라당이었어, 근데 요즘 보면..."

북미정상회담과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남녘 땅 최북단 접경지대인 강원도 고성을 지난 5일과 6일 찾았다. 10년 전인 2008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기 전까지 고성은 금강산 관광의 남쪽 관문이었다.

대진의 금강산로에서 만났던 그 할머니는 최근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에 대해 "대화하고 왔다갔다 하면 좋지, 그래야 여기도 활발하게 경제가 살 수 있다"고 기대하면서도 "금강산(관광)도 왔다리 갔다리 하는 거 보소, 끝까지 가봐야 안다"고 거듭 말했다.

할머니는 그러면서 보수 텃밭으로만 불리던 강원도의 분위기가 아주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 강원도는 원래 무조건 한나라당이야. 아직까지 여긴 낙후 지역이라고. 도대체 깨닫질 못했어 사람들이. 그래도 요즘 보면 옛날에는 한나라당 말고는 오르내림도 없었는데, 조금은 깨쳐가는 것 같더라고. 그 전보담은 머리가 많이들 트인 거지. 왜냐고? 아유 박근혜가 그렇게 했잖소."

'전방지대'인 강원도는 전통적인 보수 텃밭이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아슬아슬하게 당선되긴 했지만 후보의 개인기였다는 평가가 더 타당하다. 강원도의회는 자유한국당 37석, 더불어민주당 6석으로 여전히 보수가 압도적이고, 강원도내 시장·군수 등 기초단체장 18석 중 무려 15석이 한국당이다.

"금강산 끊긴 지 벌써 10년... 그때가 좋았지, 지금은 다 죽어"

▲ 고성군 현내면에 사는 백씨 할아버지가 건너편 대진 초등학교를 보며 시름에 잠겼다. ⓒ 김성욱


그랬던 강원도와 고성이 바뀌고 있단다. 할머니와 작별인사를 나눈 뒤 몇 걸음 못 가 백씨 할아버지(80)를 만났다. 백 할아버지도 비슷한 말을 했다.

"원래가 여기서 태어났어. 너무 오래 살았지. 투표? 투표는 까봐야 알어. 옛날에 여기는 한나라당 아니면 깃발도 못 들었어. 맞아 죽었다고..."

여기선 아직 자유한국당보단 '한나라당'으로 통용되는 것 같았다.

"근데 지금은 달라졌어. 민주당하고 옥신각신한다고. 한나라당이 많이 망가졌잖아. 전부 돌아선 거야. 나도 박근혜가 제 아범처럼 좀 잘 하지 않을까 해서 뽑아줬더만 다 마치지도 못하고 영창 가서 살고 있는데, 아이고..."

백씨 할아버지는 이곳 분위기가 옛날과는 다르다고 했다. 예전 같으면 민주당 유세차는 보이지도 않았는데 요즘은 고성 이곳 저곳을 휘젓고 다닌다고 했다.

"지금 정부가 남북 대화도 하고 잘 하잖아. 남북 왕래가 얼른 돼야 돼. 얼른 돼야 한다고. 금강산 끝난 게 벌써 10년이잖아. 그때가 좋았지 여기는. 금강산 관광하러 가는 집결지였잖아 대진이. 일단 사람이 많이 끼니까 장사하는 사람들도 좋았고 동네도 활발하고. 그거 딱 끊기니까 여기 식당들 전부 문 닫고 지금 몇 집 없어. 대화도 하고 금강산 육로 관광도 빨리 터져야 돼. 기래야 여기도 살아."

▲ 강원도 고성군 대진초등학교 건너편의 담벼락. ⓒ 김성욱


힘에 겨운지 어느새 쪼그려 앉은 할아버지가 앞에 있는 초등학교를 가리켰다.

"저 대진초등학교가 인원이 많았을 땐 1800명이 넘었어. 지금 몇 명인 줄 알아? 100명이 안돼. 입학하는 애들이 없으니까. 여기 고성 현내면에 요거 하나 살아있어. 원래 현내면에만 학교가 4개였는데 나머지 3개를 폐교되고 다 헐었어. 그러니 희망이 있겠냐고 여기가."

할아버지는 허리를 구부리고 한숨을 쉬었다. 그 초등학교 건너편 담벼락엔 '아름다운 고성, 통일이 되면 더 아름다운 고성'이란 낙서가 그려져 있었다.

"내일 시간 되면 명파 마을에 한번 가보소. 거기가 여기보다 더 심각하니."

인심 좋은 할아버지가 손주 생각이 난다며 집에 들어가 떡을 내왔다. 고성을 찾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명파의 철조망과 문 닫은 가게들

이튿날인 6일 새벽, 대진에서 동해안을 따라 걷다가 택시를 타고 명파리로 갔다. 대진과 명파를 잇는 버스는 하루에 단 6대 뿐이어서 배차 간격이 너무 컸다. 최북단 마을인 명파(明波)는 '밝은 파도'란 뜻이었지만 정작 파도 치는 동해 해변은 날카로운 철조망으로 꽉 막혀 있었다.

