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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죽을지 알 수 있는 '수명시계'가 있다면

수명시계와 '웰다잉'

등록|2018.06.20 10:32 수정|2018.06.20 10:32

▲ 만약 우리가 '수명(壽命)시계'를 볼 수 있다면, 보려고 할까? ⓒ unsplash


만약 우리가 '수명(壽命)시계'를 볼 수 있다면, 보려고 할까? '어바웃 타임(About Time; 멈추고 싶은 순간)'이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 20대 여성은 수명이 1백분의 1초 단위로 카운트다운 되는 '수명시계'를 보며 시한부 생명을 산다. '100일'에서 시작한 디지털숫자는 0을 향해 달려간다.

사실 생명체가 하나 태어나면 수명시계도 하나 생긴다. 우리 수명시계도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카운트다운을 시작했을 거다. 시작숫자는 '100년'쯤 될까. 드라마 속 수명시계는 100일에서 시작하여. 주인공이 사랑을 하면 멈추기도 하고 거꾸로 늘기도 한다. 조물주가 만든 우리 수명시계는 어쩌면 성인 말씀대로 우리가 선행(善行)을 하면 늘어나고 악행(惡行)을 하면 숫자가 줄어들지 모른다.

인간이 만든 카운트다운 시계는 한 번 정해놓은 시간을 쉼 없이 같은 속도로 줄여간다. 수명시계는 그런 시계는 아닐 것이다. 그렇더라도 누가 자기 목숨 카운트다운을 보려고 할까. 순간순간 줄어드는 목숨숫자를 보며 담담히 밥 먹고 잠자고 놀러 다닐 보통사람은 없다. 한 오백년 살 것처럼 돈 벌기, 권력 쌓기에 밤낮 못 가리는 사람에게 갑자기 수명시계가 나타나면 저승사자 만난 듯 기절할 일이다.

수명시계를 보는 일은 역시 큰 사건이다.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크게 몸이 아프면, 안 보려 해도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 묘비명을 죽기 10년 전에 썼던 분이 계셨다. 위를 다 들어내는 대수술을 받고 나서다. 수술의사는 '5년간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10년 후 암이 재발했다. 한창 일할 50대 후반에 수명시계를 보게 된 그분은 덕분에(?) 일찍 묘비명도 쓰고 자서전도 쓰게 되었다.

죽음학을 연구한 최준식 교수는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할 임종학 강의>에서 "죽음준비는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처럼 장례식을 준비하고, 유서나 간단한 자서전을 써보라"고 권한다. '일찍'은 언제인가. 이 말처럼 규정짓기 어려운 단어도 없다. '너무 일찍' 시작한다면 오히려 마음이 느슨해져 준비가 안 된다. 수명시계를 보게 된 때가 '너무 늦기 전'이다.

한때 '234가 제일 행복하다'는 우스갯말이 유행했다. '2일(이틀) 아프다가 3일(사흘)만에 4(死)하는 게 가장 행복하다'는 웰다잉 개그다. '수명시계를 오래 보면 고통스러우니 2~3일만 보고 싶다'는 말로 들린다.

그러나 '234'는 당사자에게는 가장 행복한 웰다잉이 될지 몰라도 주변에게 고통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동이기 쉽다. 2~3일 안에 떠나도 될 만큼 평소 주변정리를 해놓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빚 많이 진 사람이 대책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는 건 웰다잉이 아니다.

실제 웰다잉을 실행한 특별한 사람도 있다. 호주의 식물생태학 박사 데이비드 구달은 104세 되던 2018년 5월 10일, 스위스 병원에서 베토벤 9번 교향곡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영면했다. 스스로 정한 안락사 날이다. 언제 그날을 정했는지 알려진바 없지만 몇 년, 몇 달 전 그날을 디데이로 정해놓고 호주에서 스위스까지 갔을 거다. 드라마에나 나옴직한 고통이 없는 아름다운 웰다잉이다.

우리나라 고승일화에는 더 극적인 웰다잉이 나온다. '나 며칠 후 갈란다.' 디데이를 제자들에게 통고하고 디데이 날 입적하는 고승얘기다. 그러다 그날 막상 입적이 안 되어 몇 차례 연기한 고승도 있다. 우리도 언제 수명시계를 보게 되나, 미리 걱정하는 고통 겪지 말고 디데이를 아예 '5년 후 생일'하듯 정하면 되겠구나! 상상해본다.

우리는 상상 속 디데이 날짜를 주변에 알릴 필요가 없다. 수명시계 보듯 하루하루를 '멈추고 싶은 순간'으로 산다. 그러다 혼자만 아는 비밀의 그 날이 지나면 다시 '5년' 연기한다. '덤'으로 사는 것처럼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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