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당시 삼천포 지역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정대우 <배고개의 슬픈 매화> 펴내 ... 11개 이야기 속에 당시 상황 다뤄
▲ 정대우 저 <배고개의 슬픈 매화> ⓒ 정대우
6·25 한국전쟁 발발 68주년을 며칠 앞두고 옛 삼천포(사천) 지역의 당시 상황을 다룬 책이 발간되었다. 우리가 잘 몰랐던 삼천포 지역의 6·25를 다룬 '최초의 민간 보고서'라 할 수 있다.
정대우(78) 전 경남농업기술원장이 펴낸 <배고개의 슬픈 매화>라는 책이다. 삼천포 배고개에서 나고 자랐던 정 전 원장이 어린 시절 경험과 16명의 증언을 들어 수필, 소설, 희곡 형식의 11개 에피소드로 엮어 놓았다.
정 전 원장은 68년 전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세밀하고 정확하게 되살려냈다. 그리고 그는 당시 경찰특공대원, 야산대원이었다가 전향한 경찰특공대원을 비롯해 전직 공무원, 교장, 시장, 의회 의장 등 사천의 슬픈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16명으로부터 증언을 들었다.
11개 이야기는 '지리산 빨치산 부대', '장렬히 산화하다', '인민군 특공대', '청년들의 분노', '시울을 당겨라', '잔디가 죽어 있다', '어머니의 금반지', '담을 넘지 못했소', '야산대장 김천식', '경찰특공대', '대한민국 만세' 등이다.
배고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잘 만든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 같다. 책에는 인민군들이 필자의 집에 쳐들어와 보름 동안 묵은 이야기, 배고개마을 뒷산인 와룡산에 진을 치고 있는 야산대들의 노략질 이야기가 담겨 있다.
또 책에는 통영에서 해병대에 의해 인민군이 괴멸된 이야기, 삼천포경찰서를 총공격했으나 정보누설로 실패한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야산대장과 한 여성 야산대원 간의 사랑 이야기, 마을 처녀와 인민군 사이의 슬픈 로맨스도 담겨 있다.
▲ 정대우(78) 전 경남농업기술원장이 <배고개의 슬픈 매화>라는 책을 펴내고, 이야기의 소재가 된 매화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 정대우
정 전 원장은 전쟁의 와중에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인민군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 억울하게 야산대에 끌려가 죽임을 당한 큰아버지, 결혼 선물로 갖고 있던 금반지를 인민군에게 건네줌으로써 자식들을 지켜낸 어머니 등 가족사도 그려 놓았다.
또 책에는 집 앞마당에 있던 당시 200년 훨씬 넘은 매화나무가 밑둥과 큰줄기만 남긴 채 모조리 잘려나가던 장면도 그려진다.
정 전 원장은 여러 이야기를 수필처럼 담담하게 서술하다가 어떤 대목에서는 소설적 상상력을 가미하기도 하고, 이야기 전개상 필요하다 싶을 때는 마치 연극대본처럼 대화체로 이어나간다.
정 전 원장은 머리글에서 "이 모두가 국가 통치기반의 흔들림에서 기인한 일이다"며 "국가의 올바른 정체성 확립과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중요하다. 그래서 다시는 6·25와 같은 대재앙이 이 나라에서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남기고자 했다"고 했다.
이장주 전 삼천포고등학교장은 추천사에서 "혼돈의 시대에 일어났던 비극들을 찾아내어 기록한 내용들은 그 자체가 우리 민족의 슬픈 과거요, 내 고장의 역사요, 내 가족들의 비애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전 교장은 "누구를 원망하고 책임을 물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젊은 세대들은 지나온 세대가 경험한 불행을 다시는 겪지 않도록, 나라를 걱정하고 서로 용서하며 관용의 미덕이 넘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정대우 전 원장은 "내가 자란 삼천포라는 작은 시골에서 일어났던 가슴 아픈 일들이기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그대로 묻힐까 걱정되었다"며 "우리 모두는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되 과거를 잊지 않고 국론을 통일하고 화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1941년 경남 사천 삼천포읍에서 태어난 정대우 전 원장은 삼천포 용산초등학교, 삼천포 중고등학교, 경상대 농과대학을 나와 밀양·합천군 농촌지도소장, 농촌진흥청 작물보호과장, 한국지속농업연구회장 등을 지냈다.
▲ 정대우(78) 전 경남농업기술원장이 펴낸 <배고개의 슬픈 매화>라는 책의 소재가 된 와룡산과 와룡마을 전경. ⓒ 정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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