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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아이들은 이런 옷을 입었구나

정성과 사랑으로 만들어 입히던 '아이옷' 특별전...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서 7월 13일까지

등록|2018.06.13 15:17 수정|2018.06.13 15:20
"저희 조카들이 쌍둥이인데 태어날 때 이른둥이로 태어나서 인큐베이터에 있다가 나왔거든요. 그래서 무병장수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카들 옷을 지어주었어요."

"우리 손녀가 이걸 입고 항상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서 만들어 봤어요."

"아이의 성장과 건강을 기원하고 축하하며, 태어날 손녀의 무병장수와 앞으로 살아가는 데 걸림돌 없는 삶을 기원하기 위해서 돌잔치 옷을 만들었습니다. 어때요? 예쁘죠?"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아이옷 전시실' 벽면 가득히 적혀있는 문구들이다.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직접 아이옷을 만들며 느낀 마음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제4전시실에서 어린이 전통옷 특별전 '마음을 담아 지은 사랑, 아이옷'전이 지난 5월 4일부터 열리고 있다. 7월 13일까지 전시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과 석주선기념박물관(관장 박경식)이 공동으로 꾸민 전시로  덕온공주 돌 실타래, 해평 윤씨 소년 미라 복식 유물 등 110점의 어린이 복식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아이옷의 변천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까치두루마기 까치두루마기(1937년), 색동 소매가 달린 남자아이의 두루마기. '때때옷'이라고도 한다. ⓒ 석주선박물관


동다리옷 동다리옷(1890년), 조선 후기 무관이 입었던 군복으로 개화기 사진 가운데 동다리옷에 전복을 입고 복건을 쓴 소년의 모습이 전한다. ⓒ 석주선박물관


액주름액주름(16세기 초), 겨드랑이 아래에 주름이 잡혀 있어 '액주름'이라 불린다. 조선 중기 남자 아이가 나들이 할 때 바지저고리 위에 입었다. ⓒ 이윤옥


요즈음은 아이옷이고 어른옷이고 간에 말끔하게 만들어 놓은 기성복을 사 입는 시대가 되고 말았지만,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이전 아니 100년 이전의 옷이란 한 땀 한 땀 여인들의 정성스러운 손끝이 아니면 입을 수 없는 '귀한 것'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입는 배내옷부터 어여쁜 돌복은 물론이고,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혼례용 옷 그리고 생을 마칠 때 입는 수의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전통시대의 '옷'이었다. 태곳적부터 우리 겨레가 즐겨 입던 옷들이 이제는 '전통옷' 이라는 이름이 붙어 박물관에 가서야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옛 여인들이 가족사랑으로 한 땀 한 땀 지은 한 벌의 옷이 시사하는 역사적 무게는 선비들이 지은 책 한 권의 무게보다 더 깊고 그윽했음을 전시실 한켠에서 느껴본다. 지난 12일 낮 2시, 석주선기념박물관 아이옷 전시실을 찾았을 때 특별한 해설을 해준 이명은 학예연구사 설명 덕에 전시된 다양한 아이옷에 대한 폭넓은 이해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중치막중치막(1731년), 경기도 용인의 탐릉군 무덤에서 출토된 어른과 아이의 중치막. 중치막은 임진왜란 이후 1800년대까지 남자들이 흔히 입었던 나들이옷이다. 학동기 아이들이 어른과 크기만 다를뿐 같은 형태의 옷을 입었음을 알 수 있다. ⓒ 석주선박물관


실고름 배냇저고리실고름 배냇저고리(1900년), 아이의 장수를 염원하는 뜻에서 긴 실로 고름을 달아 지은 배냇저고리다. ⓒ 석주선박물관


오색실타래오색실타래(1823년), 순조의 막내딸 덕온공주 돌상에 올린 돌잡이물품. 긴 실처럼 돌을 맞은 아이가 장수하기를 바랐다. ⓒ 석주선박물관


"이 옷은 2001년 해평 윤씨 집안의 한 무덤에서 소년 미라와 함께 발굴된 옷들입니다. 출토 당시, 소년은 밑이 트인 바지와 '누비 중치막 수의(壽衣)'를 입고 있었습니다. 소년이 누운 목관 바닥에는 '배냇저고리', '작은 소모자(小帽子)', 어머니의 장옷이 깔려 있었고, 아버지의 중치막이 이불처럼 아이를 덮고 있었으며 중치막을 찢어 만든 줄로 시신을 감싸고 있는 것을 보아 당시 장례 복식을 알 수 있으며 가족의 애틋한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명은 학예연구사는 친절하게 350년 된 미라 소년의 수의에 대해 설명해줬다.