"이쪽 봐봐요. 여기 건어물 파는 가게들, 황태·오징어·코다리 팔았던 가게들, 다 문 닫았잖아요. 가게들 그냥 이렇게 버리고 장사하던 사람들은 다 떠나버리고. 이기 이기, 사람 사는 동네냐고."

택시 기사 이씨(57)가 속도를 늦추며 폐점된 가게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OO건어물 금강산 직매장', '통일로 건어물 직매장', '민통선 식당' 등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대부분 유리창이 깨지거나 녹슨 자물쇠로 문이 잠겨 있었다.

▲ 강원도 고성의 택시 기사 이씨가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이후 명파마을 주변에서 문 닫은 가게들을 가리키고 있다. ⓒ 김성욱


"예전에 이 도로로 금강산에 들어갔다고. 그때는 장사가 참 잘 됐지. 손님도 많고. 원래 여기가 '무진장'이라고 해서, '물반 고기반'이라고 했어(웃음). 바다에 약간 노을이 지잖아? 그럼 파도에 배가 흔들리는데 배가 푹 가라앉아서 밑에가 잘 안 보이는 배들은 만선이고 그 정도가 아닌 배들은 그날 별로 못 잡은 배들이야. 거기서 잡아올린대로 여기서 파는 거지. 근데 지금은 북한 통해 오는 중국배들 때문에 물고기도 없고, 금강산 관광도 없어지고 장사도 안 되니까... 장사하던 치들은 다 떠나고 원주민들만 남았잖아. 나이 드신 분들만."

택시 기사 이씨는 명파와 대진에서 마주친 가장 젊은 주민이었다. 그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근래는 더 힘들어. 금강산 관광 하겠다고 국가에서 저 옆에 큰 도로, 4차선 도로를 뚤버놨잖아. 저거 생긴 지 한 2년 됐어. 그러고 나선 저 큰 차도로만 사람들이 다니니까 이쪽 명파 마을쪽 도로로는 이제 아예 아무도 안 오는 거야. 죽을 맛이지. 금강산 간다고 도로만 크게 지어놨는데 그렇다고 금강산 관광 하는 것도 아니잖아, 에이 참. 젊은 사람들이 살 곳이 못 돼."

▲ 강원도 고성 명파마을 주변 문닫은 건어물 가게. ⓒ 김성욱


금강산 육로 관광의 확대를 예상해 2003년부터 공사를 시작한 '신' 7번 국도는 지난 2016년에야 완공됐다. 20km를 조금 넘는 구간이지만 금강산 관광이 무기한 중단되면서 공사가 차일피일 미뤄진 것이다. 명파 마을을 지나는 '구' 7번 국도에는 차가 거의 다니지 않았다. 길가의 문 닫은 가게들이 을씨년스러웠다.

"통일은 안 돼도 빨리 금강산이라도 뚫려야 여기도 젊은 사람들이 오지. 아니고는 뭐 돌파구가 없어."

이씨에게도 지방선거 분위기를 물었다. 강원도가 변하고 있다는 진단에 이씨도 한 표 던졌다.

"아주 나이자신 분들 아니고서는, 아유 강원도도 좀 변했어요. 예전하곤 달라. 그동안 뭐 좋아진 게 있었냐고. 군수나 이런 사람들 뽑아봤자 코빼기도 안 비치고."

이씨는 원주민 할머니들과 대화해보라고 명파리 경로당 앞에 택시를 세웠다.

고성 명파마을에도 끊긴 대남·대북 확성기... "전쟁 걱정만 안 했으면"

▲ 강원도 고성군 명파리 경로당에서 할머니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할머니들은 최근 강원도 민심이 변하고 있다고 했다. ⓒ 김성욱


"우리 같이 농사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먹고는 살지만, 장사하던 사람들은 다 죽었어, 다. 여기 경로당 바로 옆에 이거, 명파식당도 망해버렸잖아."

경로당 앞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던 최씨 할머니(84)가 택시 기사에게 자초지종을 듣더니 내뱉은 첫 마디다. 할머니가 가리킨 명파식당 역시 유리창이 깨져있었고 이끼 낀 조리기구들만 어지러이 널린 채 폐가처럼 방치돼 있었다.

"내가 이북에서 넘어와서 스물너이(24)에 여기 왔소. 지금 팔십너이(84)니까 60년 산 거요. 처음 명파 마을 들어올 때는 너무 무서웠어. 그땐 한 50호 밖엔 없었거든. 북으로 넘어갈까봐 밤마다 심사가 너무 심하고, 그냥 천막 같은 걸 쳐놓고 잠을 자는데 여기저기 꽝꽝 폭탄소리가 나. 진짜 못 살겠더라고요."