이번 전시는 아이가 태어나 배냇저고리로부터 시작하여 유아기를 거쳐 학령기 그리고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입는 옷을 3부로 나눠 알기 쉽게 전시하고 있다. 1부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마음, 배꼽주머니와 배냇저고리'에서는 아이가 태어나 돌이 되기까지 입는 옷들을 전시하고 있다. 긴 고름을 단 '배냇저고리'부터 장수한 어른의 옷을 잘라 만든 '누비포대기'를 비롯해, 아이가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긴 유물이 중심이다.

또한, 순조의 막내딸 덕온공주(德溫公主, 1822~1844)의 돌상에 올린 돌잡이 물품인 '오색실타래'와 '실방석' 등 아이의 첫 번째 생일인 '돌'에 입히는 옷과 물품도 함께 선보인다.

2부 '호환마마를 걱정하는 마음, 오방장두루마기'에서는 걸음마를 익히고 대소변을 가릴 무렵부터 6살까지의 '아이옷'을 전시하고 있다. 이 시기의 옷은 노랑, 연두, 분홍, 남색, 옥색, 보라 등, 다양하고 화려한 색상을 사용하고 있으며 '아이옷'의 특징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준다.

한편, 16세기 초반의 '액주름', 영친왕의 아들인 진(晉)왕자나 구(久)왕자가 입었던 '두루마기'를 비롯해 20세기 초 저고리들이 다양하고 화려한 아이옷 색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고름을 길게 달아 몸에 두를 수 있게 만든 '돌띠저고리'나 용변을 보기 쉽게 만든 '풍차바지' 등 아이의 신체적 특성을 고려한 옷이나 가족들의 염원을 담은 다양한 장신구도 함께 볼 수 있다.

"아이옷" 전시장 한글로만 쓴 "아이옷" 전시장 입구 ⓒ 이윤옥


"아이옷" 전시장 2 "아이옷" 전시장 모습 ⓒ 이윤옥


풍차바지와 두렁치마풍차바지(왼쪽)와 두렁치마(오른쪽 아래), 풍차바지는 바지의 밑을 터서 오줌·똥을 누기에 편하게 만든 어린 사내아이용 바지로 '개구멍바지'라고도 하며, 두렁치마는 어린아이의 배와 아랫도리를 둘러주기 위하여 치마같이 만든 옷이다. ⓒ 이윤옥


관람객 한 관람객이 전시된 옷들을 꼼꼼이 살펴보고 있다. ⓒ 이윤옥


3부 '작은 어른을 응원하는 마음, 도포와 장옷'에서는 일곱 살로부터 관례를 치르기 전까지의, 아이가 어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아이옷'을 다루고 있다. 이 시기 아이들은 외출하거나, 제사, 잔치 등 특별한 의례에 참여할 때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도포', '중치막', '장옷', '두루마기' 등을 입었는데 이러한 옷들이 소개되고 있다.

또한, 탐릉군(耽陵君, 미상~1731)의 무덤에서 출토된 어른과 아이의 '중치막'은 크기만 다를 뿐 형태는 같아, 이 시기 아이가 어른옷의 모양을 그대로 본뜬 '작은 어른 옷'을 입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7살이 된 아이들에게 어른이 될 준비를 시켰음을 알게 해준다. 

이밖에도 18~19세기 청연군주 집안과 덕온공주 집안의 '여아용 당의'를 비롯해 '동다리 저고리', '도포' 그리고 관례 때 입는 '사규삼' 등 귀한 옷도 전시되고 있다.

아이옷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어머니가 정성스레 지어준 옷을 입고 자라났을 당시의 어린이 모습이 떠올랐다. 옷이 날개라고 하지만 어쩜 그 시대의 옷은 옷을 만들어 준 사람의 '인간냄새'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옷을 지어준 어머니의 정성을 느끼며 어릴때뿌터 예의범절을 익혔을 그 때 아이들의 모습이 전시실 가득 느껴지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 전시안내
- 위치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제4전시실, 7월 13일까지(전시기간 중 일요일 휴관, 무료)
- 시간 :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 문의 전화 : 031-8005-2389
덧붙이는 글 신한국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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