최 할머니가 바라는 건 딱 하나라고 했다.

"선거고 통일이고, 여기 살면서 그냥 마음만 편했으면 좋겠어. 작년에 김정은이 핵 쏘니 어쩌니 할 때 여기 사람들은 얼마나 조바심이 났는지... 나는 이제 먹을 만큼 먹었으니 죽어도 돼. 근데 후손들 생각하면, 진짜 전쟁은 나면 안 되는 거요. 남아나는 게 없다고, 전쟁나면. 우리는 그걸 봤잖아. 그래도 요즘은 조용하니 일 없으니 얼마나 좋소."

경로당에 모인 할머니들도 "강원도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입을 모았다. 4.27 남북정상회담의 판문점 선언에서 나온 '동해선' 철도 연결에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판문점 선언에 근거해 지난 5월 1일부터 중단된 대북·대남 확성기 방송이 끝난 것도 민심을 샀다.

"그전에 날마다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말해 뭐해. '참백성~'하고 시작하는 '김일성 장군'인가 하는 노래를 하도 계속 틀어대서 여기 있는 사람들은 아마 그놈의 북한 노래 다 외울 거요."

물론 "아무리 그래도 대통령들을 다 저렇게 처넣는데, 문재인이고 누굴 믿갔어. 빨갱이도 그렇게 안 한다우. 빨갱이보다도 더 한 거지, 강원도 사람들이 약아져 가지고 마음이 바뀐 거야"라며 열을 올리는 할머니도 있었지만 "한나라당으론 더 안 된다"는 게 경로당의 중론이었다. 할머니들끼리의 수다가 깊어질 수록 이북 말씨도 더 도드라졌다.

▲ 강원도 고성군 명파마을 초입 모습. ⓒ 김성욱


할머니들은 곧 있을 6.12 북미정상회담도 기대하고 있었다. "그게 화요일 오전 10시에 한대지?"라며 일정까지 꿰고 있던 한 할머니는 "그래도 끝까지 가봐야 허요. 중국이랑 러시아놈들이 중간에 그렇게 훼방을 놓는다면서? 저번에 도럼프(트럼프 미국 대통령)놈이 한번 취소도 했고. 아유 우리는 아무도 못 믿겠어, 끝까지 가봐야 알어"라고 거듭 말했다. 금강산 육로 관광의 시작과 급작스런 중단, 정권마다 급변해온 남북 관계로 늘 마음 졸이는 명파 마을의 한 단면이다.

한바탕 토론회가 벌어지고 난 뒤, 명파에선 젊은이가 귀하다며 할머니들이 밥상을 차려왔다. 이곳 경로당에선 70대면 막내라고 했다. 미꾸라짓국과 열무김치, 잘 된 밥이 나왔다.

"서울서 왔으면 여그 통일전망대를 꼭 가보라우. 해무가 없는 날이면 북녘 건너 사람들까지 다 보인다우. 오늘은 해무가 좀 끼긴 했지만..."

동해의 파도처럼

▲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녘 바다의 모습. 명파 마을 할머니의 말처럼, "바도와 파다에는 남도 없고 북도 없다." ⓒ 김성욱


할머니의 당부대로 통일전망대로 향했다. 동해안 최북단 전망대. 눈으로 금강산 해금강이 보이는 곳. 비무장지대(DMZ)로 들어서기 전 총을 멘 군인들의 검문검색이 삼엄했다. 동해안을 따라 이어진 긴 철조망은 여기서 더 두껍고 우악스러워지는 듯했다. 철조망을 앞둔 전망대 위에 줄지어 북을 향하고 있는 망원경들의 모습이 기이했다.

"이북하고 남한도 저 바다의 파도처럼 오며 가며 왕래를 해야하우. 그래야 여기 사는 우리도 마음 놓고 잠자지 않겄소. 바다처럼, 파도처럼, 오며 가며."

서편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해무가 옅어진 사이로 노을빛에 물든 동해의 파도가 하얀 해변을 오갔다. 명파에서 만났던 한 할머니의 말이 귀를 맴돌았다.

"파도에 어디 남이 있고 북이 있소."

그랬다. 바다에는 경계가 없다. 고성군 최북단 명파라고 해도 바다엔 철조망을 세울 수 없다. 승객을 반도 못 채운 썰렁한 버스가 고성을 떠났다.

▲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에 비치된 망원경을 통해 본 북녘. 가운데쯤 인공기가 펄럭이는 건물의 모습도 보인다. ⓒ 김성욱


▲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 본 북녘.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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